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공평에 대하여

등록날짜 [ 2009-09-22 16:19:03 ]

국화꽃 피는 가을, 중국 시인 도연명은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자르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흔에(405년) 출세가도를 마다하고 소박한 전원생활을 택하였다.
“돌아가리라/ 세속과 나는 서로 다르거늘/ 다시 수레를 타고 무엇을 구할 것인가//새는 지쳐 둥지로 돌아온다(歸去來辭)”
미국의 헨리 D. 소로우도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간 단순, 소박의 자연주의로 살았다(1847년). 크리슈나무르티도 명상을 통한 내적인 혁명을 외쳤다.
역사 속에 ‘자유’를 위해 세상 소욕, 심지어 목숨까지 버렸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해결되지 않는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논쟁의 늪에 빠지기도 했다. 칸트도, 니체도, 카뮈도, 헤겔도 일생을 바쳐 어려운 철학서적을 남겼으나 그 안에 무슨 명쾌한 답이 있었던가. 어떤 논리로 현상을 분석해도, 도연명이 아무리 국화를 자르며 음주가를 읊어도, 소로우가 2년 아니라 20년을 쇠비름나물 따위로 연명하며 철저한 자연인으로 살아도, 마인드 컨트롤, 명상,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자유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간절하게 원하는 ‘자유’는 영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피 흘려 죄값을 치러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자유’라는 언어를 3차원, 4차원 구분없이 적용하고, 영적 의미를 세상에서 분석하고 구하는 착각, 즉 언어의 함정에 빠지곤 했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평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이즘(Ism, 主義)도 세상을 평등하게 할 수 없다. 이상주의자들은 사회주의에 열광했으나, 권력투쟁이 생기고 결국 ‘독재자 이익을 위한 평등 사회’로 변질되지 않았던가. 민주주의 또한 법이 우리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한다고 했지만, 판례집만 날로 두꺼워질 뿐이고, 제도적으로 ‘평등’하다 해도 ‘공평’하지 않은 경우가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남는다. 누구의 인생이든 다 무덤으로 향한다는 사실 외에 이 세상 어디에 진정한 ‘공평’이 있던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고 ‘자유’를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셨다. 특별한 사람을 위한 상대적 사랑이 아니고, 초라한 나 하나를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셨던 완벽한 ‘공평’이었다. 그 절대적 사랑 앞에 일급 뇌성마비 장애인, 송명희는 찬양한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공평하신 하나님!”.
대양의 어둔 동굴 속에서 보석들은 보는 이 없어도 빛을 발하고 들판의 꽃들은 황량한 대기에 아름다운 향기를 날린다. 그 모습 그대로 감사하며 주를 섬기는 삶이 귀한 것은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믿음 때문이다.
『실낙원』을 쓴 영국 시인 존 밀튼은 1651년, 43세 나이에 실명하고 어둠에 갇혀 시를 썼다.
“천사들이 수종 들고/ 주님은 전능하시니/ 우리에게 특별한 재능과 업적을 원하지 않으시리/ 그의 부드러운 멍에를 가장 잘 참는 자/ 그들이 가장 잘 섬기느니라” (On his blindness(눈이 멀고서) 중에서).
그는 “『실낙원』과 같은 위대한 시를 쓸 수 있는 재능도 귀하지만,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예수의 피로 ‘자유’를 ‘공평’하게 얻은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 “영혼의 때를 위하여!”

위 글은 교회신문 <16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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