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전도이야기] 저희 눈에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이성애 성도(가명, 북한선교국)

등록날짜 [ 2012-12-26 13:13:55 ]

중국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가족 모두 한국으로 탈북
도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죽음 일보 직전까지도 가
하나님 은혜로 우리 교회로 온 후 전도자로 살아가다

<사진설명> 탈북자 이성애 성도<사진, 가명>는 북한에서 지금 연세중앙교회에까지 이끌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탈북자들을 위해 늘 전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저기 하늘에 신이 있다면, 저를 이 절망에서 좀 건져주세요. 우리 가족들도 제발 잘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자랐다. 하나님의 존재를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너무나 힘든 나머지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하늘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장사하러 나갔지만, 툭 하면 안전원(경찰)에게 적발돼 물건까지 몽땅 빼앗긴 채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여서 우리 가족은 굶기를 밥 먹듯 했다. 많게는 삼일까지 굶었다. 그러니 언제 굶어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과 막막함에 눌려 살았다.

작은 기도도 들으시는 하나님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19세 때인 1998년에 혼자 탈북했다. 딱 1주일만 중국에  가서 돈 벌어 돌아오리라 생각했지만, 탈북한 후 한국 땅에서 가족들을 다시 만나기까지 10여 년 세월이 흘렀다.

탈북 후, 중국에서 8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고, 2006년에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 와서 교회에는 다녔지만, 중국에서 물든 도박 습관을 끊지 못했다. 아예 우리 집에다 도박판을 벌여놓고 세까지 받을 정도로 대담하게 판을 벌였다. 현실도피로 도박에 빠졌지만, 마음은 늘 공허했다.

삶이 피폐해질 무렵, 문득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들 굶어 죽지 않게 해주세요’라며 애절하게 기도해서인지 가족들이 당할 고초를 생각하니 그들을 탈북시켜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 가족을 모두 한국에 데려오려면 5000만 원이라는 거액을 마련해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그런 거액을 들여도 한국까지 무사히 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이 나를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했다.

“가족 모두 탈북에 성공하면, 도박을 끊고 신앙생활 잘하면서 가족 모두 전도할게요!”

간절히 기도한 지 일 년쯤 되었을까. 2010년 11월에 드디어 여동생 가족과 오빠가 탈북하고, 12월에 부모님과 양 오빠까지 가족 모두 일사천리로 한 달 만에 한국까지 무사히 들어왔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탈북인데, “하나님이 도와야 올 수 있다”는 눈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가족들이 탈북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가족 한 명 한 명을 지키셨다. 내가 탈북한 상태에 형제들까지 북한 국경을 넘었으니 부모님만 남은 우리 집은 보위부원 중에서도 아주 악랄한 사람이 지켰다고 한다. 하지만 그 감시책이 바뀌고, 아버지가 수용소로 끌려가기 전날 마침 탈북 중개인이 방문했다.

놀라운 것은, 부모님 탈북 건은 내가 부탁하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평소 친분이 있던 중개인이라 다른 사람을 빼 오려다 이상하게 우리 집에 들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북한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도 어려운데 가족 7명이 모두 무사히 탈북한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기적 중의 기적이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다
그런데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인지, 막상 가족이 탈북하니 어느새 도박판에 다시 끼여 앉아 있었고 점차 교회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버스 운전을 하던 남편이 두 번이나 인사사고를 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박판에서 칼싸움까지 나서,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딸과 내 목숨은 거기서 끝장났을 것이다. 피가 낭자한 그때 장면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한동안 그 충격으로 아무 데도 가지 못했다.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처럼 여겨져 다시 교회에 나가려던 중, 하나원 소개로 연세중앙교회에 다니게 됐다.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설교 말씀을 가만히 들어 보니, 예전에는 교회만 나가면 천국 가는 줄 알고 엉터리로 신앙생활을 했는데, 이제부터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다. 2011년 여름, 어려움을 이기고 참석한 흰돌산수양관 직분자 성회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을 깨닫고 예수 피를 붙들고 간절히 회개하자,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며 ‘사랑하는 딸아, 네가 드디어 내게 돌아왔구나!’라는 음성을 들려주셨고, 그 사랑에 목 놓아 울었다.

세미나를 마치자, 세상에서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을 것처럼 마냥 기뻤다. 세상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처럼 예전과는 아주 달라 보였다. 알고 보니 내가 성령 체험을 한 것이었다. 그 이후, 남편이 모진 핍박을 해도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다니며 믿음을 지킬 수 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그 성령 체험 때문이었다.

올 11월 초에는 성전 옆으로 이사까지 했고, 남편은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지만, 이제는 기도모임에도 가라고 할 정도로 협력자가 됐다. 11월 말에는 양 오빠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믿음의 가정을 꾸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북한에서 먹고 살 수 없어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려달라고 한 기도뿐 아니라 내 가족을 위해 한 막연한 기도까지 모두 응답되었으니, 이 모든 풍성한 기도 응답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주님 심정으로 탈북자들 전도해
탈북자들을 볼 때면 주님께서 ‘너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네가 사랑해라’고 하시는 말씀이 들리는 것 같다. 또 “지옥 가는 걸 알면서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정말 나쁜 사람이다”라는 담임목사님의 말씀도 항상 마음에 새겨져 있다.

탈북자들과 이야기해 보면, 하나님에 대해 몰랐지만 죽을 고비에는 다들 절대적인 존재를 찾아 기도해서 한국까지 오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기도에 응답하신 그분을 잊고 사는 이들에게 “절박했을 그때 도우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고 전도하고 간증하면 탈북민들에게도 복음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내 소원은 오직 예전의 나처럼 영적으로 무지해서 고통스럽게 사는 탈북자들을 위해 같이 울고 기도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평생 공산주의 체제에 속아 살았고, 중국에서도 사기를 자주 당해 일단 의심부터 하기에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도 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 기도하고, 그 사랑으로 전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많은 영혼을 붙여주시는 것을 경험한다. 내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그렇게 기뻐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들이 회개하고 주께 돌아왔을 때 기뻐하실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니 전도를 안 할 수가 없다. ‘구원받은 너는 나의 핏값이다’라고 말씀하신 그 은혜에 감사하며 평생 복된 전도자로 살리라 다짐해 본다.

/정리 이연희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1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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