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살림? 살림! 살림~

등록날짜 [ 2014-04-15 16:31:01 ]

‘톡톡톡…’ 마늘이 부서지고 으깨지며 알싸한 냄새가 나를 깨운다. 시계를 안 봐도 6시 반이다. 지금보다 덜 위생적이던 그 시절, 어느 집이나 그렇듯 갈라지고 김치 물이 벌겋게 밴 나무 도마 소리에 잠을 깼다. 종종 숫돌에 갈아야 하는 투박한 칼 역시 칼자루가 나무여서 마늘 찧는 소리는 경쾌한 음악이었다.

어린 난 잠자리에 누운 채 내 입에 들어올 밥이 익는 소리, 채소 써는 소리 등 특별하진 않지만 소박한 냄새를 즐기면서 엄마 심부름을 기다렸다. 두부, 콩나물을 사오는 일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돈을 쥐고 쌩하니 나선 나는 가까운 가게를 지나쳐 좀 멀어도 초등학교 앞 가게까지 가곤 했다.

벌써 가게 앞마당 물청소까지 해 놓은 모습을 보니 두부와 콩나물이 싱싱하리라. 값을 치르고 물건 담긴 봉지를 들고 한참을 어정거리는 내게 “얘, 너 아직 안 갔니? 엄마 기다리신다. 어서 가라.” 아주머니의 외침에 뭔가 들키기라도 한 듯 무안한 얼굴로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가게 안과 밖까지 넘실대는 음악에 귀와 마음을 온통 빼앗긴 탓이었다.

열악한 주방에서 엄마는 사 남매를 먹이고 길렀다. 먹을 양식이 풍족하지 못했으니 고추장, 된장이 반찬 자리를 톡톡히 차지했다. 밑반찬이라야 고추 부각, 다시마 부각이 전부였으니 쑥개떡, 쑥버무리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살림살이는 그 집 장독대를 보면 안다던가, 주인집을 빙 둘러 다닥다닥 붙어 살던 사람들, 한끝에 놓인 계단을 오르면 장독대가 있었다. 주인집 장독들은 크고 모양도 다르고 늘 윤나게 닦여 있었다.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빨갛게 고추장이 익어 가고 된장이 숙성되고 간장 맛이 깊어졌을 테다. 그 옆에 우리 집 독들이 볼품없이 앉아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옹색한 살림일망정 끼니를 안 거르고 뭐든 먹이셨다.

난 손재주는 있으나 손맛은 없다. 그래도 아들 셋이 잘 자라 주니 그저 고맙다. 2월 즈음엔 실내에 둔 난이 소박한 꽃을 오종종 피웠기에 대견하다고 예뻐해 주었다. 신경 써서 햇볕에 놔 주거나 물을 제때 주지도 않고, 그 흔한 영양제 하나 안 줬는데 말이다.

난 딸이 없는 까닭에 온통 할 일이 줄을 잇는다. 어찌 먹는 일만 살림일까, 옷을 입어야 살고 분위기도 누려야 산다. 손맛 없는 손으로 뚝딱 끼니를 준비하고, 세탁기도 사정없이 돌려 대고, 아직도 둔한 귀 탓에 그저 둔탁하게나마 비올라 소리를 생음악으로 들려준다. 어쨌든 아들들은 자라 가고 내 살림은 부엌이 주방으로 바뀐 사실 말고는 30년 전 내 엄마랑 다를 바가 없다.

이참에 ‘살림’이 뭔지 짚어 봤다. 사전에는 한 집을 이루어 살아 나가는 일. 또 그 형편이라고 나와 있다. 기본형은 ‘살리다’이다. 살림, 살림, 살림. 죽어 가는 강과 하천을 살림, 토양을 살림, 정성 어린 손길로 죽은 화분을 살림. 이런 예들과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살리는 일, 돈은 남편이 벌지만 돈 관리가 살림은 아니다. 새삼 내가 ‘어머니’임을 깨닫는다. 내 손에 우리 집 네 남자 삶이 달렸다. 돈이 주는 것은 삶이 아니라 허기 면하기다. 사랑 고픔이다. 손맛이 없고 손끝이 야물지 못해도, 살림꾼이 아니래도 난 어미다.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고 가꾸는 어머니!

살아야겠다. 잘 살아보자! 마음에 살이 오르게, 아니 영혼까지 기쁨으로 넘치게. 이 봄 유독 꽃 사태에 멀미가 나고  현기증이 나도 정신 차리고 ‘살림’해야겠다.


/정성남 기자
연합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38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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