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세미나(1)] 주님이 행하시고 명령하신 의식

등록날짜 [ 2013-10-29 10:34:23 ]

침례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것
부활 고백을 물속에 들어갔다 나옴으로써 분명하게 표현



이번 침례세미나는 윤석전 목사의 저서『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를 요약 정리한 내용입니다. 도서에는 더 자세하고 풍부한 내용이 설명되어 있으니 꼭 구입하시어 신앙생활에 큰 유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예수께서 명령하신 교회 의식에는 주의 만찬과 침례가 있다. 먼저 주의 만찬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떡을 떼고 잔을 나누며,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전하는 의식이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3~25).

또 침례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 유언처럼 명령하신 의식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주의 만찬과 침례, 이 두 가지 의식은 주님이 하신 말씀대로 올바르게 지켜야 할 교회의 중요한 의식이다. 절대로 형식이나 외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교회 역사를 통해 볼 때, 주님께서 ‘주의 만찬’이라고 하신 것을 ‘성만찬’이라고 바꾸어 부르며 그 본래의 의미를 변질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화체설(化體說)’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로마 가톨릭의 사제들이 성만찬식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떡과 포도주가 순간적으로 진짜 예수의 살이 되고 피가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떡과 잔을 떼고 마시는 것은 예수께서 2000년 전에 나를 위해서 살 찢으시고 피 흘리신 은혜를 기념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이요, 피라고 말하며 주의 만찬을 변질시켰다.

또 침례는 어떤가? 분명히 성경에 “침례를 주라”라고 한 것을 알고도 그대로 물속에 들어가 시행하지 않고 그 의식을 임의대로 ‘세례’로 바꾸어 간단히 머리에 물을 뿌리는 것으로 변질시키고 있으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 말씀은 정확하고 오류가 없다. 그 말씀이 율법을 통해서 전해지든,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지든 하나님 말씀이다. 또 성령의 감동을 따라 제자들에 의해 전해졌다 해도 그 말씀 역시 변함없는 하나님 말씀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된다(마5:18). 시내 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천사로부터 받은 모든 율법이 절대로 없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고, 요한계시록에서도 성경의 어떤 것이든지 더하거나 제하여 버리면 살아날 길이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그렇다면 주님께서 직접 마지막 승천을 앞두고 유언하듯 부탁하신 말씀,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의 명예를 걸고 명령하신 말씀은 얼마나 권위가 있겠는가? 우리가 침례를 받는 것은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명령은 그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주님이 명령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며 그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 이 땅에서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요, 축복받는 기업이다. 우리가 성경 신구약 전체에서 말하는 침례의 의미와 침례에 담긴 복음을 잘 살펴본다면 침례를 통해 누리는 기쁨과 신령한 체험이 얼마나 큰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침례는 예수 피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가 예수의 죽음이 바로 나의 죽음이요, 예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침례받으러 물속에 들어가면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렇게 죽으셨다고 고백하고, 또 물속에서 나오면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이렇게 부활했다는 죽음과 부활의 연합을 고백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

예수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라고 할 때, 물속에 들어가 완전히 잠기는 것 없이 머리에 물을 뿌리는 것(세례)으로 끝낸다면 이것이 어떻게 죽음의 고백이 되겠는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롬6:6~11).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은 있어도 가랑비에 맞아 죽는 사람은 없다. 침례는 ‘죽음’을 상징한다. 노골적으로 “나는 이렇게 죽어야 마땅한 인간”이라고 고백하며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괜히 물속에 들어가라는 것으로 알면 안 된다. 죽었다는 장사 지냄과 살아났다는 부활 고백을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침례로 분명하게 표현하라는 것이다.

로마서 6장만 봐도 침례야말로 성경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에 물 몇 방울 뿌려서는 연합이 안 된다. 주님이 물속에 들어가셨다는 성경 말씀처럼 나도 들어가야 진정한 연합이다.

골로새서 2장 12절에 보면 침례는 믿는 자가 주님과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다시 일으킴을 받는 완전한 연합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2:12)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윤석전 지음)

위 글은 교회신문 <35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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