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못마땅한 내 모습의 단상(斷想)
한 해 돌아보며 신앙을 재점검해보니...

등록날짜 [ 2013-12-24 10:02:33 ]

저마다 한 해를 마감하느라 바쁜 요즘,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내 신앙성적은 몇 점일지, 올해 응답받은 기도는 무엇인지, 누군가와 척진 일은 없는지 가만히 되돌아봅니다.

저를 잘 아시는 주님, 제 영적 눈이 어두워 남만 볼 수 있는 구조인지라 제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저는 제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정말 딱한 존재며 나를 똑바로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아니 내 정욕을 따라 나는 무수히 변신하느라 내 본래 모습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한 해 동안 분주히 달려왔지만 저는 지금 빈손입니다. 적당히 지나온 시간, 속 빈 강정처럼 거둘 열매 없는 저는 차라리 맹인이고 싶습니다. 주님 앞에 조아려 앉은 지금, 저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마침 짧은 비행을 하고 행인들 발밑에 추락한 낙엽만큼 가볍습니다. 세상 것들로 시끌벅적하던 마음이 잠잠해졌습니다. 이제야 제가 저기 있네요.

‘못마땅하다’란 표현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형용사로, ‘마음에 들지 않아 좋지 않다’는 뜻이며 유의어로는 ‘불만스럽다’, ‘화나다’, ‘같잖다’가 있고 예문으로는 ‘그녀는 자신의 허물은 하나도 눈에 안 보이고 우리가 하는 짓만 못마땅해 한다’가 있습니다.

왜 이 단어가 갑자기 튕기듯 내 눈앞에 나타났을까요. 제 마음 속 심연에 나도 모른 채 찰랑찰랑 넘실대는 ‘못마땅함’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네요. 어디 좀 더 자세히 두 눈 부릅뜨고 봐야겠어요. 저 못마땅함이 지닌 정체가 뭔지요. 부모님에 대한 선택권이 없어 날 때부터 주어진 근원적인 불만, 유년의 아픔에서 비롯한 피해의식으로 나 자신에 대한 한탄, 끊을 수 없는 관계인데 적잖이 날 괴롭게 하는 주변인들에 대한 답답함, 현실을 바꿀 수 없어 최면처럼 신앙으로 이겨보려던 요원한 상황들에 대한 막막함 등. ‘못마땅함’은 참 많은 이유들로 거기 그렇게 가득 모여 있네요.

제가 좀 완벽주의라 스스로 들들 볶아먹지만 해소하지 못한 일들이 저렇게 똬리를 틀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미움은 곧 살인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와서 미움에 관해서는 좀 각별하게 멀리했다고 여겼는데 ‘못마땅함’이 지닌 다른 이름은 곧 ‘불평불만’인 것을요. 불만스러운 상황이나 상대방이 고울 리 만무하니 ‘미움’이란 덩어리를 이제 어쩐다지요. 내겐 이미 해결책이 없음을 주님도 아시는데. 물리적인 펌프질로 퍼 올릴 수도 없어 난감합니다.

아, 이건 또 뭐지요? 별안간 제 인공 눈이 와싹 깨져 버렸어요. 누군가 저지른 실수로 전 어제보다 두 배는 커진 달덩이와 성탄 트리처럼 눈부신 야경을 보며 남편 차에 실려 와야 했지요. 이 흐릿함의 불편함, 이 어둠과 두려움, 갑자기 해야 할 많은 일을 그냥 손 놓고 있을 수 밖에요. 내일 당장 안과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눈이 어두운 까닭에 연말에 참으로 손해가 막심합니다.

 
정성남 기자
연합 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36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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