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나누며] 날마다 아이의 순수함을 배우며

등록날짜 [ 2010-07-19 23:02:38 ]

내가 뮤지컬 잉글리쉬 강사로 일한 지도 벌써 5년째 접어든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했을 때 주님이 보내주신 직장이 바로 이곳이다. 아이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일단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과 활동적이라 따분하지 않은 강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신입 때의 일이다. 어느 유치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중 담임교사가 잠깐 나간 틈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얘들아, 너희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어디 가고 싶니?” 그러자 아이들은 “천국이요!”라고 대답하기도 하고, 복음을 접해보지 못한 아이는 “그게 뭐예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너희 엄마 말씀 안 들은 적 있지? 동생 미워하고 싸운 적도 당연히 있고? 또 거짓말하고 욕심부린 적도 있지?”라고 묻자 모두 “네!”라고 대답했다. “그게 바로 죄라는 건데, 죄가 있는 사람은 다 지옥에 가야 해. 지옥은 아주 깜깜하고 무서운 곳이야.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뱀과 구더기, 마귀, 귀신이 못살게 굴고 너무 아파서 매일 울면서 살려달라고 말해도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 곳, 영원히 거기서 살아야 해.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은 다 죄가 있어서 지옥에 가야 해. 정말 힘들겠지? 하지만 예수님이라는 분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다 씻어주셨어. 그래서 우린 그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 갈 수 있게 되는 거야. 그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죄가 전혀 없는 분이라 다시 사셔서 지금 이곳에도 계신단다. 천국은 길도 황금 보석에 집도 반짝반짝, 맛있는 것도 엄청 많고 재밌는 것도 진짜 많아. 그리고 시험 같은 것도 없고 공부하지 않아도 돼. 행복하고 기쁜 일만 가득한 곳이야”라고 말해주었다. “너희 모두 예수님 믿고 천국 갈래?”라고 물었더니 모두 “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지옥 무서워요~”라고 말하며 운다. 다른 한쪽에서는 “빨리 죽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이유를 물으니 “천국 가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복음을 스펀지처럼 쭉 빨아들이며 듣는 아이들의 순수함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내 마음에 ‘주님! 이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요’라고 고백하면서 주님이 주신 비전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18:3~5)

지금도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한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참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어린아이가 어떻기에, 어떤 점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걸까? 아직 주님의 뜻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5년 동안 아이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 첫째가 아이들에겐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있다. 정말 어떤 말씀에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둘째는 아이들은 무슨 일이 생기든, 무엇을 하든 부모의 허락이나 교사의 허락을 받고 한다. “엄마 나 이거 해도 돼요?” “선생님 화장실 갔다 올게요” 등등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인정하고 어른을 의지한다. 온전히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아이들의 겸손함을 나 또한 주님께 구해야겠다.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오직 주님께서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고 싶다. 하지만 내 마음은 주님의 능력을 제한하며 ‘이것은 내가 할 수 있고, 저것은 할 수 없으니 구해야지’라는 식이다. 이런 구분이 곧 나의 교만이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또 그 순수함에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 오늘도 나는 그 순수한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아이들의 순수한 미소를 보면 피곤도, 걱정도 싹 떠나간다. 우리 주님도 아이들을 사랑하셨듯이 나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싶다.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은 계속된다. 5살배기 병규가 질문을 걸어온다. “천쨍님, 돼지도 방귀 껴요? 호랑이두요?”라고.

위 글은 교회신문 <20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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