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전도이야기] 좌절하지 않는 영혼 사랑
내가 한 명 전도, 내가 한 명 책임정착(21)

등록날짜 [ 2010-08-17 07:35:46 ]

총력전도 주일을 한 주 앞둔 월요일 저녁 회의 시간. 우리 부장(구희진)이 “우리 부도 전도자 무디처럼 매일 전도하는 것이 어떠냐?”라고 제의를 했다. 순간 나가지 못할 두 가지 이유가 떠오른다. 첫째는 몸이 안 좋다. 라면을 먹고 자도 안 붓던 얼굴이 땡땡 부어 있다는 것. 그래서 난 좀 쉬어야 한다. 둘째 이유는 전도 다녀오는 밤길은 위험하다. 난 연약한 여자다. 이런저런 합당한 이유가 머릿속을 채울 때 부장이 한마디 한다.

“기도했으니 행하면 된다!”

그 말에 대꾸하고 싶은데 할 말이 하나도 없다. 부장은 쐐기를 박듯 “차장님들 생각은 어떠신지?”라고 묻는다.

나는 그만 “좋아요”라고 대답을 해버렸다. 아,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말과 반대로, 마음은 아닌데 입술이 좋다고 해버렸다. 그렇게 해서 나가게 된 매일 밤 전도는,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낮에 여러 지체와 함께하는 전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전철 역 앞에서 무표정하게 집에 가기 바쁜 발걸음들과 한 번씩 쏟아지는 인파를 뚫고 부장과 차장 3명이 어두운 곳에서 전도하자니 정말 막막한 기분이다.

전도를 방해하는 요소는 수없이 많았다. 현대 기술의 발달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사람, 문자 보내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 게임을 하며 걸어가는 사람, DMB 시청하며 가는 사람 등 다들 무언가에 마음이 빼앗겨 있다.

바쁜 그들 속에 예수님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인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는 말씀이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바쁘게 만들고, 무관심하고, 강퍅하게 만드는 마귀를 이겨야 한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을 따라간다. 전도지를 내밀며 말을 건네기가 무섭게 손을 내저으며 지나친다. 그러기를 한참, 저쪽 편에 담배 피우는 한 청년이 눈에 들어온다. 다가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최소한 담배를 피우는 시간만큼은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웃으며 다가서자 눈이 마주친 청년은 얼떨결에 같이 웃어주다가도, 교회 소개가 시작되자 이내 경계 태세를 갖춘다. 교회를 가지 못할 이유를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한번 가겠다”는 상투적인 대답을 남긴 채 바삐 제 갈 길을 간다.

왠지 이 청년의 모습이 익숙하다. 부장이 밤 전도를 가자고 했을 때 선뜻 나서지 않고 속으로 핑계를 생각하던 내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셔서 그 사랑으로 내가 있는데, 감사하다고 기도하면서도 막상 기회를 주면 귀찮아한다. 그리고 이 귀찮음에는 그때마다 합당한 이유도 있다. 눈앞에 이 청년도 교회 나오지 못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주님은 오늘 이 청년의 모습으로 나를 비추어 보게 하신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이 내 안에 없음을 절실히 깨달으며 기도한다. ‘나는 사랑할 수 없고, 나는 전도할 수 없으니 내 안에 십자가의 보혈을 망각하지 않게 해주세요. 말로만 주님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가증한 입술 되지 않도록 주님 마음을 내게 주세요.’

감사함과 기쁨으로 전도하는 전도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조금 전 만난 청년에게 문자를 보내본다. 시간이 나면 주일에 오겠다는 답문에 피곤으로 지친 내 마음에 활력이 생긴다. 그리고 주님의 눈길이 머물러 있는 이 청년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 속에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꼭 알기를 원한다.

총력전도, 결국 한번 교회 오겠다고 약속한 그 형제는 오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기도한다.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 속에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꼭 알게 해달라고.


박남미

위 글은 교회신문 <20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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