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단기선교 보고(下)]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등록날짜 [ 2026-08-25 10:56:14 ]
낙태약의 국내 도입과 허용 검토
생명 경시 풍조 폭주할 큰 우려
태아 보호할 실효적 대안 필요해
지난달 7월 14일 대통령은 관계 부처에 낙태약 도입 검토를 지시했다. 이 상황의 문제점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금지하던 형법 제269조 제1항(자기낙태죄)과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는 법률을 곧바로 무효로 만드는 ‘단순 위헌’ 결정과 다르다. 위헌 요소를 걷어 내고 국회가 다시 입법하라는 취지였다. 즉 헌재의 결정은 낙태 허용 범위를 이전보다 넓힌 새 법을 만들라는 요구였지, 낙태를 규율하는 법 자체를 없애라는 뜻이 아니었다.
6년째 지속되는 낙태 무법 상태
그러나 헌재가 정한 대체 입법 시한인 2020년 12월 31일이 지나도록 국회는 새 법을 만들지 못했다. 정부와 국회의 입법 시도가 없지는 않았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 결과 2021년 1월 1일부터 대한민국에는 6년째 낙태를 규율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흔히 ‘입법 공백’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무법 상태’이다. 규율하는 법이 없으니 적어도 법적으로는 임신 전(全) 기간에 걸쳐 아무런 제한 없이 낙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낙태는 자유화된 셈이다. 그런데도 낙태 찬성 진영은 낙태를 한층 손쉽게 만들려고 낙태약 도입과 건강보험 적용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7월 여성단체 출신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상담 절차나 숙려기간 없는 낙태약 사용 허용과 건강보험 적용을 명시했다. 이에 호응하듯 정부도 그해 9월 123대 국정과제의 98번째로 임신중지 약물, 즉 낙태약 도입을 내걸었다.
국회를 우회한 낙태약 도입 시도의 문제
지난 7월 14일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낙태죄, 낙태 허용 범위 논쟁이 안 끝나 이걸 허용하지 않다 보니 현실적으로 필요한 여성들이 해외 직구로 복용하다 사고가 난다”라며 “방치하는 건 옳지 않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하는 건 무책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태법 입법을 무작정 기다리기보다 의사의 양심과 재량에 처방을 맡기거나 약품 판매를 우선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낙태법이 정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낙태약을 허가하지 않고 있기에 사실상 대통령의 지시는 식약처에 낙태약 허가를 주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회 입법을 우회해 ‘수입 허가’라는 행정 절차로 낙태약 합법화를 이루겠다는 뜻이다.
국민의 불편을 덜어 주는 실용적 조치처럼 보이지만 문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생명권의 주체인 태아에 대한 보호조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낙태의 편의만 살핀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말에는 한국에서 낙태약을 구할 수 없어 불편한 여성만 있을 뿐, 태아의 자리는 없다. 결국 대통령은 사회적 합의와 입법 절차를 건너뛰고 찬성 진영의 숙원을 대신 풀어 주는 해결사를 자처하게 된 셈이다.
물론 헌재 결정대로 낙태를 이전보다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면 임신 초기 낙태에 약물을 도입하는 일은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문제는 낙태약 도입 자체보다 낙태 허용 주수도, 낙태 전 상담도, 숙려기간 절차도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도입이다.
낙태약에 대한 엄격한 관리의 필요성
낙태약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약이 아니다. 복용 후 출혈이 평균 9~16일 이어지고 한 달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7~14일 뒤에는 낙태가 정상적으로 끝났는지 의료진에게 반드시 확인받아야 한다.
또 자궁 외 임신에는 이 약이 듣지 않는데, 복용 후의 복통과 출혈이 난관 파열 증상과 비슷해 응급 상황을 놓치기 쉽다. 임신 9주 이내에는 약만으로 낙태가 끝나지 않는 경우가 1%에 못 미치지만, 11주에 이르면 8.7%로 뛴다. 미국은 이 약을 일반 처방약과 달리 별도의 위해성 관리 프로그램 아래 두고, 인증받은 처방자와 약국만 취급하도록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처방 주체와 대상, 허용 기준, 의료진의 책임 범위, 이상 반응 발생 시 대응체계가 하나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의 말처럼 낙태약 사용을 의사의 재량에만 맡길 수는 없다. 환자는 건강을 위협받고, 의사는 법적 책임에 노출된다.
낙태 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
지금 필요한 것은 논란을 피해 가는 낙태약 편법 도입이 아니라 낙태 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이다. 그동안 찬성 진영은 낙태를 최대한 수월하게 하는 법을 만들려 했고, 반대 진영은 낙태 허용 자체를 꺼렸다. 그 대립이 헌재 결정 7년이 지나도록 새 법이 나오지 못한 이유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긴 무법 상태는 낙태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임신 전(全) 기간에 걸쳐 낙태를 자유롭게 하는 결과만 낳았을 뿐이다.
헌재가 제시한 틀 안에서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참담한 일이나 이제는 태아를 보호할 수단을 갖추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헌재는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고 밝혔다. 태아 보호 조치를 제도에 담을 근거가 여기에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낙태 전 상담’ 의무화이다. 독일은 임신부가 낙태 전에 국가가 인정한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고 확인서를 발급받도록 법으로 정해 두었다. 상담자는 태아의 살 권리를 알리고 임신 지속을 권유하며 양심적 결정을 돕는다. 독일의 법정상담 실태조사에 따르면 출산 여부를 두고 갈등하던 임신부의 절반가량이 상담 뒤 임신을 지속했다.
‘숙려기간’ 의무화도 여러 나라가 채택했다. 미국의 여러 주는 24시간, 독일은 상담 후 3일로 정했다. 미성년자가 두려움과 정보 부족 탓에 섣불리 낙태하지 않도록 ‘부모 동의’를 받게 하는 제도도 있다. ‘낙태 통계’ 의무화도 시급하다. 태아 부친의 ‘양육책임법’, 청소년에 대한 ‘절제·책임 교육’과 ‘생명 친화적 성교육’, ‘의사의 진료거부권’ 도입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이런 조치가 갖춰지지 않은 채 낙태약만 허용되면 법적 논의는 다시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찬성 진영이 원하는 것을 거의 다 얻은 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태아의 생명은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한다. 그 상황이 닥치기 전에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실효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계룡 기자
41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96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