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등록날짜 [ 2019-07-03 13:54:26 ]

교회가 동성애 문제에 민감·단호한 이유는
동성애 비판하는 이들을 혐오세력이라 하며
기독교적 신앙의 자유를 제약하려 들기 때문
죄에는 단호히 맞서되 전도로 변화 이끌어야


얼마 전 질문을 받았다, ‘성경을 기준으로 보면 성(性) 문란, 사기, 강도가 모두 죄인데 왜 교회는 유독 동성애 문제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느냐?’는 것이다. 지난 6월 1일 열린 ‘동성애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에 기독교인의 관심과 참가가 많았기에 나온 얘기였다. 실제로 교계가 ‘사기’나 ‘강도’ 같은 범죄에는 ‘반대국민대회’를 열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기독교가 동성애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교회가 동성애 문제에 민감하고 단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동성애자들이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제약하려 들기 때문이다. 성 문란, 사기, 강도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죄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의 성적 기행(奇行)을 비판하는 자들을 ‘혐오세력’이라 지칭하며 제재하라고 요구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혐오표현규제법 등 법령 제정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의된 법령과 이미 법을 제정한 서구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 이 법들이 동성애에 대한 합리적 비판마저 제약하고 동성애를 죄로 여기는 성경적 실천을 금지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는 동성애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종교·양심·사상·표현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교회가 동성애 문제에 민감한 것은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지, 동성애가 다른 죄에 비해 더 악하다는 뜻은 아니다. 신앙의 자유를 상실할 위험 앞에서 교회의 단호함은 당연한 반응이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할 사항은 우리가 당장 척결하고 제거해야 할 것은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령과 제도이지 동성애자 자체는 아니라는 점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이방 종교 숭배나 성적(性的) 방종도 죄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을 사회에서 당장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런 죄악 속에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이 예수 피의 공로로 회개하고 속죄받아 ‘변화’되기를 소망한다. 그 소망은 전도로 이어진다. 우리는 동성애자들에게도 마찬가지 태도를 지니면 된다. 그들이 사는 방식이 좋은 삶과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니며 오히려 영육 간에 치명적인 질병을 키우게 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동성애에서 벗어나 변화되기를 설득하며 전도하면 된다.


동성애 문제가 교회에 알려진 지 수년이 지났다. 이제 막연하게 걱정하거나 분노하는 수준을 넘어 좀 더 성경적이면서도 지혜롭게 접근해야 한다. ‘악법’에는 단호히 맞서되 ‘죄인’은 돌이키기를 주님의 온유한 심정으로 소망해야 한다. 단호해야 할 것에 무르면 얕보이고, 온유해야 할 것에 단호하면 잔인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둘 다 신앙의 자유를 지키는 데 바람직하지 않다.



/이계룡 집사

36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63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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