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그의 생애와 업적(57)]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나야”
대통령 하야

등록날짜 [ 2014-03-24 17:02:44 ]

민중도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에 박수를 보내다


<사진설명> 4.19의 소용돌이에서 다친 환자들을 위로하는 이승만 대통령. 이 대통령 얼굴에 자괴감이 감돈다.

이승만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시점이 이 무렵이다. 4월 12일 국무회의에서 이승만은 김주열 학생이 죽은 사실을 언급하고 선거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승만이 국무위원에게 물었다. “혹시 선거가 잘못되었다고 들은 일은 없는가?”

양심이 살아 있다면, 그때 소위 장관이라는 자들이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 해야 했다. 부정 선거를 치렀고, 부작용이 나왔고, 불의가 저질러졌다고. 대통령 모르게 우리가 일을 꾸몄고, 더 사태가 커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고 자백했어야 했다.

하기야, 양심이 살아 있다면 애당초 그런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장관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감추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간파했다.

정권의 최후가 시시각각 다가왔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평화로운 집회였다. 그런데 학생들이 데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깡패들에게 습격을 받았다. 자유당 집권 내내 악명을 떨치던 정치 깡패들이었다. 자유당 정권의 종말을 예고한 사건이 발생했다.

나라가 깡패를 동원해서 정의를 외치는 학생들을 구타했으니, 민심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인 4월 19일, 대학생과 시민이 합세한 시위가 서울을 뒤덮었다. 국민은 더는 이승만 대통령을 용납할 수 없었다. 군중은 국회의사당에서 경무대로 진격했다.

바로 그 시각에 이승만 대통령이 주재하는 자유당의 마지막 국무회의가 열렸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여기면서도 원인을 모르던 이승만이 발언했다.

“오늘은 내가 이거 무슨 난 중에 앉아 있는 것 같아. 사람들이 나를 나가라고 하는 모양인데 순순히 좋게 내주려고 해. 허나 무슨 이유인지, 무슨 까닭인지를 똑똑히 알았으면 해. 뭣인지 까닭을 알아야 해결할 것 아냐?”

그 지경에 이르렀으나 장관들은 여전히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려 했다. 홍진기 내무부 장관은 “마산 사태는 1차로 민주당이 선동했고 2차로 공산당이 조종한 듯하다”고 보고했다. 최재유 문교부 장관은 “학생들이 선동을 받았다. 배후 조종이 있다고 본다”고 발언했다.

이런 식으로 자신들이 벌인 잘못을 공산당에게 뒤집어씌운 잘못된 역사가 후대에 올무로 남았다. 공산당으로 오인받아 피해를 본 이들이 발생했고, 그 피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반공 세력에게 영향을 줬다. 반공을 말하면 곧이듣지 않고 무언가를 은폐하려고 한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경무대 안과 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경무대 안에서는 장관들이 공산당에 책임을 돌렸고 밖에서는 국민이 혁명을 일으켰다. 국무회의에서는 거짓말이 난무했고 거리에서는 진실을 향한 투쟁이 벌어졌다.

거짓으로 진실을 감추는 일이 한계에 달했다. 마지막 회의에서조차 대통령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던 국무위원은 4월 21일 모두 사표를 제출했다. 아마 그때쯤은 이승만도 상황을 파악한 듯하다. 이승만은 부정 선거로 당선한 이기붕에게 사퇴를 요청했다.

4월 22일, 이승만은 시위를 벌이다가 다친 학생들이 입원한 병실을 방문했다. 그것은 참으로 기묘하고 안타깝고 슬픈 장면이었다. 기묘한 점은 노인 대통령과 젊은 학생들이 서로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을 다치게 한 권력자를 향해서 분을 낼 법도 하고, 본인더러 물러나라고 한 학생들에게 화를 낼 법도 하나 그 자리에서는 분도 없었고 화도 없었다.

피 흘리며 신음하던 학생들은 대통령을 보고 일제히 외쳤다. “할아버지!” 아마 학생들도 알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는 이승만이 잘못한 일이지만, 데모하다가 다쳐서 상한 다음에도 이승만은 여전히 젊은이들의 할아버지였다.
그날, 이승만도 울었고 학생들도 울었다. 다친 학생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면서 이승만은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학생들이 왜 이렇게 되었어? 부정을 왜 해? 암, 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지! 이 젊은 학생들은 참으로 장하다.”

그 기막힌 순간에도 그의 목소리에는 이 나라가 있었고 백성이 있었다.

4월 26일, 새벽에 대규모 군중 시위가 벌어졌다. 학생들과 시민은 대표단을 구성하여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운명의 그날, 이승만은 묵묵히 남산을 바라보았다. 기약 없는 망명 생활에서 꿈에도 그리워하던 그 남산이었다. 시민 대표들은 이승만에게 하야를 요구했다. 이승만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도 물러나야 해. 그게 우리 민주주의니까….”

그로써, 이승만 정권 12년은 끝났다. <계속> 

자료제공 |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이호 목사 저)

위 글은 교회신문 <37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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