[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60)] 앗수르의 번영은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징벌 위한 하나님의 섭리
이라크 편(4)

등록날짜 [ 2019-10-04 17:29:04 ]

우상숭배 이스라엘을 앗수르 내세워 심판

북왕국 멸망시키고 남유다 속국 삼았지만

그때가 다하자 영광은 땅속으로 사라지고

화려했던 도시 터엔 뼈대만 앙상히 남아


윤석전 목사: 우리나라에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일본이 있듯,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에는 앗수르(Assyria)라는 숙명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 외에도 다른 민족을 굴복시키거나 수탈할 때 유난히 잔인하고 악독했기에 주변국들에 악명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 대제국은 현재 옛 영광의 뼈대만 앙상히 남긴 채, 유물은 훼손되고 파괴돼 도시터만 남았습니다. 앗수르로 가 보겠습니다.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은 걸프전(戰) 이후 미군 주둔지가 됐지만, 여전히 무역과 산업과 통신의 중심지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이곳이 개방된 산업도시임을 알 수 있다. 현재 파괴된 ‘알 누리 모스크’에 있는 ‘알 하드바’ 탑은 앗수르 시대의 뛰어난 예술성을 압축해 놓은 작품이며, 피사의 사탑처럼 옆으로 기울어져 있다. 앗수르 시대가 남긴 다양한 문명을 단계적으로 전시한 모술 박물관에는 고대 앗수르의 주요 도시 니느웨의 B.C. 9세기 유물, 헬레니즘 시대에 유명했던 사막 도시 하트라에서 출토된 조각상, 모술 초기 이슬람 시대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이 유물들에는 이스라엘을 파괴한 앗수르의 강인함과 번영이 녹아 있는데 바로 그 번영의 주체가 사마리아 땅을 정복했던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다.


윤석전 목사: 앗수르는 열왕기하에서 이스라엘의 성읍을 잔인하게 공격해서 정복했던 산헤립 왕(Sennacherib, B.C. 705~681)의 나라이며,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지배한 강대국이었습니다. 앗수르 성장은 지리적 특징과 관계가 있나요?


홍순화 교수: 메소포타미아의 두 강은 많은 나라의 성장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유프라테스강은 바벨론과 우르, 티그리스강은 현재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옛날 앗수르의 니느웨(Nineveh) 발전과 함께했습니다. 앗수르 수도 니느웨는 남북 4.8km, 동서 1.2~1.6km에 달하는 대도시이며, 북쪽과 남쪽으로 티그리스강이 흘러 동쪽과 서쪽만 성벽을 쌓아 방비하면 되는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또 티그리스강은 교통 요지인 동시에 물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신전과 왕궁들이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왕 무덤이 많이 남아 있어 고고학적 가치가 높지만, 상당 부분 도굴돼 아쉬움이 남습니다.


윤석전 목사: 앗수르가 성경에 강조돼 기록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택주 교수: 앗수르는 이스라엘보다 상대적으로 강대한 제국을 이룬 나라이며, 남북 이스라엘 왕조를 여러 차례 침범하여 북왕국을 멸망시키고 남유다를 조공(朝貢) 국가로 삼았습니다. B.C. 734년 디글랏 빌레셀 왕(B.C. 745~727)은 도움을 요청한 아하스 왕(B.C.736~716, 남유다의 12대 왕)을 도와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남유다의 조공을 받았습니다. 이후 살만에셀(샬마네세르 5세) 때는 북이스라엘 호세아가 앗수르에 바치던 조공을 애굽으로 돌리자 B.C. 722년에 사마리아를 포위했고, B.C. 701년에는 산헤립 왕이 남유다를 침략해 유다 성읍 46개를 빼앗았습니다. 남유다는 B.C. 734년부터 앗수르의 속국이 되었고 그 후 B.C. 662년 요시야 왕 때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키고 신앙 개혁을 합니다. B.C. 612년 앗수르 수도 니느웨가 메대와 바벨론의 연합군에 몰락하자 이스라엘은 풀려났지만 120년간 앗수르 속국이었기에 유다 백성의 언어와 사상 등 일상에 앗수르의 영향력이 깊이 배어 있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에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앗수르를 보면 악한 일이든 선한 일이든 하나님 사역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주의 일에 사용되어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책에 기록되었으면 합니다. 모술 동남쪽 지역에는 신(新)앗수르의 행정 수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곳으로 가 보겠습니다.


모술 동남쪽 지역에 있는 님루드(Nimrud)는 신 앗수르 제국의 두 번째 수도이며, B.C. 1300년부터 B.C. 800년까지 앗수르의 행정을 담당했던 곳이다. 구약시대 칼라(Calah)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곳에는 현재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II)의 궁전 터만 남아 있다. 반인반수 등 많은 신을 섬겼던 앗수르는 주변국들을 강인한 방법으로 지배했는데, 하나님은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의 징벌 도구로 앗수르를 사용하셨다. 성벽의 각종 문양은 이 제국이 당대 얼마나 화려한 문명국이었는지 알려 준다. 왕들은 자신들의 치적(治績)과 왕가 계보를 설형문자로 후대에 남겨 놓았다. 모술 대리석이라 부르는 청색 석고 벽화에는 왕과 장병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 화려한 문화를 지배했던 제국의 왕들은 이스라엘 도시들을 정복하고 왕과 백성을 여러 도시에 흩어 놓아 이스라엘을 멸절하려 했다. 그러나 앗수르의 번영은 이스라엘을 징벌하고 새롭게 세우려는 하나님 섭리의 한때였다. 그때가 다하자 앗수르의 영광은 땅속으로 사라졌고 2500년간 침묵 속에 묻혔다.


윤석전 목사: 님루드의 위치와 지형 특징을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구약에 ‘칼라’라고 기록된 ‘님루드’는 앗수르 행정수도이며, 니느웨 남쪽, 티그리스강 동안(東岸)에 있습니다. B.C. 9세기부터 천 년 동안 앗수르 수도였으며 아슈르나시르팔 2세 때 크게 융성한 도시입니다. 님루드는 많은 유물이 발견되어 고고학에서는 매우 유명한 도시이며, 330만 ㎡(약 100만 평) 면적에 달하는 유적지가 15m 높이 외벽으로 싸여 있으며 내성은 37m 두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적 내부에는 지구라트와 왕궁들이 남아 있는데 약 200만 ㎡(60만 평) 규모 왕궁 유적에서 수많은 고대 문서가 발견됐습니다. 우물에서는 상아로 만든 조각품들을 발굴했으며, 함께 발굴한 살만에셀 3세의 ‘검은 오벨리스크’에는 이스라엘 예후 왕이 굴복하는 장면이 생생히 기록돼 있었다고 합니다.


윤석전 목사: 약소국이 신하 국가로서 강대국에 조공을 바치고 의지하는 것은 세계사의 흐름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고대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하고자 취한 행위들에 성경 원리와 의미가 있는 건가요?


우택주 교수: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왕국이 맺은 반(反)앗수르 동맹은 남유다 아하스 왕에게 동맹국 가입을 강요하면서 침략했습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는 “반앗수르 동맹국을 두려워하지 말고 앗수르에 원조를 청하지도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며 아하스 왕에게 믿음의 원칙대로 정치하라고 권고합니다. 하지만 아하스는 말씀에 불순종하여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조공을 바칩니다. 이로 인해 남유다는 앗수르의 속국이 됩니다. 믿음의 원칙을 지키는 정치는 생명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해서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루게 하는 정치를 의미합니다. 믿음의 원칙대로 정치를 하면 백성도 평안하게 잘 살고 나라도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이사야가 미리 내다보고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만 믿으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원칙대로 살면 어떤 위기와 역경도 풀어 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과 앗수르의 관계를 보면서 신앙에 역경이 닥쳐올 때, 무엇을 믿고 선택해야 하는지를 깨닫습니다. 성경에서 언급하는 지명과 현재 지명이 다른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홍순화 교수: 성경 지명과 현재 지명이 다른 이유는 성경에 나오는 장소들 중에는 우리가 추정하는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번역 과정에서 빚어진 상이한 발음의 문제도 있습니다. 이집트를 애굽, 아시리아를 앗수르라고 발음하는 문제는 지금부터라도 비슷하게 번역하여 해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배우고 암기하면서 연결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고대 강국이었던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다가 심판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어떤 성경적 교훈을 얻을 수 있나요?


우택주 교수: 힘이 있을 때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힘이 있을 때 남을 해롭게 하면 나중에 반드시 그 해(害)를 자신이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힘을 얻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권력, 경제력, 지식을 얻으려는 이유는 생명을 구하고 옳은 일을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이를 섬기는 것이야말로 힘을 바르게 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교훈을 앗수르의 운명을 보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세운 나라였는데도 우상숭배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전쟁이 일어나고 식민지가 되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나라가 폐허로 변할 만큼 역경을 당하고 나서야 선지자를 통해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욥은 까닭 없이 사단에게 재산과 자식을 잃고 아내마저 그를 버렸습니다. 욥은 육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지만 하나님을 잃지 않고 붙들었기에 결국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슨 일을 당하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면 축복은 다시 여러분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 안에서 자유와 해방과 축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4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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