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이제부터 내 닉네임은 ‘김은혜 집사’

등록날짜 [ 2018-09-28 13:06:35 ]

평소 자주 사용하던 닉네임 생각해 보다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던 내 모습 발견해
삶에서도 예수님 붙들고자 닉네임 바꿔

얼굴 옆으로 땀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니 또르르보다는 줄줄이 맞겠다. 5분 걸었는데도 이마, 얼굴, 목 할 것 없이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말았다. 뜨거운 열기에 녹을 것만 같던 폭염을 헤치고 자주 가는 커피숍 문을 열자 나도 모르게 “아, 살 것 같다!” 외치던 지난 8월.

늘 마시던 음료를 ‘사이렌 오더’(앱을 이용한 주문과 결제 서비스)로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잠시 뒤 바리스타가 외쳤다.

“김빡돔 고객님, 주문하신 아이스 카페라테 두 잔 나왔습니다.”

음료를 기다리던 남편은 ‘설마 당신 거?’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의 얼굴에서 황당함과 민망함이 묻어났다. 나는 태연하게 요즘 화나는 일이 많더라며 씩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닉네임이 좀 그런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자주 가는 커피숍은 진동벨 대신 닉네임을 불러 준다. 가끔 앉아 있으면 기발한 닉네임, 웃음이 ‘피식’ 나는 유머러스한 닉네임을 들을 수 있다. 얼마 전에는 구역 식구가 자신의 경험담을 내놨는데 커피 한잔 마시며 앉아 있는데 “꼴통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하는 소리에 한참을 웃었단다.

2년 전에는 웹 소설을 연재한 적이 있다. 본격적인 연재에 앞서 필명을 지어야 해서 남편과 여동생을 앉혀 놓고 “자, 내게 어울릴 만한 필명을 하나씩 불러 봐요” 했더니 두 사람 입에서 나온 필명 후보들은 ‘돌아이에몽’ ‘몬나리자’ ‘김빡돔’…. 죄다 이런 것들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코뿔소처럼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도대체 평소에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따져 물었더니 “왜? 잘 어울리는데?”라는 능청스러운 대답만 들었다.

보통 닉네임은 상대의 신체적 특징이나 인격적 특징을 장난스럽게 비꼬아서 만든다. 그런데 내 닉네임 후보는 다소 엉뚱하고 다혈질인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게 주변 사람들이 보는 내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닉네임을 많이 쓴다. 이메일 아이디부터 쇼핑몰 아이디, 어린이집이나 학교 학부모 모임 카페, SNS에 이르기까지 이름 대신 나를 나타낼 만한 낱말을 사용한다. 누군가는 아이들 이름을 붙여서 ‘누구누구 맘(mom)’, 또 누군가는 지향하는 목표를, 또 누군가는 좋아하는 대상을 닉네임 삼는다. 이도 저도 싫을 땐 그냥 이름 석 자 ‘○○○’.

커피숍에 앉아 조용히 내 닉네임들을 떠올렸다. ‘이룸·세움 맘’, 좋아하는 작곡가 이름을 딴 ‘짐머(zimmer)’, 여행한 국가 중 인상 깊은 나라 이름이 내 닉네임이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으로 찬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오는 듯 ‘네 마음에 나는 없니?’라고 묻는 소리가 들린다. ‘아, 주님 그게요…’ 순간 발동한 신앙 양심에 머리를 긁적였다.

어쩌면 내 닉네임 속에 신앙생활 가늘고 길게 가자는 심보, 적당히 해야 오래간다는 잘못된 생각 그리고 교회에서는 ‘김 집사’, 밖에서는 ‘센 언니’ 이미지로 사는 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른 휴대폰을 꺼내 커피숍 앱을 열고 환경 설정에 들어가 닉네임을 수정했다. 이제부터 내 닉네임은 이거다. ‘김은혜 집사’.



/김은혜 집사
80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59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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