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차 목회자세미나 설교요약] 어떻든 주를 위해 죽고 성도들의 영혼을 살리려다 죽으라
윤석전 목사

등록날짜 [ 2019-09-05 18:42:46 ]


<사진설명> 제60차 목회자부부 영적세미나에 참가한 국내 목회자와 세계 107국가 목회자들이 설교 말씀을 들은 후 부르짖어 통성기도를 하고 있다.             
강문구 기자


당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 말고
하나님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알라

당신이 알고 있는 목회 말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목회를 하라


인격적 감성 메마른 목사 너무 많다

왜 우리는 울어야 할 데 울지 못하고, 웃어야 할 데 웃지 못하는 메마른 감성을 가지고 있을까? 창조자가 인격을 주어 만들어 놓았는데, 예수님의 생애 전부를 우리에게 쏟아 부은 그 큰 은혜와 사랑을 받고도 고마움을 모를 만큼 감성이 바짝 메말랐을까?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과 무슨 교통(交通)을 하겠는가. 이렇게 감성이 메마른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의지가 있겠는가. 그 은혜를 아는 확실한 지성은 있는가? 이처럼 전인격적으로 타락한 존재라고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주님이 피 흘렸다고 해도 그저 ‘흘렸나 보다’, 저 사람이 죄 아래서 지옥 간다 해도 ‘가나 보다’ 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성도, 감성도, 의지도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요구에 어찌 움직일 수 있으며, 멸망하는 영혼의 요구에 어찌 애타게 움직일 수 있겠는가. 많은 목사가 인격적으로 감성이 바싹 메말랐으면서도 입으로는 마치 자기에게 사랑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왜 자기를 속이려 드는가? 나를 가장 많이 미혹하는 존재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윤석전이라는 목사가 지난 6개월간 이루 말할 수 없이 앓으면서도 부흥회를 몇 번 했고, 설교를 몇 번 했는가? 내게 남은 육체의 에너지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스케줄이지만 생각에서 ‘못 해’ 하고 무너지면 그걸로 끝이다. 우리는 얼마나 인격적으로 바른 생각이 나를 꼿꼿하게 세우고, 오늘 숨질지라도 하늘나라에서 소동할 만큼 화제(話題)가 되도록 죽어야 하겠는가.


성도들 영적 상태 알고서 설교하라
성경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약2:26)”이라고 했다. 여러분은 어떤 행함을 했는가? 어떤 생각이, 어떤 인격체가 나를 움직여 가는가. 많은 사람이 무엇이 나를 움직여 가고 있느냐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육신의 생각이라면 죽어 버린 인간이다. 노아시대 홍수에 싹 다 멸망당한 이유가 바로 “육체가 됨이다”라는 것이다. 육체가 영혼을 생각하나? 육체가 지옥 가는 영혼 살리려 하나? 육체가 구원받은 것에 감사하나? 그러니까 짐승처럼 먹고 살고 성적(性的)으로 타락하고 정욕을 충족하는 데에 미쳐서 산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다 죽어버린 것들이기 때문에 다 홍수로 없앴다. 사람 지은 것을 한탄하셨다고 했는데, 여러분은 주님이 나를 목회자로 불러 쓰시면서 한탄하고 통곡하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나. 듣는다 해도 감성이 없으니 소용없다. 영적 인격이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신학교 선배 한 분이 “몇 년치 설교 준비를 다 해놨다”고 하기에 도대체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모 교회 주보를 3년치 모아 놨으니 그것 가지고 3년간 충분히 설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교는 그때그때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보고 성경대로 알려 주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영혼을 살리려 상황에 맞게 하는 것이다. 그런 영적 현실을 아는 분은 삼위 하나님밖에 안 계신데, 자기가 벌써 준비를 다 해 놓았다니 어처구니없다.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알지 못하는 설교 준비는 전인격적인 타락이다.


성도 지옥 가게 됐는지 판단조차 못한다
설교는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그 영혼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설교는 애가 터지도록 영적 감성을 쏟아 붓는 일인데 목사에게 감성이 있어야 쏟아 부을 것 아닌가. 그러니 설교 속에 눈물이 있나. 가슴 터져 나오는 애절한 표현이 있나. 내가 죽을지라도 너는 회개하고 천국 가라는 애타는 마음이 있나. 그 설교에 누가 감동하겠나. 감성이 감성을 움직이는데, 자기 감성도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겠나. 심령에 움직임이 없으면 변화가 없으니, 그 속에 무슨 행동과 행함이 있겠나. 그런 목사 만난 성도는 참으로 불쌍하다. ‘어쩌다 나 같은 목사 만나서 네가 지옥 갈 가망성으로 충만한 성도가 되었니?’ 하고 성도를 볼 영의 눈이 열리면, 성도를 살려낼 텐데…. 성도가 나를 잘 만났는지, 못 만났는지, 나 때문에 지옥 가게 됐는지 판단조차 못하는 목사가 얼마나 많은가.


목회는 감성이 살아나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감정을 가장 진하게 표현해야 하는 사명이 목회자에게 있는데, 주님이 나 위해 피 흘려 죽으셨다면서 왜 피 흘려 죽으신 주님 앞에 진실한 감사가 없나. 만약 주님이 피 흘려 죽지 않았다면 내 영혼이 지옥 가서 당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고통에서 구원받았다고 하는 진실한 감사의 감정이 얼마나 있느냐는 말이다.


목회는 감성이 살아나야 할 수 있다. 제자 베드로가 얼마나 감성이 타락했으면 주님이 가야바의 뜰에서 모진 매를 맞으면서 온갖 고통을 당할 때 눈이 마주쳤는데도 모른다고 한사코 부인했을까. 주님이 왜 맞는지 모르니, 다시 말해 지성이 타락하니까 부인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지식은 ‘주님을 안다고 하면 나도 매 맞아 절망적 결말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식은 그런 저주하고 배신하는 너 자신을 위해 맞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서 맞는다는 사실을 모르는데, 어떻게 주님을 향한 감성이 일어나겠나.


목회는 목회하라고 부르신 주님의 의지와 지성과 감성이, 나의 의지와 지성과 감성이 같을 때 동일한 역사가 일어난다. 왜 예수님이 하신 사역과 동일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괴리감 때문이다.


영혼 살리는 신령한 감성으로 충만하라
주님이 이 땅에서 피 쏟으신 그 정신은 우리가 절대로 막을 수 없는데, 목사가 막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과 감사의 감성이 안 나타나는 것이다. 강단에서 막고 있기에 성도들의 감성은 살고 싶으나 살 수 없고 그 영혼은 애절하게 몸부림친다. 그런데도 당신의 육신은 잔인해서 세속적인 소리만 하고 있다.


정말로 주님의 십자가 사랑 앞에 많이 우는 자가 목회를 잘한다. 우리 감정이 예수 피를 운반하는 수레가 될 때 수많은 영혼을 살릴 수 있다. 하나님이 크게 쓰는 사람이 많이 우는 사람들이다. 예수 피의 공로를 바라보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회개를 많이 할수록 크게 쓰신다. 당신도 양심을 가지고 감성을 가지고 예수 전하다 죽어야 한다. 영혼 살리다 죽어야 한다. 지옥 가면 안 된다고 전하다 죽어야 한다. 그런데 살려고 하지 않는가. 목회하다가 잘 먹고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 없이 죽어야 한다고 성경에 어디 쓰여 있나. 죽도록 충성하라, 너희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너를 부인하라, 내가 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좇으라고 했다. 네 감정과 네 의지와 타락한 네 감성이 목회 방해꾼 되지 말라. 죽어도 나는 간 곳 없고 주만 있게 하라. 강단은 성도에게 예수 피를 받아 마시게 해야 하고, 예수의 살을 받아먹게 해야 하는데, 어찌해서 우리는 예수의 살과 피 없는 썩어 빠진 죽은 것만 주고 있는가. 죄인보다 당신이 더 불쌍하고, 얻어먹고 살려 몸부림치는 교인은 참으로 불쌍하다. 성도는 “하나님의 의를 말해야 내가 불의를 찾을 거 아니냐? 하나님의 거룩함을 말해야 내 더러움을 찾을 거 아니냐? 하나님의 선을 말해야 내가 악을 찾을 거 아니냐?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야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거를 찾아 회개하고 살 것 아니냐? 그래야 내가 예수 피를 먹을 거 아니냐?”라고 한다. 그런데 어찌 목사가 선을 말하면서도 악에서 돌아와야 하는 영혼을 바라보며 정말로 살려 보겠다는 감성이 없으며, 왜 거룩을 말하면서도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는 성도의 영혼들을 살려 보겠다는 진실한 의지와 감성이 없으며, 왜 의를 말하면서도 불의로 멸망하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주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통곡하며 눈물 흘리듯 울지 못하는가? 여러분은 예수 피에 감동되고 멸망하는 영혼 살리려 몸부림치는 신령한 감성이 충만하기 바란다.


하나님을 얻는 만큼 성도를 얻는다
우리 목사 사모들은 항상 성도에게 대접받고 살면서 감사할 줄 모른다. 감사가 메마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자가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다. 시편 50편 22절에도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하셨다. 하나님을 잊으면 절대 목회 못 한다. 하나님을 얻는 분량이 목회의 분량이요, 능력의 분량이요, 성도의 분량이라는 말이다. 왜 하나님을 얻으려 애태우지 않은가. 그분의 힘으로 목회하고 그분의 능력으로 목회하고 그분이 주신 정신으로 목회하고 그분의 사랑으로 목회하는데 왜 우리는 하나님을 얻으려고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우리 연세중앙교회 성도들이 이 못난 목사 때문에 매일 기도하는데, 올해만 해도 몇 번이나 집중기도하고 몇 번이나 금식했는지 모른다. 성도들이 왜 그렇게 애달프게 목사를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할까. 하나님을 얻는 만큼 성도를 얻는다. 내가 하나님을 얻으려 할 때, 곧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하나님이 나 때문에 항상 기쁨이 넘치게 해 드리면, 얼마나 나를 값지게 쓰시고 내가 하나님을 얻는 만큼 역사가 일어나겠느냐.


이번에도 베냉성회를 두고 복음선교해외성회국이 여러 차례 회의를 했다. 목사의 몸 상태로는 불가능하지만 무엇이 걱정인가. 설교하다 죽으면 끌어다가 묻으면 되고, 돌아와서 죽으면 다행이지. 불가능한 상황에서 주님 일에 동의할 때 주님이 얼마나 감동하시겠는가. 베냉성회, 엄청나게 잘하고 올 것이라 믿는다. 어차피 죽는다면 성회 가다가 죽는 것이 주님을 감동시키지 않겠는가. 설교할 때는 더 감동하시겠지. 주님이 감동하시면, 주님이 내게 주고 싶으면, 주님이 나를 쓰고 싶으면, 안 될 일이 있겠는가. 그런데 왜 당신은 주님이 그토록 주었건만 감사한 줄 모르는가. 그렇게 당신을 쓰고 싶었는데 왜 도망 다니는가. 왜 기도하지 않고, 왜 전도하지 않고, 왜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도망 다니는가. 왜 성도 뜯어먹고 살면서 감사한 줄 모르는가. 이 사람이 어떻게 주님을 얻겠나.


고통 앞에 안 꺾이는 능력이 성령의 역사
여러분에게 말한 것은 내 의지가 아니다. 베드로같이 건장한 사람도 죽음 앞에서 자기 의지가 꺾이는데, 고통 앞에 안 꺾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 꺾이는 능력은 성령의 역사밖에 없다. 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주를 위해 살리라’는 의지가 버티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감성을 잊어버리니까 의지가 꺾이고 하나님과 나의 관계의 지성이 파괴되니까 의지가 꺾이는 거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작은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감동을 무시하지 말라. 하나님 말씀을 천박하게 버리지 말라. 목숨을 내놓고라도 이루어야 할 절대 사명임을 알아야 한다. 어찌 그 큰 은혜를 입고도 비겁한 인간이 돼서 이토록 주님 앞에 초라하고 볼품없는 인간이 됐는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얻어라. 정신적 고통, 환경적 고통, 목회가 안 되는 수많은 고통을 겪는 까닭은 하나님을 잊어버려서 그렇다.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은 그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고, 반드시 그의 나라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분은 예수밖에 없는데 그분이 일하지 않으니 목회가 되겠나. 당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 말고, 하나님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알라. 당신이 알고 있는 목회 말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목회를 하라. 그런데 각자 다양성을 가지고 자기 맘대로 목회를 하려 하니, 이게 당신을 미혹하는 무서운 마귀역사다.


예수를 드러내는 일에 값지게 써라
당신의 시간표는 어디에서 끝날 것인가. 그날이 오기 전에 빨리 숙제를 풀어라. 초 토막 같은 인생이 불을 다 밝히면 꺼져 사라져 버리는데 지금 당신은 어디쯤 사라져 가는가. 무엇을 위해 사라져 가는가. 남은 시간만큼은 촛불의 독백이 되지 말고, 많은 사람의 갈 길을 밝혀 주듯 예수를 드러내는 일에 값지게 써라. 내 육체에 삶의 보상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님 뜻대로, 성령의 감동대로 하나님과 관계를 바울처럼 최고로 잘하는 것이요, 수많은 영혼을 살려내는 것이다.


그런데 나그네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도 지옥 가는 것을 빤히 알면서 가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으니, 하나님도 당신이 목회하거나 말거나 관심 없다는 말이다. 최고의 저주가 하나님의 관심을 잃는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주님이 나를 위해 피 흘렸듯 어떻든 주를 위해 죽고, 어떻든 성도들의 영혼을 살리려다 죽어야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64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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