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섬김의 묘(妙)

등록날짜 [ 2016-03-03 16:21:55 ]

올해 새롭게 편성된 새가족여전도회에 소속돼 하나님께 충성할 기회를 얻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새가족을 맞다 보니 두 달 동안 새가족 식구 60여 명을 맞이했다. 처음에는 막연하고 암담해 어찌할 바를 몰랐고 섬기는 일 또한 녹록지 않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직장생활을 하며 맡았던 직분을 하나둘 내려놓았다. 어느새 성령 충만하던모습에서 성령 충만했던으로 과거형이 됐다. 그런데 올해 새가족여전도회 직분자로 임명되면서 주님 일에 무관심했던 내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다! 아무런 영적 감각 없이 새가족을 대하니 자괴감마저 들었다. 새가족을 가슴에 품고 기도할 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내가 눈물 나게 부끄러웠다.

 

지금 주어진 이 과분한 직분은 다시 한 번 주님 손에 내가 붙들려 살 영적 기회가 아닌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차츰 어차피 난 아무것도 줄 것이 없으니 주님을 일하시게 해야겠다, 기도해야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섬김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이나 단체를 위해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고 소외된 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것을 말한다. 반면 성경은 디아코니아’‘아바드란 용어를 주로 사용했는데 종과 노예로서 주인을 섬기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맡겨진 일을 실행한다는 의미다. 또 신하가 왕을 공적으로 섬긴다는 뜻으로도 쓰였다.

 

아주 오래전 우리 집에는 청력을 잃고 걷지 못하는 여든 노구의 승환 할머니와 청각장애에 치매 증상을 보이는 중복장애인 신년 할머니가 계셨다. 예수에 대해 강퍅하고 무지했던 승환 할머니는 안방의 벽을 가리키며 저기도 못 올라가는데 내가 무슨 수로 하늘에 올라가느냐며 빈정거렸다. 하지만 결국 예수님의 보혈을 찬양하며 소천했다. 신년 할머니는 청각장애를 초월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가 열려 복음을 듣고 천국에 가셨다. 가족에게 버림받아 삶은 처참했지만, 하나님께 뜨거운 섬김을 받은 것이다.

 

당시 나 역시 하나님에게 극진한 섬김을 받았다. 기력을 잃어 가는 신년 할머니를 위해 교회 사무실에 전화해서 심방 요청을 해 놓았더니, 바로 다음 날 이른 아침 김종선 사모님이 현관문을 벌컥 열고 다급히 들어오셨다.

 

장선화 집사, 어디가 아픈 거야?”

 

내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라고 오해하셨던 모양이다. 그때 사모님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항상 단정하고 빈틈없어 보였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퉁퉁 부은 얼굴에 병색마저 완연해 보였다. 그런데도 동이 트자 피곤한 몸으로 한달음에 달려와 예수의 사랑으로 섬겨 준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을 본받고 싶다. 온몸을 휘감으며 생살을 도려내는 날카로운 채찍질에 피가 터지고, 손과 발에 박히는 대못질로 고통의 신음조차 낼 수 없었을. 예수님은 십자가 사랑으로 나를 섬겨 주셨다. 인간의 몸으로 견뎌 낼 수 없는 잔인하고 모진 고통 속에서 떨어지는 피 묻은 살점, 뚝뚝 흘러내리는 그 피의 사랑을 입어 구원에 이르렀다.

 

오늘도 예수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22:37). 그리고 또 말씀하신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22:39). 아무런 말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섬김의 묘()를 보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그 이름의 권세를 새가족에게 전하는 예수 메신저가 되고 싶다.

장선화 권사

(새가족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47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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