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용서의 위대한 힘
예수 십자가 사건 상기하며 삶을 좀먹는 분노 다스려야

등록날짜 [ 2012-05-01 13:17:19 ]

범죄 피해를 당한 국민 한 분이 최근 국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국가가 국민을 범죄에서 구조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게 관련법을 강화해달라는 입법 건의를 제출하기 위해서다.

그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가족 세 명을 한꺼번에 잃은 유가족이다. 당시 참혹한 사고를 당한 후 형언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으로 하룻밤도 거르지 않고 가위에 눌려 오랜 기간 사는 자체가 고문이었으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유영철을 면회해 용서한 뒤부터는 삶을 짓누르던 악몽에서 비로소 벗어나 평안을 되찾았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그가 들려준 회고담은 내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소중한 가족이 무참히 희생돼 극심한 비통과 슬픔에도 극악한 죄인을 용서함으로써 평온을 회복한 것이다. 나는 예사롭지 않은 그와의 만남으로 한 사람의 참담한 삶을 뒤바꾼 용서의 힘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용서(容恕)는 타인이 행한 실수나 죄를 덮고 너그러움을 베푸는 행위다. 용서하는 것은 상대와 화해를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심적 괴로움의 속박에서 해방되고 정서적 안정과 마음의 화평을 회복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용서는 자신의 영육을 건강하게 하는 최고의 미래 지향적 미덕(美德)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라고 본다.

그러나 용서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부당하게 받은 상처에 불쾌감이나 분함을 느끼는 것과 같이, 인간은 천성적으로 상처에 취약한 감성적 존재이므로 한 번 상한 감정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용서는, 상대가 먼저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는 등 태도 변화나 상응한 보상을 바라게 된다. 내가 무고하게 당한 것만으로도 아픈데, 뉘우치지도 않은 상대를 그냥 용서해주면 억울하고 고통만 커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이처럼 용서는 감정을 다스려야 하므로 실상 내 힘과 의지로 행하기엔 역부족이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남을 용서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상기하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말씀하시고(눅23:34), 자신을 해한 자들에게 조건 없는 용서의 본을 보이셨다. 다시 말해, 희생적 고통을 감내하심으로 자신에게 해를 가한 자들을 기꺼이 용서하신 것이다.

이같이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이셨듯이, 아픔을 수반하더라도 성경이 가르치는 조건 없고 적극적인 용서의 정신을 함양하고 이를 행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관용의 선물이 됨과 아울러 자기 자신에게는 삶을 좀먹는 분노를 잠재워 마음의 평화를 회복하고 삶의 자유를 누리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문심명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28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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