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식] 증거 제출 책임을 누가 지느냐

등록날짜 [ 2016-11-15 15:26:02 ]

김부자 씨는 이웃 박채무 씨에게 2000만 원을 빌려주었는데 갚지 않아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박채무 씨는 절대 빌린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김부자 씨는 박채무 씨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증거를 대야 한다. 가장 분명한 증거는 처분문서로서 증명력을 갖는 '차용증'이다. 차용증이 아니더라도 메모지에 금액과 날짜를 상대방 필적으로 받았다면 유력한 증거가 된다. 무통장 입금증, 계좌이체자료 등 당시 주변 상황을 토대로 간접적으로 증명할 수도 있다. 어쨌든 김부자씨가 증거를 제시해야만 승소할 수 있고, 별다른 증거 없이 빌려주었다는 말뿐이면 패소할 수밖에 없다. 법원이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면 실체 관계와 소송 결과가 달라진다.


■입증책임이란
재판에 필요한 요건 사실을 재판 당사자 중 한 쪽에게 증명할 책임을 지우는데 이를 '입증책임'이라 한다. 입증책임을 진 쪽이 입증에 실패하면 곧바로 패소한다. 즉 증거가 부족할 때 어느 쪽이 지게 되는지를 미리 정하는 것이 입증책임의 문제다.

위 사례와 반대로 박채무 씨가 "돈을 빌린 것은 맞지만 이미 갚았다"고 한다면 박채무 씨에게 입증책임이 넘어가 증거를 대야 한다. 실제로 갚았더라도 그 증거를 대지 못하면 패소한다. 갚았다는 증거로는 김부자 씨에게서 차용증을 회수하거나 영수증을 받는 방법이 있다.


■소송에서 전략적 선택
박채무 씨가 모두 갚았는데도 김부자 씨가 나쁜 의도로 소송을 제기한 상황에서 빌려주었다는 증거가 없고 갚았다는 증거도 없다면 어떻게 판결이 날까. 박채무 씨가 재판에서 "빌린 것은 맞다"고 인정하면, 갚았다는 입증책임을 부담하게 되므로 패소한다. 물론 돈도 다시 갚아야 한다. 그와 달리 박채무 씨가 "빌린 적이 없다"고 부인하면 김부자 씨가 패소한다. 박채무 씨의 답변은 '거짓'인데, 그 결과는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게 된다.


■부존재의 입증
일반적으로 존재의 입증(빌려주었다는 입증)은 입증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고 증거 부족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부존재의 입증(빌리지 않았다는 입증)은 그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법은 존재의 입증이 이루어지도록 합리적으로 입증책임을 분배한다.


선동이나 정치 영역에서는 근거 없는 의혹을 먼저 제기한 후 의혹의 대상자더러 해명하라는 경우가 많다. 합리적 근거 없이 여론몰이를 한 후 그 대상자로 하여금 부존재의 입증을 강요하는 것인데, 자신의 근거 없음을 감추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교묘한 수법이다. 입증책임의 원리를 알게 된다면, 잘못된 여론몰이에 휘말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고 판단할 수 있다.


/심준보 집사
부장판사
새가족남전도회 다윗실 실장

위 글은 교회신문 <50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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