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死線)을 넘어 왔습니다”

등록날짜 [ 2007-03-06 19:36:35 ]

얼굴도, 이름도, 고향도 밝힐 수 없는 한 새터민의 간증을 소개한다.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가운데 북한·중국·미얀마를 여러 번 넘나들며 극적으로 한국에 오게된 김영숙(가명) 성도. 하루빨리 북에도 복음이 전해지길 간절히 소원하는 김 성도가 하나님과 함께 한 생생한 간증을 통해 우리의 기도와 신앙도 새로워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 편집자 주

신중의 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3일 전, 내게 말씀하신 한마디, “나는 신중의 신을 믿는다.” 평생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그 신이 나를 도와 이제까지 살아왔다”는 말씀을 하시고 돌아가셨다. 나는 그 신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다.
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만 했다. 그런데 내가 만든 물건을 팔아주겠다던 사람이 중국으로 물건을 가지고 도망가는 바람에 1년 동안 해 온 일에서 한 푼도 건지지 못하게 되었다. 10살도 채 안된 아이들을 빈 집에 남겨두고 그 물건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 바로 돌아올 줄 알았던 그 길을 수년 후에나 가게 되었다.

중국에서 교회를 나가다
중국으로 들어간 나는 일단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조선족이라 하며 가정부로 일자리를 얻어 생활했다. 내가 만든 물건을 금방 찾을 줄 알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고, 북에 두고 온 아이들이 걱정 돼 밤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교회라는 곳을 무작정 들어갔다. 평생 처음 예수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성경도 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종종 북에서 사람들이 가택수색을 할 때 검은 표지로 둘러싸인 두꺼운 책을 빼앗고 그 가족들을 무참히 다루곤 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책이었던 모양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책, 아버지가 신중의 신을 믿는다는 그 신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북에서는 하나님이나 예수, 성경이라는 이름만 거론해도, 눈 감고 고개 숙여 기도하는 자세만 취해도 바로 붙잡힌다. 그래서 ‘아버지도 하나님이란 말씀 한 마디 못하시고 신중의 신이란 표현을 하셨구나!’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교회에서도 행여 내가 북에서 온 사람임을 알아차릴까봐 세 번이나 교회를 옮겼다. 성경책을 한 장 한 장 읽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도뿐이었다. 그런 가운데도 아이들 생각에 북으로 어떻게든 가려 했지만 여름엔 내내 폭우로, 겨울엔 두만강이 얼어붙어 얼음의 두께가 달라 건너갈 수가 없었다. 가까운 곳은 20m면 두만강을 건널 수 있는데, 그런 곳은 더군다나 경비도 삼엄해 기회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다시 북한으로
중국에 있으면서 북한에서 넘어 온 사람들을 몇 몇 알게 되어 함께 두만강을 건너기로 했다. 북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다 걸려도 총살이고, 중국에서 북으로 내려오다 걸려도 총살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고싶어 ‘총에 맞아 죽더라도 북으로 가자’ 마음먹고 그들과 같이 두만강을 건너기로 약속했다. 약속 한 날, 미리 꾸려놓은 짐을 메고 건너던 중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 선두로 선 내가 그만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깨어보니 얼마나 높은 낭떠러지였는지 죽었어야 하는데 나는 살아 있었다. 누가 나를 돌보는가? 신중의 신 하나님인가?
중국에서 생활하며 교회에 열심히 나갔다. 하루 빨리 북으로 갈 기회가 생기기를 기도했다. 그 때 ‘북으로 떠나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고, 수년만에 두만강을 무사히 건너 자식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마침 북에서는 중국에서 넘어와 스스로 자수하는 사람은 문초하지 말라는 법이 제정된 지 며칠 안 되던 터라 문초 없이 풀려났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자식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예수를 믿자”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하나님에 대해 전하자, 다행히 자식들도 예수를 믿기로 했다.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소리 내어 드리기가 두려웠고, 아이들은 성경을 접해 본 적이 없으니 짧은 내 믿음으로 아이들에게 복음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예배가 그립고 말씀이 그리워 자유가 있는 중국으로 다시 가야겠다 싶어 하나님께 기도했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100% 다 붙잡힌다는 삼엄한 경비를 뚫고 중국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한국으로
아이들과 한 집에서 살게 된 나는 너무 행복했다. 한국에서 어느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했다. 기도를 하던 중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북에서 살던 모든 것을 버리고 왔으니 당연히 중국땅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시하신 땅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할수록 자꾸만 그 말씀이 강력하게 들려왔다. 왜 자꾸 그 말씀이 들리는지, 작심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가야한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지금까지 나의 의지로 살아온 날들이 아니기에, 하나님이 응답해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아홉 달, “한국으로 가라”는 응답을 받았다. ‘왜 한국으로? 가다 붙잡혀 다시 북으로 송환되면 우린 다 죽는데...’ 기도 중에 ‘아버지께로 돌아올 영혼들을 위해 가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까지 촌음을 다투는 죽음의 고비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만 하면 지켜주셨다.
“너희들이 할 것은 오직 찬송과 기도뿐이다.” 여권도 비자도 돈도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일단 미얀마로 가라 지시하셨다. 그렇지만 미얀마 국경지대에서 붙잡혀 다시 중국으로 오기를 두 번, 그러나 하나님이 가라 하셨으니 낮에는 산에서 잠을 자고, 밤에는 산길을 걸어 결국 미얀마에 도착했다. 불교가 대부분인 이 나라에서 먹을 것을 구하러 가는 집마다, 도망가다 숨는 집마다 예수를 믿는 집이었다. 하나님의 섬세한 돌보심 속에 살고 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미얀마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되었다. 점점 감시가 센 감옥으로 옮겨지면서 마지막 9번째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마지막 방법으로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금식이 끝나던 날 한국대사관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모든 서류와 준비를 마친 후 아이들은 한국으로 와 한국 국적을 갖게 되었다. 중국대사관에서 사람들이 먼저 왔다면 우리는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붙잡혀갔을 것이 분명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계획 가운데 함께 하심을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성령 충만한 목사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미얀마에서 한국에 온지 3년, 나는 서울에 살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성령 충만한 교회와 목사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한국에 와서 알게된 어떤 분의 소개로 연세중앙교회에 오게 되었고 처음 이 교회에 온 날이 바로 ‘이웃초청예수사랑큰잔치’ 날이었다. 목에 핏줄이 굵게 서서 예수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를 전하는 목사님의 말씀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느껴졌다.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원인 모를 목마름을 한 여름 냉수와 같이 시원하게 해갈해 주는 말씀이었다. 기도만 하면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나 감사했다.
그해 여름, 흰돌산수양관에서 열린 장년부하계성회는 나를 위한 성회였다. 목사님의 말씀이 얼마나 시원한지 매시간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중국에서 방언은사를 받았지만 한국에 와서 더 깊이있는 기도와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 시간시간마다 만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성령의 역사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말씀을 들을수록 왜 하나님이 나를 한국에 오게 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보내실려면 차라리 예수 못믿게 하는 북한으로 보내지 왜 예수 잘 믿는 한국으로 보내시나 의아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당시 나의 어린 믿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음을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나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 이 곳에 보내셨음을 깨닫고 감사드린다. 한국에 오니 북에서처럼 핍박하고, 잡아가는 사람들이 없다. 평안한 가운데 사는 것이 더 어렵고 육신의 안일함을 이기는 것이 또 하나의 나의 영적인 싸움이다.
나는 주님이 가라 하시면 이 곳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소유한 복음을 가지고 언젠가 중국으로 다시 가려 한다. 하나님이 날 북에서 중국에서 불러내신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쓰실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성령의 역사를 이들에게 증거하게 하시려 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0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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