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삶의 고비마다 주님이 함께

등록날짜 [ 2019-07-12 14:52:11 ]

죽음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곁에 있어
오늘 있으니 내일, 모레도 있다는 건 착각
삶이 끝나는 날 주님 앞에 설 때를 대비해야


서울대병원에 입원하려고 속초에서 출발하면서, 장롱면허인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앞으로 혼자 이 길을 다닐 수 있게 운전 방법과 길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운전대를 잡은 아내 옆에 앉았다. 아내가 어린 두 딸과 살아내야 할 삶의 무게를 생각하니 가슴에서 뜨거움이 울컥 솟았다.


지속되는 피곤과 함께 체중이 줄었다. 의사는 초음파 사진을 보여 주면서 말했다. “췌장 쪽에 이상이 있는 듯하니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직장에 병가를 내고 책상을 정리한 후 사무실을 나왔다. 상사와 동료는 위로와 동정의 눈길을 보낼 뿐이었다. 나와 내 가족은 깊은 어둠 속으로 떠밀려 가건만 주변 사람은 아무 일 없는 듯 일상을 이어 갔다. 철저히 단절된 외로움이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왔다.


입원한 내과 병동은 평온했다. 그 조용함에 음울한 기운이 더해졌고 환자가 뱉어 내는 고통의 무게는 병실을 더욱더 무겁게 했다. 사람만큼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 없다고 병원 생활에 곧 익숙해졌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보행등만 켜진 복도를 따라 걸었다. 어느 병실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 밤에 무슨 일로 사람들이 모여 있을까?’ 날이 밝아 그 병실을 다시 찾았더니 지난밤 한 사람이 생을 달리했단다. 중증 환자만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입원실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있던 날 또 다른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결과적으로 췌장 이상이 아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었던 때가 벌써 20년이다.


내 고향은 강원도 춘천이다. 1973년 소양강댐이 생기기 전까지 강변은 모래사장이었고 겨울이면 얼음이 얼었다. 소양강에서 여름엔 친구들과 멱을 감았고 배가 고프면 모래밭 땅콩을 캐내어 허기를 면했다. 초등학교 3~4학년쯤 좀 더 깊은 곳으로 가려고 방죽에 올랐는데 돌이끼에 미끄러져 물에 빠졌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머리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길 여러 번 반복하다 어느 순간 의식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땐 방죽 위에 누워 있는 나를 어른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목욕을 하다 허우적거리는 나를 발견하고 건져 낸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으로 돌아왔다.


최근 내가 모시는 분이 췌장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어 서울대병원에 다녀왔다. 연세가 있지만 건장하시고 의사로서 규모 있는 병원을 운영하시면서 활력 있게 사셨기에 갑작스러운 투병은 주변 사람을 매우 놀라게 했다.


죽음은 멀리 있는 듯하지만 늘 내 옆에 있다. 우리는 어제가 있고 오늘이 있으니 당연히 내일도 모레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한다. 돌이켜보면 매 순간, 삶의 고비마다 주님이 함께하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삶이 끝나는 날, 예외 없이 주님 앞에 서게 된다. 이때 삶의 모든 이력이 주님 앞에 펼쳐질 것이다.



/윤웅찬 집사
15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63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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