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64)]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수난의 역사 담긴 터키 반 호수 ‘악다마르교회’
터키 편 ⑵

등록날짜 [ 2019-11-07 12:10:28 ]

이슬람 땅 되기 전 교회와 수도원 있던 지역

믿음의 증표들 가득 과거의 아픈 역사 전해 줘

터키 남동부에 있는 ‘샨리우르파’를 모슬렘은

아브라함 고향이라 주장하지만 신빙성 희박


윤석전 목사: 이번 호에는 온갖 수난과 고난을 견뎌 낸 악다마르 교회가 있는 반(Van) 호수와 터키 남동부에 있는, 모슬렘이 아브라함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샨리우르파(sanliurfa)로 가 보겠습니다.


터키에서 가장 큰 반(Van) 호수는 동부 가장 고지대 도시인 반(Van)에 있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반 호수 위를 20분 동안 달리면 악다마르섬에 닿는데, 그곳에 악다마르(Akdamar) 교회가 자리한다. 교회 마당 곳곳에는 신앙의 역사가 지금도 숨 쉬고 있다. 평범한 돌조각조차 이곳에선 거룩한 신앙의 증표가 된다. 교회 건물 내부에는 하나님을 향한 아르메니아 수도사들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수도사들은 성경 내용을 아름다운 부조로 조각해 벽면에 파노라마처럼 펼쳐 냈다. 교회 외부에는 선악과를 먹는 아담과 하와, 전투하는 다윗과 골리앗, 선지자들과 동물들, 바다에 던져지는 요나 등 조각이 새겨져 있다. 그림과 조각 속에는 비잔틴 문명의 멸망과 동시에 모슬렘에 둘러싸인 유일한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 왕국의 절박한 간구가 담겨 있다. 십자가 돔 예배실의 벽 사면에는 각각 성화가 있는데, 역사가 만만치 않다. 우상숭배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평신도와 사제 대부분은 ‘성화(聖畫) 숭배’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과 차원이 다른, ‘경배’라고 오해했다. ‘예배’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경배’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전 단계이며 하나님께 이끄는 것이기 때문에 해도 좋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제7차 종교회의에서 ‘성화 숭배’를 허용 받았다. 성경은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그것에 절하지 말라’(출20:4~5)고 했기에 하나님 말씀에 반하는 결론이었다. 이처럼 억압의 역사를 간직한 아르메니아 교회는 지금도 믿는 자들의 발길을 이끌어 과거의 아픈 역사를 전해 준다. 이슬람 땅의 악다마르 교회는 아르메니아인의 믿음을 전하는 증표로 서 있다.


윤석전 목사: 터키에서 가장 큰 호수로 알려진 반 호수는 어떤 곳인가요?


홍순화 교수: 최대 너비 119km인 반 호수는 터키 지도에도 명확하게 표시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1,712m 높이 고원 지대에 있는 반 호수는 물이 바닷물과 유사합니다. 이는 이곳이 과거에는 바다였지만 융기로 인해 지대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이 호수로 흘러드는 강은 있으나 호수에서 흘러 나가는 강은 없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는 B.C. 8세기경 우라르투국 수도가 반 호수가 있는 반 지역에 있었는데, 아라랏산이라는 이름은 이 왕국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윤석전 목사: 반 호수 가운데 있는 악다마르섬에 악다마르 교회가 있는데 그곳 교인이 겪은 수난을 조각과 벽화로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반 호수에 있는 섬 넷 중 악다마르섬에 악다마르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원이름의 뜻은 ‘거룩한 십자가’인데 10세기 즈음 아르메니아인들이 지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 아르메니안 지역이 따로 지정될 정도로 아르메니아는 독실한 기독교 국가입니다. 이들이 악다마르섬에 지은 교회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담과 하와, 다윗, 요나 등 성서 내용을 파노라마처럼 그려 놓은 내부의 프레스코(fresco) 벽화가 아름다움을 더해 줍니다. 1918년 이후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아 폐허가 되었지만, 외관 부조와 내부 프레스코 벽화가 지금도 많은 사람의 발길을 이끕니다.


윤석전 목사: 섬 이름도, 교회 이름도 악다마르입니다. ‘악다마르’라는 이름과 관련한 이야기가 있다는데 소개해 주세요.


이형원 교수: 아주 오래전 이 섬에 자리한 수도원에 여자 수도사 ‘다마르’가 있었다고 합니다. 외부 사람과 접촉할 수 없던 다마르는 우연히 육지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 다마르가 등불을 켜면 청년은 그 빛을 따라 섬으로 헤엄쳐 왔습니다. 이 사실을 안 수도원장이 둘을 떼어 놓으려고 태풍이 심하게 부는 날 직접 등불을 켜 놓고 뭍에서 청년이 헤엄쳐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수도원장은 등불을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녔고 등불을 따라 헤엄치던 청년은 힘이 빠져 물속에 가라앉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청년이 외친 ‘아, 다마르’라는 말을 딴 ‘악다마르’가 섬의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윤석전 목사: 이제는 모슬렘이 아브라함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샨리우르파로 가 보겠습니다.


하란 북서쪽에 있는 이슬람 도시 샨리우르파에 가면 니므롯 왕의 보좌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함’의 장남 구스의 아들, 고대 바빌로니아의 유일한 왕 니므롯이 두 기둥 사이에서 대관식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니므롯은 하나님이 인정한 창세 시대 사냥꾼이었다. 모슬렘 전승에 따르면, 니므롯 왕은 왕좌를 뺏을 아기가 태어난다는 꿈을 꾼 후 신생아들을 모두 죽였는데 이때 아브라함의 모친이 바위 동굴에 숨어들어 아브라함을 낳고 7년간 키웠다고 한다. 그 동굴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사원이다. 사원 내부 아브라함 연못에는 아브라함과 니므롯 왕에 얽힌 또 다른 전설이 있다. 우상숭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왕이 아브라함을 화형에 처하려 하자 하나님이 불을 물로, 장작을 물고기 떼로 바꿨다고 한다. 이런 전설 때문에 모슬렘은 이 연못을 신성시한다. 그래서 아브라함 동굴에 지은 모스크와 연못은 모슬렘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아브라함과 니므롯 왕의 악연이 서린 샨리우르파에는 아브라함의 정금 같은 믿음 이야기가 감동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윤석전 목사: 샨리우르파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 주세요.


홍순화 교수: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향하던 도중 머물렀던 하란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샨리우르파’가 있습니다. 이곳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있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속하는 메소포타미아 평원의 북단부입니다. 하란 평야가 계속 이어지는 이 지역은 하란만큼 비옥한 땅입니다.


윤석전 목사: 샨리우르파는 모슬렘에게 매우 중요한 성지로 알려져 있는데 기독교와도 관련이 있나요?


홍순화 교수: 샨리우르파의 옛 이름은 에데사(Edessa)입니다. 그리스 신학자 유세비우스가 집필한 『교회사』에 에데사 첫 교회가 예수님 시대에 생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은 없으나 이 지역 전승에 따르면 병에 걸린 에데사의 왕이 예수님께 와 주시기를 청했다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0장 1절에 나오는 70인 중 하나를 보내 왕의 병을 고쳤고 이때 교회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곳은 로마와 페르시아가 치른 전쟁에서 중요한 지점이었다고 합니다. 에데사는 오래전부터 페르시아에 여러 차례 점령당했고, 아랍과 십자군과 이슬람 등에 지배를 받았으며 현재는 터키 영토입니다. 기독교는 A.D. 150년경 전파되어 시리아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고, 시리아어로 쓰인 초기 문헌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윤석전 목사: 모슬렘은 샨리우르파에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데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나요?


이형원 교수: 아브라함이 머문 하란이 샨리우르파와 가까운 지역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11장을 보면 아브라함 고향은 분명히 갈대아 우르입니다. 우르는 현재 이라크 지역에서 동쪽이고 페르시아만(灣) 근처에서 하란이나 샨리우르파 지역과는 적어도 1000km 떨어진 곳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샨리우르파에서 태어났다는 모슬렘의 주장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성지에 전해 내려오는 다양한 전승(傳承)은 신빙성이 있나요?


홍순화 교수: 전승의 유래에 따라 다른데요. 성경에 관련된 전승은 주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에 의한 전승입니다. 이 중에서 이슬람 전승이 가장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역사적으로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탄생이 예수님보다 최소한 500년 늦어 성경 시대와 멀기 때문입니다. 또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한 사람의 무덤이 여러 지역에 있고, 내용도 황당한 것이 많아서 그 자체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윤석전 목사: 악다마르 교회가 겪은 시련은 무엇인가요?


이형원 교수: 자세한 역사적 기록을 많이 찾기는 어렵지만, 중세 시대부터 기독교와 가톨릭 수도원이 있던 지역이 이슬람 국가로 바뀌면서 직·간접적으로 핍박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역사적으로 명확하게 나타나는 기록에 따르면, 1915년 오스만 제국이 통치할 때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 중 아르메니아인을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으로 강제 이주를 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터키군대가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했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때 희생된 수가 15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때 악다마르 수도승들도 죽임당했고 오스만 제국에 거주하던 아시리아인과 그리스인도 희생됐습니다. 이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은 최근까지도 터키와 프랑스 등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샨리우르파가 아브라함의 고향이냐 아니냐를 떠나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섬기던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믿음이 참된 것에 감사하면서 이런 참된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만이 진리인 것을 아는 믿음의 원칙이 여러분 안에 바로 서는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4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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