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그의 생애와 업적(38)] 합법 정부로 인정받으려는 필사의 노력
대한민국 승인 외교

등록날짜 [ 2013-10-29 10:46:40 ]

3개월간 소련 방해 이기고 끝내 승인받아


<사진설명>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국가 승인을 받고자 파견한 외교단. 좌측부터 조병옥, 모윤숙, 장면. (1948년 12월)

건국 이후 대한민국을 승인한 나라는 없었다. 미국 역시 유엔 총회 결과를 보아가며 승인하자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9월 21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 제2차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을 정식으로 승인받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전망은 불투명했다. 소련이 주도하는 공산권은 대한민국 승인안에 당연히 반대했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영연방도 반대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 참석할 한국 대표단 단장으로 장면을 임명했다. 당시에 명성을 떨치던 조병옥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무명인 장면을 단장으로 발탁한 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호탕한 조병옥이 실수할까 봐 이 대통령이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어쨌든 예상치 못한 발탁은 성공을 거뒀다. 그 외에도 김활란, 장기영, 모윤숙, 정일형을 파견했다.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발한 외교 기록을 읽어 보면, 눈물과 웃음이 교차한다. ‘훌륭한 애국자들이 참 애쓰셨구나’ 하는 생각과 ‘그때는 정말 못살았구나’ 하는 느낌이 동시에 든다.

이 나라 최초로 발행한 여권을 묘사한 내용이 그렇다. 한국에서 여권 자체를 만들지 못해 일본에서 인쇄해 왔다. 1948년 9월 9일 정일형 박사가 김포공항을 떠나는 노스웨스트 항공기 트랩에 올랐을 때, 정 박사 손에는 가로세로 50cm인 초대형 여권이 들려 있었다. 그 정도 크기면 거의 널빤지 수준이다. 흰 장지에 ‘대한민국 여행권’이라는 글씨를 붓으로 썼으니, 서예 작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서예 작품 같은 널빤지 크기 여권을 들고 대한민국 대표단이 파리에 도착했다. 수십 개국 대표를 찾아다니며 대한민국 독립을 설명하고 승인을 호소했다. 하지만 공산권이 펼친 반대 전략이 만만치 않았다. 소련 대표 비신스키는 독설가로 유명했다. 비신스키는 한번 발언을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지치지 않고 말하는 에너지를 지녔다.

비신스키가 지휘하는 공산권의 전략은 필리버스터(議事妨害, filibuster). 끊임없는 발언으로 회의 진행을 방해했다. 공산권 나라들이 서로 짜고 순서를 정했다. 한 대표가 발언을 끝내면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다른 대표가 발언했다.
 
공산권이 계획한 지연 전술은 성공을 거뒀다. 몇 시간이고 반복하는 똑같은 소리에 지친 다른 나라 대표들이 회의 도중에 밖으로 나갔다. 차를 마시고 숨을 돌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막상 표결에 들어가려면 참가 인원이 정족수에 미달했다. 우리 대표들은 출입문을 지키며 제발 나가지 말고 표결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몇 시간씩 똑같은 소리를 듣느라 지친 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9월에 시작한 총회는 어느덧 12월로 접어들었다. 대한민국 국가 승인이 떨어지지 않은 채, 회의 마지막 날을 남겨 놓았다. 12월 12일 오후 3시 30분이 넘어서 계속 이어진 총회에서 비신스키가 기세 좋게 등단했다. 우리 정부를 수립하려는 유엔 한국 위원회 활동을 “서울에서 밤마다 술에 젖고 노래에 흥청거렸다”고 표현하며 “수십 개월간 유엔 예산을 20~30만 달러나 낭비했다”는 등 독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눈을 번득거리고 팔을 들어 연설하던 비신스키가 별안간 목을 부여잡더니 15분 만에 내려가 버렸다. 몇 시간씩 끄떡없이 방해 연설을 해 온 비신스키가 갑자기 퇴장해 버린 것이다. 비신스키가 예상치 않게 퇴장하자 총회는 즉각 투표에 들어갔다. 마침내 유엔은 찬성48, 반대6, 기권 1표로 한국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

3개월 내내 효과적으로 회의를 막던 비신스키가 왜 갑자기 마지막 날 목을 움켜쥐고 퇴장했을까? 훗날 밝혀진 바로는 갑작스럽게 치통과 성대 결절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런 일을 우연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놀라운 섭리였으리라.

유엔 승인이 훗날 이 나라를 살렸다. 6·25사변이 일어났을 때, 유엔은 유엔 승인을 받은 합법 정부가 북괴에 공격 받았다며 반격에 결의했다. 만약 합법 정부로 인정받지 못했다면 6·25사변 때 유엔 참전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다.
 
유엔이 대한민국을 승인한 일에는 민족사적 의의가 있다. 대륙 귀퉁이에서 중국을 종주국으로 섬기며 사대외교를 지속하던 우리나라가 당당한 독립국으로서 세계와 교류하는 시대를 맞았다. 유엔 승인 이후로 수많은 나라가 한국에 외교관을 보냈고 우리나라 역시 외교관들을 파견했다. 이 모든 일은 기도로 이루어졌다. <계속>

자료제공 |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이호 목사 저)

위 글은 교회신문 <35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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