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의 소망 /김창윤 기자

등록날짜 [ 2004-11-26 17:09:10 ]

우리는 평소에는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정작 믿음을 드러내야 할 곳에서 그 믿음을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는 핑계를 대며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변호하고 위로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럴 수밖에 없는 형편을 보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믿음의 행위를 보신다.
나에게 이러한 믿음의 행위를 보여준 몇몇 지인들이 있다. IMF가 터진 이듬해인 1999년 나는 교회에서 남전도회 한 기관의 리더로 충성하고 있었다. 그 때 나와 같은 기관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했던 형제 중에 K집사다. 청년 때부터 신앙생활에 열심이던 그가 왠일인지 그 해엔 얼굴 보기 힘들었고 교회 모임에도 잘 참석하지 않았다. 여기 저기 연락을 취해 보았지만 연락이 닿질 않았다. 그 해가 가기 전 그를 꼭 만나고 싶어 퇴근 후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의 집은 난방도 안 되고 전기도 끊기고 전화도 끊긴 상황이었다. 싸늘한 방안에서 그간에 그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들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그는 최선을 다하고 노력했다. 그러나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아는 지인에게 오히려 사기당하고, 배신당하고, 월급을 떼이고…. 그는 절박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처절히 몸부림을 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누군가가 오히려 더 그를 절망의 늪으로 잡아끌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에게 무언가 힘을 줄 수 있는 믿음의 권면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 닥친 절망적인 현실 앞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께 어찌 이 형제는 이렇게까지 암담할 수가 있는지 하나님께 물어보고픈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불빛도 없이 한기만이 가득한 그의 방에서 그와 무릎을 마주하고 부등켜안고 울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저 평범한 믿음의 소유자라면 한번쯤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하나님께 원망도 하겠건만 그의 입에서는 전혀 그런 말을 들을 수 없었고, 오히려 그 자신의 무능함을 채찍질하고,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육체가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현재 그의 형편이 그렇게 좋아진 건 없지만 그는 처한 현실에 좌절하거나 넘어지지 않고 원망하기보다는 자기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했다. 그는 교회에서 누구를 만나든 상대방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며, 녹녹한 형편은 아니지만 남에게 대접하기를 즐겨한다.
그는 비록 나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진 않지만 나보다 훨씬 큰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선 사람이었다.
나는 항상 그를 보면서 느낀다. 우리의 절망과 시련의 고통이 아무리 크고 견디기 어렵다 할지라도 주님이 주신 구원의 믿음만 소유한다면 우리의 삶은 혼인 잔치집의 혼주처럼, 주님을 신랑으로 맞는 새색시처럼 즐거움과 기쁨과 소망이 넘쳐 날 수 있다는 것을….

위 글은 교회신문 <66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