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내리는 비 따라 오락가락

등록날짜 [ 2013-10-22 10:43:21 ]

신문을 뒤적인다. 사람들은 웰빙(well-being)을 넘어 웰다잉(well-dying)을 준비하며,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인문학에서 답을 찾는다. 정부는 어수선하고 서민은 잃은 돈에 울고, 복지는 엎어졌다. 그 와중에 주사 한 방에 피부가 팽팽해진다는 ‘신데렐라 주사’가 불티나게 팔린다.

국제 사회 역시 러시아는 인종 갈등에 휩싸이고, 중국은 미국을 향해 쓴소리를 던지고, 과거사에 묶인 일본은 원전까지 머리에 이고 혼란이 가득하다. 시대를 벼리던 예술가들은 제 빛과 제맛을 오늘도 내고 작가가 쓴 시에서는 그들만의 색깔과 빛나는 솜씨가 넘쳐나며, 나는 만평을 보다 무릎을 친다.

신문 속 세상이 다사다난하지만, 우리 집 역시 그에 못지않은 일상이 휙휙 지나간다.

아들1은 축구를 하고 아들2는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놀고 또 놀고, 아들3은 이제야 공부 좀 한답시고 늦게까지 학원에 있다. 남편은 착실하게 일하고 알뜰하게 놀고. 나는? 나는 오늘도 전업주부가 담당할 고귀한 사명을 완수하고자 빨래하고 밥하고 청소한다. 우리 집 남자들 챙기기, 내 욕심껏 책과 씨름하기, 아직도 갈팡질팡 제자리를 못 찾는 비올라 연습하기, 가끔 아버지 병문안 가기, 시집살이하는 여동생 스트레스 풀어주기. 할 일은 많고 몸은 안 따라 주고 하루해는 짧고 일주일이 쏜살같다.

계절은 여일하고 나는 늙어가는데 그래도 남편과 함께 늙는다는 사실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아들1, 2, 3은 키가 자라고 몸도 커간다. 아들1은 순금과 같고 아들2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같고 아들3은 진주 같다고 깨닫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깨달음이 즐겁고, 해바라기 가득한 언덕을 그리며 아담한 북 카페 하나 열고 싶은 소망이 먼 듯 가까운 듯 기대감을 자아낸다.

또 불혹의 나이를 건너 지천명이 된 남편, 이제는 주님 앞에 돌아올 테지, 요양병원에 계신 완고한 내 부친, 그래도 주님이 무척 사랑하시지, 이기적인 나는 아직 철이 없어 욕심대로 살려고 분주하지만, 종종 외로움에 지쳐 언제나 주님께 두 손 들고 나오는 어린애지. 이런 나도 주님께서 받아주시니 참 좋다. 그래서 난 행복하다.

나만 아는 비밀 공간도 날 행복하게 한다. 이름 모를 키 큰 나무가 있고 철길 담 너머로 그리움의 손을 내민 감나무 한 그루, 지난여름 허물 벗어놓은 매미가 사랑하던 나무 두어 그루, 무엇보다 도시에서는 좀체 찾기 힘든 내 발을 편하게 감싸주는 흙길이 있다. 너무 부지런한 경비아저씨의 빗질에 흙이 자꾸 줄어들고 잡초며 야생화며 나무들이 떨군 흔적들이 눈 맞춰줄 사이도 없이 사라져 아쉽지만 어린 새들이 걸음마를 배우고 날개에 힘이 생기고 점점 멀리 나는 연습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을 찾는다.

불현듯 부친의 병원 생활이 녹록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다. 한동안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 출입을 하시다가 병원에서 제지해 그마저 못하자 음식도 거부하고 어둠 가득한 얼굴은 불만으로 말조차 잃은 듯 벙어리가 되었다. 인권! 그거 내 맘대로 먹고 시원하게 볼일 보는 일이라는 걸 왜 진작 몰랐을까?

나는 지금 행복한데 내 주변의 그들도 행복할까?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정성남 기자(연합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35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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