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등록날짜 [ 2011-03-09 16:23:16 ]

이 세상에서 바랄 수 있는 것 결국 없어
주께서 원하시는 삶 무엇인지 깨달아야

튀니지에서 시작한 ‘재스민 혁명’ 여파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으로 퍼져가고 있다. 이집트 무바라크 독재정권이 무너졌고, 리바아에서는 42년째 정권을 잡고 있는 카다피 친위세력과 반(反)카다피 시민세력의 충돌이 내전으로 치달아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뉴스를 보고 있으면, 31년 전 광주 시민을 무참히 죽이며 권력을 잡았던 신군부세력의 잔인함이 떠오른다. 그때 기자는 대학교를 막 들어간 신입생이었고 졸업할 때까지 선배, 동료, 후배들이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에 가거나 군대로 끌려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수많은 사람이 바친 희생과 피땀으로 일궈낸 민주화였지만 정치가들은 우리에게 실망만 안겨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정치로 이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임을 알았다. 결국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삶의 현장에서 바르게 살아가려는 자세와 생각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에게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기자가 읽은 신앙 서적 중 “스스로 만든 하나님은 우상(偶像)이 될 수 있다”는 구절이 기억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바라는 하나님의 모습을 규정하고  바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 중심의 바른 믿음이 아니라, 내 처지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믿음이다.

시내 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는 동안, 모세를 기다리다 지친 이스라엘 민족은 아론에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게 했다. 왜 금송아지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모두 들어주는 하나님 우상(偶像)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나님 우상을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가 만들어낸 우상 안에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 안에 성령으로 계셔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하기 원하신다.

우리가 예배 때마다 암송하는 ‘사도신경’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이며, 송영으로 부르는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다. 그리고 그 안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모두 들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정말 믿으면 우리에게 무슨 근심 걱정이 있을 것인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신데 우리는 매일 밤 걱정하며 잠들 때가 잦다. 또 대부분 기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기 위해 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을 구할 때가 너무 많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면 모든 것을 그분의 뜻에 맡기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3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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