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최우선해야 할 국가안보

등록날짜 [ 2022-02-28 13:15:02 ]

1919년 3월 1일 서울, 평양, 의주, 원산, 진남포 등의 도시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동시에 시작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戰勝國)의 식민지에서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 독립운동이자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었다.


3.1독립만세운동에는 개신교 선교사가 세운 기독교학교, 교회에서 신앙과 의식이 성장한 기독교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3월 1일 시작된 만세운동은 그 후 약 6개월 동안 진행되어 전국 230개 지역에서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3.1독립만세운동은 조선왕조의 신민이던 조선인이 개인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사유재산이 무엇인지, 독립이 무엇인지, 국가가 무엇인지, 근대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봉기한 외침이었다. 기독교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복음 전도와 교육이 조선인들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되었다.


조선에서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 1884년부터 1934년까지 활동하던 선교사는 1060명이었다. 이 중 미국 선교사 비율이 80%가 넘었다. 조선에 파송된 미 선교사들은 철두철미한 복음주의적 청교도 정신을 조선 땅에 이식했다. 선교사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노예제도, 여성에 대한 억압, 음주, 흡연, 도박, 첩을 두는 일, 토착 미신 등 악습을 퇴출하는 데 앞장섰다. 교인들이 침례를 받으려면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해 문맹에서 깨어나도록 유도했다.


선교사들의 복음 전도로 얻은 열매 중 하나인 이승만은 대한민국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성장했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배재학당에서는 이승만 외에도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건국되기까지, 또 건국 이후에도 나라의 주춧돌로 빛나는 역할을 했다.


독립운동이란 다른 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해방) 자기 나라를 세우는(건국) 운동이다. 1945년 8월의 해방은 조선인의 힘으로만 이룬 해방이 아니었다. 미국이 일제를 해체한 결과 그로부터 분리되었을 뿐이다. 이후 3년간 조선인은 미국과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 1948년 8월 대한민국이 건국됨으로 독립운동이 마무리되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은 소련 스탈린이 시도한 거대한 공산주의 세계화의 독침을 온몸으로 막아 낸 선각자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룬 업적 중에 가장 돋보이는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다. 휴전에 결사반대했던 이승만이 휴전 수락 조건으로 제기하여 미국으로부터 받아 낸 것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성립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조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번영을 누릴 것이다.” 조약 체결을 앞두고 발표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성명서 내용 중 일부이다. 


지금 북한은 계속해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올해에도 수차례 미사일을 발사하며 무력 도발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안보의 심각한 위기 속에서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다시는 독립운동을 해야만 하는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정한영 안수집사

신문발행국장



위 글은 교회신문 <73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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