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축복으로 바꿔 주신 주께 감사
이순옥(13교구)

등록날짜 [ 2021-09-27 17:50:30 ]

주님 은혜로 암병에서 회복

아파 봤기에 외로워 봤기에

치욕과 고통도 당해 봤기에

어려운 성도 보면 섬기고파

인류 구원하려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어 주신 예수처럼

사랑하고 섬기기를 기도해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온 중병. 인생의 절망 가운데 서 있었으나 오히려 큰 축복을 경험했다. 주님의 은혜로 회복된 간증을 연세가족들과 나누고자 한다.


지난해 1월, 몸에 여러 가지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목이 갑자기 뻐근하더니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웠다.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찾아가 보았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예배드릴 때는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왔다. 옆 사람이 아무리 깨워도 정신을 못 차렸다. 얼굴도 점점 굳어지면서 표정을 지을 수 없게 됐다.


병상에서 회개, 암 병에도 담대해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이상 증상이 계속 나타나자, 보다 못한 남편이 구로구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간의 증상을 말하고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 입원했다. 하루 이틀이면 될 줄 알았는데, 원인을 찾지 못해서 입원 기간이 점점 길어졌다. 소변·혈액·골수·뇌척수액 검사 등 온갖 검사를 받았지만 희한하게 다 정상이었다.


이상이 없다는 검사 결과와 달리 증세는 더 악화됐다. 그사이 눈까지 희미해지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손이 뻣뻣해졌고 혀도 굳으면서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칠판에 글자를 써서 의사를 전해야 했다. 몸이 점점 힘을 잃어가더니 결국에는 거동조차 못 하게 됐다.


병원에서는 뇌 병증을 의심했다. 머리를 절개해 검사한 결과, 원인이 밝혀졌다. 각종 이상 증상이 나타난 것은 림프암 탓이었다. 백혈구의 일종인 림프구가 암으로 변한 것인데, 나 같은 경우는 뇌에 암이 발생했다는 진단이었다. 담당의에게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으나 담대했다. 눈이 보이지 않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므로 두렵지 않았다. 다만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죄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새벽에 병실에서 눈을 뜨면 찬양을 들으면서 기도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잘못은 그동안 가족에게 무심한 모습들이었다. 나만 신앙생활에 열심을 낸 것 같았다. ‘정작 내 가족은 돌아보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아렸다.


또 열심히 충성한다 했으나 성도들을 제대로 섬기지 못한 것도 후회됐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성도들을 우선해 섬기느라, 담당해 놓고도 더 살갑게 섬기지 못한 교구식구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이틀에 걸쳐 섬기던 분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축복기도 했다. 여전히 질병으로 고통스러웠으나 내게 이런 일이 생긴 원인을 찾고 죄를 해결하고자 회개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눈물로 지새웠다.


2주 간격으로 6차에 걸쳐 항암치료를 진행했다. 최근 임상실험을 마친 신약을 투여해 병원에서는 부작용이 무척 심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메스꺼움과 구토도 그리 심하지 않고, 오한도 참을 만했으며, 탈모도 덜했다. 모두 주님 은혜였으리라.


중보기도로 조금씩 건강 회복

회복기인 2주간은 간병인을 고용해 요양병원에서 지냈다. 한밤중에 대변 실수를 했으나 움직이지 못하다 보니 치울 수 없었다. 간병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자고 있는지 감감무소식이었다. 혼자서 어떻게든 치워 보려고 했지만 거동도 못 하는 몸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어찌할바를 몰라 실수한 채 꼼짝없이 누워있는데 수치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다음 주에 다른 요양병원과 간병인을 알아봤다. 대부분 암환자를 받기 꺼리는데 우리 교회 성도가 운영하는 요양병원에서 흔쾌히 받아 줬다. 그때만 해도 휠체어를 타야만 이동할 수 있었는데 연세가족인 원장님이 나를 보더니 보행보조기를 주면서 걸어 보라고 했다. 용기 내어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아니, 걸어지는 게 아닌가! 다시 걸을 수 있게 돼 몹시 기뻤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새롭게 찾아간 병원에서 요양생활을 하면서 화장실을 부축 없이 다녀오고 어눌하지만 말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간병인도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 함께 기도하면서 투병생활을 이어 갔다.


투병생활 내내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 내 초라한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다. 회복하는 과정에서 영적인 시험도 여러 차례 닥쳤고 그때마다 마귀역사임을 깨달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물리쳤다. 어떤 날은 병과 싸우고, 어떤 날은 나 자신과 싸웠다. 어눌해진 말투와 서투른 행동들로 인한 주변의 불편한 시선과 싸웠고, 외로움이나 슬픔 같은 감정과 싸우기도 했다. 마귀는 질병으로 나를 넘어지게 못하니 시험 들 일을 끊임없이 만들었다. 마음이 무거울 때마다 끝까지 대적기도 하며 이겨 나갔다. 또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므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항상 시인하며 언제든 주님 나라 갈 준비를 했다.


투병생활 중 감사한 일도 많았다. 5차, 6차 항암치료 때 교회에서 긴급중보기도 제목을 공유하면서 수많은 연세가족이 나를 위해 진실하게 중보기도 해 주었다. 위로가 되고 큰 힘이 되었다. 특별히 담임목사님과 담임사모님께서도 눈물로 기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다. 내가 담임목사 내외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오히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니 송구하면서도 감사했다.


항암치료 탓에 입맛이 없어 식사 시간이 매일 고역이었다. 그럴 때마다 담임목사님이 떠올랐다. ‘성도 영혼 지옥 가지 않도록 육신의 한계를 초월해 목숨 바쳐 말씀 전하느라 육신이 연약하신 것이구나. 내가 아파 보니 목사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겠다. 목사님께서도 식사 때마다 힘드셨겠구나.’ 담임목사님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헤아려지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담임목사님을 위한 기도가 절로 나왔다.


가족의 눈물어린 격려와 뜨거운 사랑, 그리고 수많은 이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몸은 점점 빠르게 호전됐다. 6차에 걸친 지독한 항암치료를 마치고 검사한 결과, 뇌에 있던 암세포가 싹 사라졌다. 할렐루야! 그렇게 림프암 진단받은 지 5개월 만에 퇴원을 했다.


가족 소중함, 구령의 열정 되찾아

암세포는 사라졌지만 시력 감퇴와 어눌한 말투 등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 투병 당시 가장 두려웠던 것은 뇌신경이 눌린 탓에 눈이 잘 안 보이는 것. 눈앞에 있는 것조차 보이지 않아 손톱을 깎지 못했다. 신발 앞뒤를 구분하지 못해 문 앞에서 한참을 헤맸고, 승강기에 타서 다른 층을 눌러 여러 차례 당황하기도 했다. 교회 갈 때 옷을 뒤집어 입고 가기도 했다.


넘어지기도 수차례였다. 길 가다 돌부리가 안 보여서, 계단 높이를 가늠하기 어려워서, 버스에서 내릴 때 발 디딜 곳을 알 수 없어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사물이 다 흐릿하게 보이는 탓에 아는 분을 만났을 때도 먼저 인사하지 못한 것에 혹시 마음 상한 분은 없었을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두려움과 어서 고침받고 싶다는 다급함에 밤마다 눈물로 기도를 올려 드렸다. 지금은 시력이 많이 호전돼 어디든 어려움 없이 다닐 수 있다. 모든 것이 주님 은혜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오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남편과 자녀들을 더 사랑하게 됐다. 무뚝뚝하던 남편의 사랑을 평소에 잘 몰랐다. 어느 날 병원에서 밤에 눈을 떠 보니 남편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투병생활 내내 나의 손과 발이 되어 정성껏 간호해 준 남편. 그가 이토록 멋있고 든든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그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것(창2:23)도 바로 알았다.


투병 중일 때 둘째 딸이 말했다. “기도하는 엄마 말고 다른 가족이 이런 일을 겪어야 했다면 아마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라고. 엄마의 믿음을 인정해 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처가 많았다. 그동안 잘 챙겨 주지도 못하면서 기도하라고 타박만 했지, 자녀들의 심정을 헤아려 주지 못했다. 퇴원 후 딸들과도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그간의 상처를 보듬고 화해했다. 병원에서 작성한 버킷리스트가 있다. 그중 하나였던 ‘가족을 위한 기도문’을 만들고 토요일마다 가정예배를 드린다. 예배드리면서 기도 제목을 나누고 도란도란 대화도 나눈다. 이번 일을 계기 삼아 서로의 소중함을 더욱 깨달았다.


건강을 회복하면서 구령의 열정이 더욱 불타올랐다. 비록 병든 몸이었지만 병실에서도 예수 피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퇴원한다면, 몸이 회복된다면 무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기도하던 중 주님께 감동을 받았다. 잃은 양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 새로운 전도 사명이 시작됐다. 주님과 멀어진 한 성도에게 신앙생활 잘하고 있느냐 연락했더니 교회 올 차비가 없을 정도로 곤고하게 살고 있었다. 차비를 지원해 주고 반찬도 만들어 주며 섬겼더니 얼마 전 우리 교회에 다시 등록했다.


며칠 전에는 동네 마트에서 전에 섬기던 교구식구를 우연히 만났다. 안부를 물으니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김치찜을 맛있게 만들어 전하고 커피도 대접하며 신앙적인 권면을 했더니 마음 문이 열려 지난달 우리 교회에 등록을 했다.


나 나름대로 ‘만 원의 행복’이라는 전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토요일마다 돼지등뼈 만 원어치를 사서 김치찜을 푹 고아 다섯 가정에게 나눠 주며 섬긴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주님의 은혜에 빚진 자이므로 그렇게 주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주님처럼 사랑하고 섬기기를 기도

퇴원하고 2020년 12월, 6개월 만에 받은 추적관찰 검사에서도 문제가 없었고, 2021년 8월 다시 9개월 만에 받은 검사에서도 여전히 암세포가 하나도 없이 깨끗하다고 했다. 주님이 지켜 주고 계신다.


그동안 별다른 고난 없이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지라 다른 성도들의 힘겨운 인생을 헤아릴 만한 역량이 없었다. 그저 주님께 그들에게 전해 줄 성경 말씀을 달라 간구했다. 그런데 주님은 내게 ‘경험’을 주셨다. 매일 밤마다 눈물로 기도하고 있다. 아파 봤기에, 외로워 봤기에, 치욕과 고통을 당해 봤기에 알 것 같다. 그 사정을, 그 심정을, 그 아픔을! 어려운 성도만 보면 달려가 꼭 안아 주고 싶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면서 온갖 치욕과 고통과 멸시와 핍박을 당하신 주님.결국 벗겨진 채로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려 죽으신 그 극한의 고통을 겪으셨기에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시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다 아시기에 우리의 위로자요 구원자가 되신다. 그 길을 조금이나마 따라갈 수 있다면….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지금 만일 내 눈에서 눈물을 봤다면 그건 감사와 기쁨의 눈물일 것이다. 화가 복이 되게 하신 주님! 슬픔이 기쁨이 되게 하신 우리 주님께 무한한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손미애 기자



이순옥(13교구)

위 글은 교회신문 <71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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