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기도 열심히 했는데 뭐가 걱정?

등록날짜 [ 2019-06-27 13:55:29 ]


학원에서 아이들과 국어 수업을 하던 중에 김소월의 ‘산유화’가 나왔다. 마지막 4연 “산에는 꽃 지네/꽃이 지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지네”라는 구절을 읽는데 한 학생이 장난 섞인 말투로 “지네? 윽 징그러워” 하는 게 아닌가. “집중해!”라고 했지만,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여름이 시작될 쯤부터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까지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어릴 적 살던 고향집에는 유난히 지네가 많았다. 시골 흙집인 데다 지네가 좋아하는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날씨가 더워져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마루에서 저녁상을 물릴 때쯤, 마당 저쪽에서 기어오는 시커먼 지네 때문에 기겁했다.


방문을 열고 모기장을 치고 자는 여름에는 장판 위를 기어 다니는 지네 소리에 잠이 깰 정도로 예민해 깊이 잠들지 못했다. 어느 날 자다가 눈을 떴더니 머리맡 모기장에 지네가 딱 붙어 있는 게 아닌가! 무서워서 소리소리 지르다가 할머니가 고무신으로 지네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때려잡아야 제정신이 들었다. 지네 때문에 늘 긴장하며 선잠 자던 여름이 정말 싫었다.


커서 지네만큼은 아니지만 싫은 게 바로 운전이다. 몇몇은 “어머, 어쩐 일이야! 창문에 팔 올리고 한 팔로 운전하게 생긴 애가 운전면허가 없다니!”라며 놀리곤 한다. 누군가 같이 운전면허학원 다니자고 하면 “걸어가면 된다. 택시 타는 게 속 편하다. 내가 운전 안 하는 게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다”라며 거절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로 끼어드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고 운전은 무서워서 안 한다”는 저급한 명언을 남기며 무면허로 살아온 인생에 위기가 찾아왔다. 아들이 다니는 선교원이 집에서 1.8km 정도 거리인데 올여름은 도저히 못 걷겠으니 나에게 운전면허를 따란다. 집 앞에 주차된 차를 가리키며 다짐하라고 해 알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다.


날씨는 더워지고 아들은 운전면허 언제 따냐고 쪼아대서 한숨 쉬는데 우리 교회 청년인 동료가 “뭘 걱정해요. 기도했잖아요”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그래, 나도 청년 때는 그랬어. 기도했지. 그래도 무섭다고!’ 외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무이자 할부 카드를 찾아 지갑을 뒤적거렸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며 결심과 포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러 가기로 했다. 초저녁부터 안절부절못하고 갑자기 침울해지다가 화를 내는 나를 보면서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노이로제에 걸린 듯 극도로 지네에 공포를 느끼던 내게 “그까짓 거 밟으면 죽는걸” 하시며 꼭 안아주시고 기도해 주시던 엄마. 지금 살아 계시면 “그까짓 거 밟으면 되는걸” 하며 웃으실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는 기도했다. 말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 지네 공포가 사라지기를! 운전 두려움이 사라지기를! 1년 전부터 기관모임에서 합심 기도했고 작정기도회 때도 기도했으니 걱정, 근심, 두려움 딱 붙들어 매고 지네도, 액셀도 밟아 버리겠다.



/김은혜 집사
82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63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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