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예수 없고 산타만 있는 성탄절, 이제 그만

등록날짜 [ 2017-12-19 14:33:36 ]

20세기 광고 모델로 등장한 산타클로스
예수 빠진 흥겨운 성탄절만 내세워
갈수록 세속화되는 성탄절 바라보며
우리 성도만이라도 참의미 새기고
날 위해 죽으러 오신 예수만  높여 드려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한 성탄절이 다가온다.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참의미를 새겨야 할 때다. 하지만 세상 문화는 산타·트리·화이트 크리스마스·캐럴·선물 등을 드러낸다. 매장에서는 매출을 극대화하려고 성탄절 시즌을 절호의 기회로 삼는다. 거리와 쇼핑몰에는 형형색색 트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흥겨운 리듬의 캐럴을 틀어 연말 분위기를 한껏 끌어 올린다.

산타클로스(Santa Claus)는 성탄절에 예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주인공 노릇을 한다. 수북한 턱수염을 기른 산타 할아버지가 주는 선물에 동심(童心)은 무척 설렌다. 세상 성탄 문화가 산타로 상징되고, 상업주의에 이끌려 가고 있는 현실이다.

원래 산타클로스는 생전 수많은 선행을 한 ‘미라(현 터키)’의 대주교, 성 니콜라스(St. Nicolas, AD 270~343)였다. 그는 어린이를 좋아하고 착한 이에게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후대에 산타클로스 이야기로 전래되었는데, 단순히 그의 선행을 기념하려는 데서 출발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와 산타클로스를 상업에 이용했다. 1930년대 초, 코카콜라 회사가 산타를 빨간 모자, 빨간 옷, 덥수룩한 흰 수염을 기르고 배가 불룩한 할아버지로 이미지화했다. 그 당시 코카콜라는 비수기인 겨울철에도 광고비를 대량으로 투자했다. 콜라는 여름에만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기업의 대대적인 판촉 활동에 산타클로스가 최고의 모델이 됐다.

물질주의와 상업주의에 물든 세상의 왜곡된 성탄 문화가 정착한 연유다. 비신자들에게는 성탄절의 본질이 간과된 채, 한낱 기독교의 일회성 행사로 치부된다. 기업의 상업주의에 영향을 받아 단체, 가족, 연인들이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흥겹게 놀고, 선물을 주고받는 ‘즐거운 날’이다.

특히, 산타가 크리스마스 전날 굴뚝으로 들어와 착한 어린이에게 양말 속에 선물을 넣어 둘 것이라는 동화 같은 기대로 아이들 마음은 들뜬다. 존재하지도 않는 산타클로스를 등장시킬 때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들 정서 함양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산타클로스의 존재에 대한 거짓말은 오히려 아이들 정서에 해로울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영국 엑시터대학 크리스토퍼 보일(Boyle) 교수와 호주 뉴잉글랜드대학 캐시 맥케이(McKay) 박사의 공동연구 결과에 따르면, 산타클로스에 대한 미신은 아이가 부모를 거짓말쟁이로 인식하게 하는 발단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수년 동안 이어진 산타클로스 사기극이 막을 내리면 부모에 대한 자녀의 신뢰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 자기의 모든 행동을 감시, 관찰할 수 있는 전능한 정체가 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는 일종의 공포로 작용할 수 있다고도 보았다.

크리스마스 거짓의 대명사인 산타클로스 신화는 아이보다 외려 부모를 위한 것일 수 있다고도 밝힌다. 부모가 산타 역할을 대신하면서 자기의 상상력이 인정받고 격려되던 옛 추억에 사로잡히고 순간적으로 도피하는 효과를 얻는다고 한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면 얼마나 미치겠냐고 따질 수 있겠지만, 산타클로스 신화를 가볍게 볼 수 없다.

한편, 크리스마스에 산타를 등장시켜 상업주의를 부추긴 미국 사회는 몇 년 전부터 성탄절이 또 다른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백화점이나 공공기관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간판과 로고가 ‘해피 홀리데이(공휴일)’로 바뀌는 추세다.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문구를 사용하려는 것인데, 미국이 다문화 사회인 까닭에 기독교 신자가 아닌 고객들을 배려한다는 취지에서다. 이러다가 성탄절이 세속화하다 못해 아예 자취를 감추는 것은 아닐까 염려된다. 기독교계와 일반인들 사이 갈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명분으로 마케팅 전략을 펴는 기업에 문제가 있고, 이를 조장한 미국 정부(당시 오바마 행정부) 탓도 있다.

이처럼 세상은 성탄절의 거룩하고 역사적인 의미를 제거하려 끊임없이 새로운 이유를 찾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도 영적인 각성과 부흥이 오도록 하나님께 더욱 간구해야 한다. 만백성을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은 세상의 물질 추구가 아닌 영적이고 소중한 날임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심명 집사
국회 상임위원회 근무
27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55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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