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전도이야기] 작은 섬김이 결국은 열매로 맺어져
오옥순 집사(53여전도회, 7교구 1지역)

등록날짜 [ 2012-09-19 13:22:40 ]

버스로 오고가며 전도한 이들을 세심히 섬겼더니
목회자, 전도부장 등 교회의 큰 일꾼들로 자라나


<사진설명> 오옥순 집사(오른쪽)가 전도한 베트남 자매(왼쪽)와 함께. 두사람은 현재 올케와 시누이 사이가 됐다.

13년째 김포에서 서울 구로구에 있는 우리 교회에 다닌다. 교회에 오가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전도는 항상 내 삶에 필수사항이다. 남편이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데다 집을 지게차 개인운수업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어서 항상 남편과 함께 지내다 보니 따로 틈을 내서 전도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혼자 외출하거나 교회에 갈 때면 늘 습관적으로 교회 신문과 주보를 챙긴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분에게 오늘 지금 이 시간 전도하지 않으면 지옥에 갈지 모른다는 다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예수님을, 그리고 은혜 넘치는 우리 교회를 소개한다. 그렇게 전도한 이웃집 아기 엄마가, 베트남 아가씨가, 평범한 아주머니들이 주님 일꾼으로 성령 충만하게 쓰임받을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교회 멀다고 신앙생활 못 할쏘냐
김포로 이사하기 전 노량진에 살 때는 남편이 핍박을 심하게 했다. 그래서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하면 설마 7세, 6세, 4세짜리 애 셋을 데리고 교회에 계속 가겠어?’라고 생각했는지 버스로 2시간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해버렸다. 그런데 이사 후에도 내가 애들을 데리고 계속 교회에 다니니 핍박이 더욱 심했다. 김포에서 서울까지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교통편이 무척 불편하다.

게다가 내가 사는 곳은 외딴 지역이어서 마을버스도 45분 간격으로 온다. 교회에 한 번 오려면 버스를 다섯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데, 애 하나는 업고, 둘은 양쪽 손에 잡고, 우유 가방을 목에 걸고 발을 동동 굴러가며 시간을 다퉈 예배드리러 다녔다. 그러다가 갑자기 비가 오면, 너무도 초라한 행렬이라 정말 피눈물을 뿌리며 기도했다. ‘우리 집 앞까지 대형 교회 버스가 드나드는 날이 속히 오게 해주세요’라고.

마침내 기도응답으로 8년 전부터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주일마다 교회 버스가 우리 집 앞까지 왔다. 할렐루야! 정말 감사해서 교회 버스 안내를 자원했다. 차에 탄 모든 분이 귀하기만 했다. 교회 홈페이지에서 버스 안내를 보고 처음 교회 버스를 이용하는 분들에게 각종 안내를 해드리며 섬겨드린다.

나를 내놓는 섬김이 영혼 살리는 밑천
이곳 김포 고촌읍 향산리는 시골인데도 10여 년 전만 해도 외국인이 무척 많았다. 김포로 이사한 이듬 해, 버스를 기다리다가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베트남 자매 두 명에게 전도하고 싶어서 전화번호를 받았다. 다음 날, 그 베트남 자매가 다니는 회사에 찾아갔다. 먹음직스러운 음식도 가져다주고, 모기장도 달아 주었다. 또 자매들이 온종일 서서 일하느라 다리가 퉁퉁 부었기에 한의원에도 데려가 주고 이모저모로 친절을 베풀어 결국 교회로 인도하여 전도했다.

베트남 자매 중 하나가 무척 착해서 내 남동생에게 소개했고 둘이 결혼을 했다. 올케(단디당화, 한국명 최진경)는 현재 주일예배 설교 말씀을 베트남어로 통역하고 있다. 전도하려고 처음 회사에 찾아갔을 때, 장차 우리 교회에서 베트남어로 설교 말씀을 통역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대로 응답받은 것이다. 그 후로는 외국인만 보면, 특히 베트남 사람만 보면 전도한다. 사실 나는 외국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데 전도 열정만은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는다.
 
올 2월에도 병원에 입원했다가 그곳에서 베트남 자매들을 전도했다. 원인 모를 고열도 있고, 뼈마디에 통증도 무척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1주간 입원하라고 했다. 뼈마디 통증이 어찌나 심한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옆 침상에 누워있는 베트남 자매를 보니 ‘예수 믿지 않고 죽어서 지옥에 가면 이보다 더한 고통을 영원히 받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통증이 심한 중에도 ‘어떻게 하면 전도할까?’ 하는 생각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부터 전도 작전에 돌입했다. 보호자 병간호 하는 베트남 자매의 사촌 동생에게 내 겨울 코트를 깔고 자라고 빌려주고, 환자용 식사가 나오면, 그 사촌 동생에게 대신 먹으라고 주니 무척 좋아했다. 작은 섬김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마음을 여셨는지 베트남 자매는 물론 그 병실을 함께 쓴 환자와 간호인까지 모두 6명에게 연락처를 받아서 퇴원했다.

그 뒤로 계속 기도하고 가슴 졸이며 전도하여 드디어 베트남 자매와 사촌 동생이 교회에 와서 등록했다. 아직은 직장 때문에 가끔 예배드리지만 우리 올케처럼 하나님께서 먼 훗날 그들을 통해서 베트남에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줄 믿는다.

김포로 이사한 다음 해쯤엔 한국인인 옆집 새댁을 전도했다. 당시 세 살짜리 아이가 있고, 둘째를 임신 중이었는데, 전도해도 그 새댁을 우리 교회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았지만, 그래도 전도하려고 물밑 작업을 계속했다. 당시 그 새댁은 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없었는데, 우리 집 것을 마음껏 쓰게 해주고 조금씩 전도를 했다.

그러다 성령께서 강권하셔서 교회 얘기를 꺼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당장 주일부터 교회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1년 정도를 뜨겁게 은혜 받고 남편 직장을 따라 청주로 이사했는데, 친정과 시댁을 모두 전도하여 복음화 했고, 그곳에서 신학공부를 해서 전도사가 되더니 올 가을에 목사 안수를 받는단다. 할렐루야!

예수 전하려는 마음은 식지 않아
19년 전, 우리 교회에서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 내가 소속한 여전도회원들이 함께 전도하러 가자고 말하면 항상 일이 있다고 둘러댔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는 혼자서 ‘저도 매일 전도하게 해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짧은 고백도 한 마디 한 마디 응답이 쌓이기 시작했다.

기도 제목대로 누굴 만나든지 예수를 전할 생각부터 떠오르고 구령의 열정으로 마음이 뜨겁고, 단 5분이라도 연락처를 받아낼 정도로 지혜와 섬기는 살가움까지 하나님께서 주셨다. 주일이면 전도해 온 분들 챙기느라 식사할 틈도 없이 바쁘지만,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기만 하다.

집과 거리도 멀고 남편이 아직 함께 예수 믿지 않아서 이런 저런 어려움은 있지만, 내 영혼은 무척 자유하다. 오직 예수, 오직 회개, 오직 전도를 외치시는 담임목사님을 만나서 죽도록 전도하며 지옥 갈 영혼 한 사람이라도 줄이고 싶은 소원을 품고 산다. 내가 전도한 사람이 우리 교회에서 전도부장으로 20명 세워질 것을 놓고 기도한다. 어느새 그 기도제목도 이루어질 것이 보여 감사하기만 하다.

보잘것없고 허물 많은 나를 자녀 삼아주시고, 신부 삼고 영원한 천국 갈 수 있는 기업을 받았으니 오직 전도, 전도하고 싶다. 오늘도 교회 가는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주님이 숨겨두신 보석 같은 영혼 만날 것을 기대하니 흥분된다.

위 글은 교회신문 <30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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