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희귀병 크론 치유

등록날짜 [ 2005-01-17 16:33:44 ]


난치성 희귀병인 크론병에 걸려 6년 간 열한 번의 수술로도 막을 길 없던 죽음의 문 앞에서 그녀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에 맞으신 피 공로뿐이었다.
죽어도 살아도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해달라는 간절한 눈물의 절규에 응답하신 주님의 그 크신 사랑!
난치성 희귀병에서 해방된 지 어느덧 7년째를 맞은 김미화 자매의 간증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과 이를 잘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역사가 진한 감동으로 전해진다.


일주일에 세 차례나 수술받아

내가 크론병에 걸린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1 때인 1991년 겨울이었다. 어릴 때부터 잦은 설사와 복통으로 고생했지만 인내심이 많은 편이어서 웬만한 아픔엔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던 나였다. 하지만 그 해 겨울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뾰족한 송곳으로 찔러대는 듯한 극심한 복통에 발버둥치며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 의사 선생님은 복막염인 줄 알고 응급수술을 했으나 막상 배를 가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소장이 20센티미터 가량이나 딱딱하게 굳고 서로 들러붙은 희귀한 증상을 발견하고는 절제수술을 했다. 의사선생님은 수술 후의 검사 결과를 통해 또 다른 이상 조직이 발견되자 이틀 만에 재수술을 해서 소장 40센티미터를 절제했다. 크론병은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수술을 극도로 자제하고 약물치료를 우선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엔 의사들조차도 크론병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못해서 절제 수술을 거듭한 것이다. 그 때의 재수술 후유증으로 복막염이 왔고, 급기야 병원을 옮겨 일주일에 3번째 수술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지나친 메스 세례로 수술 부위가 봉합되지 않아 특수봉합수술을 두 차례나 받아야 했으며, 2년간 연속 탈장 되는 바람에 2차례의 수술을 더 받아야했다. 그러나 이것은 크론병으로 인한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작일 뿐이었다.

불행 중에도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1년간 휴학을 해야 했지만 그 덕분에 성령 충만한 연세중앙교회를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특별한 축복이었다. 복학하자 후에 그로리아 예수찬양선교단원이 된 김소연, 임영애 자매와 한 반이 되었다. 소연이가 가져다 주는 연세중앙교회 청년회 주보 ‘주사랑’에는 내 또래 청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뜨겁게 만났다는 간증들이 많이 실려 있어 큰 은혜를 받았다. 그러다가 고3 때는 아예 친구들을 따라 연세중앙교회에 다니게 됐다. 교회에 처음 온 날 성도들이 눈물로 찬양하는 모습에 놀랐고,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메시지를 통해서는 막연하기만 했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바로 나의 죄와 허물을 사하시기 위한 실제 사건임을 체험하게 되었다. 예배시간마다 골고다 십자가의 현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예수님의 피를 보듯, 살아 역사하시는 생명의 말씀을 들으며 내 영혼 속에 확실히 체험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에 하염없는 눈물을 쏟았다. 또 청년 성회 때 성령 충만을 받아 방언을 말하면서부터는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기쁨이 가득했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원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병(病)에 울지 말고 믿음 없어 울라
그러나 크론병은 내가 행복한 꼴을 보지 못했다. 1995년 겨울 잇따른 설사와 함께 크론병이 재발했다. 입원과 동시에 10일씩, 20일씩 굶어야 했다. 하도 굶으니까 나중엔 옆에서 무엇을 먹어도 전혀 식욕이 당기지 않았다. 1996년 봄엔 장 검사를 하던 중에 소장이 천공이 되어 복막염 수술을 받아야 했다. 양쪽 옆구리에 호스를 박아 분비물을 뽑아내느라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이 죽어나갔다. 잠도 안 오고 기도도 할 수 없었다. 두렵고 무서웠다. 일반병실로 옮기면서는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하루 종일 귀에 꽂고 살았다. 성령 충만한 설교말씀을 들으니까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됐고, 물 한 스푼 먹고 탈나지 않은 행복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다.
봄에 입원해서 추석 무렵에야 퇴원할 수 있었다. 겨울엔 재발없이 무사히 넘기고 1997년 봄을 맞았다.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부활절을 맞아 성가대에선 칸타타 준비의 열기로 뜨거웠다. 고난주간성회에 참석한 나는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다. “예수님이 인간의 연약한 모든 것을 대신 짊어지시고 고난당하셨으니 그 고난을 자신의 몫으로 가져야 주님의 부활도 내 것이 됩니다!” “주님이 이미 고난 받으시고 우리에게 건강을 주셨으니 병든 것 때문에 울지 말고 믿음 없는 것 때문에 우십시오.” 윤석전 목사님이 절규하듯 전하시는 생명의 말씀들이 내 심령속에 엄청난 믿음의 불길을 지펴주었다. 사모님께서는 나를 불러 “자매의 믿음이면 충분히 질병에서 나을 수 있으니 절대로 연약한 모습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따끔한 권면의 말씀을 해주셨다. 성도를 위해 늘 기도하시는 사모님의 권면의 말씀에 너무나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사실 나는 막내인데다 병약한 몸이라 늘 가족들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왔기에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고백하면서도 늘 사람을 의지하고 의학을 의지했다. 그러나 의학의 사각지대인 난치성 희귀병 크론 앞에서 내가 의지할 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그분의 피 공로뿐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아요.”
그 후, 나의 믿음은 부활의 소망으로 날로 뜨거워졌지만 육신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했다. 4월에 기침이 심해서 구급차에 실려 갔는데 폐결핵까지 겹쳤다고 했다. 목사님이 두 번이나 병실에 찾아오셔서 눈물로 기도해주시면서 “어떤 순간에도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를 치료해주신다”고 말씀해 주셨다. 폐결핵은 두 달간의 치료 끝에 완치됐지만 크론병은 재발에 재발을 거듭했다. 딱딱하게 굳어져 뚫어지지 않는 소장을 20센티씩 30센티씩 절제하다보니 이젠 더 이상 절제할 부위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크론병이 이렇게 심할 수가 있느냐?”며 담당의사가 반문할 정도였다.
11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재발, 또 재발! 다 잘려나가고 정상인의 10분의 2도 남지 않은 소장에 또 몇 군데나 구멍이 생겼다. 게다가 대장까지 침습당해 절제해야할 상황이라니! 몸무게 24킬로, 혈액은 정상인의 1/4, 물 한 모금 못 마시는 참담한 상황의 연속... 의사 선생님은 부모님께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수술을 하려해도 더 이상 절제할 부위도 없다고, 포기하라고 말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피흘리셨으니..
죽음을 눈앞에 뒀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지금 죽어도 아픔이 없고 영원히 행복한 천국에 간다는 믿음이 있으니 감사했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부모님이 하나님을 원망할까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살아도 죽어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눈을 뜨는 시간부터 잠드는 시간까지 일분일초도 예수의 피 공로를 망각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 질병을 고쳐주신 것 믿으니 꼭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1998년 1월, 다행히도 원장님이 수술을 해주시겠다고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에도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피흘려주신 공로만을 간절히 붙들었다. 12시간 수술에서 무사히 깨어났을 때 그 순간까지 지켜주시고 나와 함께 하신 주님께 감사드렸다. 나의 가장 소중한 분이 예수님임을 고백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크론병은 외과적 수술로 눈에 보이는 모든 병변을 다 절제해도 매년 20-50%, 2년마다 70% 재발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래서 난치성 희귀병이다. 그러나 나는 그 때의 수술을 끝으로 6년여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재발되지 않은 건강한 몸으로 살고 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에 맞으신 피 공로를 붙드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다. 오늘도 나는 나를 치유하시고 내게 생명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공로를 찬양한다. 할렐루야!

위 글은 교회신문 <6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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