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전도이야기] 나는 행하기만 하니 주께서 이루시더라
백선우(풍성한청년회 5선교부)

등록날짜 [ 2011-09-21 11:08:43 ]

시온성가대 전도팀으로 전도의 습관 몸에 배어
올해 공무원 합격… 어느 곳이든 복음 전할 것


<사진설명> 백선우 형제(왼쪽)가 얼마 전 전도한 전형석 형제(오른쪽)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 박상신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무척 많이 편찮으셨는데 백약이 무효일 정도였다. 그러다가 각종 병 고침은 물론, 악한 귀신역사와 저주까지 해결받는다는 말을 듣고 연세중앙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는데, 보름 뒤, 어디에서도 못 고치던 병을 깨끗이 치유받았고 온 가족을 연세중앙교회로 전도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영성 깊은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며 성장한 덕분에 군 제대 후까지 세상으로 타락하지 않고 신앙생활 하며 성장했다.
하지만, 두각을 드러내며 열정적으로 신앙생활 하기보다는 늘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게 적당히 신앙생활을 했다. 교회모임과 예배에는 빠지지 않았으나 타성에 젖어 말씀에 큰 은혜를 받지 못했다.

전도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도에 처음 우리 교회에 왔을 때도 담임목사님께서는 전도를 강조하셨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도 “주님이 가장 소원하시는 일이 영혼 살리는 전도다!”라고 늘 외치셨지만, 마음만 있을 뿐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전도의 직분이 전도자를 만든다
그러다가 2008년도에 성가대 임원을 맡으면서 토요일마다 오류동역이나 역곡역으로 기타를 메고 전도하러 갔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내가 찬양 콘티를 짜고 전도를 이끌게 됐다. 처음에는 길거리에 서서 기타를 치며 찬양하는 나를 쳐다보거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구경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찬양이 울려 퍼지면 전도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바삐 걷는 사람들의 시선과 발걸음을 붙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찬양은 더없이 좋은 전도 도구였기에 기쁨으로 계속했다.

2009년에는 아예 시온성가대에서 전도 찬양팀을 구성했는데, 내가 그 팀 부장을 맡아 매주 노방전도를 나갔다. ‘직분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부장 직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전도하러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안겨주었다. 또 기타 치며 찬양하는 순간에도 전도대원들이 전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이 오늘 꼭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해주세요’ 하며 기도하니, 자연스레 전도의 마음이 생기고 영혼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다음 해에는 대학 졸업과 함께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데 ‘잠시 전도를 접고 공부에 열중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전도를 병행하며 공부하는 것은 마치 놀면서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렇게 전도를 포기하고 나름 공부한다고 했는데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1, 2점 차이로 떨어져 좌절하기도 여러 번. ‘차라리 이럴 바엔 전도하러 갈걸. 그럼 하늘나라에 상급이라도 있지’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전도하지 않는 것이 내내 양심에 찔렸기 때문이다.

관계전도의 문이 활짝
이런 내 마음을 아신 주님께서 올해는 관계전도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다. 우선 두 달 전에 열린 흰돌산수양관 하계성회에 중고등학교 친구와 대학후배를 전도했다. 사실 두 사람은 가기 싫다고 발버둥쳤다. “성회비가 부담스럽다면 내가 내줄 테니 함께 가자”고 말해도 “어차피 안 갈 텐데 뭐 하러 등록하니? 등록하지 마라”고 했다. 하지만 선등록 마지막 날 과감하게 두 사람 이름으로 등록했다. 그러고는 “성회에 가면 분명히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며 계속 설득했다.

성회 첫날까지 안 가겠다고 버티는 친구와 후배를 ‘어떻게 하면 데려갈 수 있을까?’ 기도하며 고민하다가 한 가지 꾀를 냈다. 우선 친구에게 수양관까지 갈 차편이 없으니 좀 태워다 줄 것을 부탁했다. 그 친구는 친한 친구의 부탁이니 어쩔 수 없이 들어준다는 듯이 허락하더니, “그럼, 태워다 주고 그대로 돌아올 테니 붙잡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흰돌산수양관 근처 당하리에 도착하자 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수양관 근처에 도착했으니, 마중 나와 주세요’라고. 수양관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부장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친구의 차에 올라타서는 끝까지 설득해서 성회에 참석시켰다. 그러나 친구는 그날 밤 은혜를 받지 못하고 바로 집으로 가버렸다. 그렇다고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다음 날, 오전 집회가 끝나자마자 친구가 사는 노량진으로 달렸다. 그리고는 “후배가 수양관에 가야 하는데 차편이 없으니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이번에는 진짜 태워다 주고 올 테니 붙잡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친구의 차를 타고 후배가 사는 강남으로 향했다. 후배에게 대뜸 전화해서는 “만나자”고 했다. 수양관에 있어야 할 내가 강남에 왔으니 무슨 일인가 싶은 후배는 헐레벌떡 나왔고, 그가 차에 타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흰돌산수양관으로 돌진했다. 결국,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도를 펼친 끝에 친구는 수요일 저녁 집회까지 참석했으며, 후배는 방언은사까지 받고 목요일 마지막 집회까지 참석해 듬뿍 은혜를 받았다.

어느 곳에서든 전도의 생활화
몇 달 전, 9급 공무원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을 앞둘 때였다. 인터넷에 ‘9꿈사’(9급 공무원을 꿈꾸는 사람들)라는 카페에 필기시험에 합격한 회원 6명이 모여 면접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같이 모여서 정보도 교환하고 봉사활동은 물론, 시험관 역할도 대신해주면서 모의 면접 연습도 하다 보니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 ‘예수 믿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늘 웃으며 대하려고 애썼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나를 편안하고 순수한 사람으로 인식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교회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요즘 기독교를 몹시 비아냥거리는 풍조 때문에 전도하기가 망설여졌지만, 주님께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하고 지난 9월 4일 총력 전도주일에 3명을 우리 교회에 초청했다. 감사하게도 3명 다 우리 교회에 등록했다. 그중에서 전형석 형제는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나태한 자신의 신앙생활을 깨닫고는 요즘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있다. 특히 신앙적으로 열정적인 우리 교회 분위기가 무척 좋단다. 이제 내게 맡겨주신 이들이 우리 교회에 잘 정착할 수 있게 기도하며 권면하는 것이 내 사명이다.

이제 면접시험도 끝나고. 나는 주님의 은혜로 합격했다. 앞으로 어떤 부처에 배정받을지 모르지만, 그곳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은 다름’을 보여 관계전도가 활짝 열리길 기도한다. 또 그동안 미룬 노방전도에도 마음을 쏟고 싶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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