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연인에서 예수의 연인으로

등록날짜 [ 2004-07-23 20:32:20 ]

SBS주말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국민드라마로 뜨고 있습니다. 자기 주장이 강한 따뜻한 성품의 평범한 여성이 결손 가정의 비인간적인 재벌 2세에게 진실한 사랑을 깨닫게 하고 행복을 성취한다는 줄거리지요. 우리 사회 계층간 괴리감에 절망감마저 느끼고 있는 대중들에게 상황 변화에 대한 대리만족을 준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 중 하나라고 하네요. 그런데 저는 그 드라마 속에서 색다른 면들을 발견합니다.
‘파리의 연인’의 남자 주인공 기주의 별명이 짠, 척, 뿅인데, 이것은 여자 주인공 태영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마다 짠! 나타나선 척! 문제 해결하고 뿅! 사라진다 하여 네티즌들이 붙인 별명이지요. 그런데 그 행동이 예수님을 연상케 한다는 겁니다. 물론 상당한 차이는 있지만, 예수님도 우리가 삶에 지쳐서 도움을 구할 때 늘 곁에 함께 하시며 위로와 해결책을 주신다는 면에서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변화’의 측면인데요. 여주인공은 진실한 사랑으로 남자 주인공의 비인간성을 변화시켜 행복을 찾습니다. 이 속에선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사랑의 한계성, 그리고 예수님이 주는 사랑의 영원성을 비교해 보곤 하지요. 연인간의 사랑으로 사람의 세계관이 바뀌는 것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세기의 연인 심프슨 부인과 에드워드 황태자도 서로에 대한 미움과 회의에 싸여 말년을 보냈다고 하니 그 한계성을 짐작 할 수 있지요. 반면에 예수님과의 만남은 횟수가 더 해질수록 평강과 기쁨이 견고해집니다.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 상승을 시켜 죽은 후 천국의 처소까지 보장해 줍니다. 그가 변화시키는 행복의 범위는 영원까지 지속되지요.
또한 예수님과의 만남은 시대를 연결하며 위대한 변화를 탄생시켰습니다. 2천년 전,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율법 제도가 일반화 되었었지요. 그래서 ‘용서’는 약한 자만이 행하는 어리석은 행위로 여겨졌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포를 통해 ‘용서’는 위대한 자만이 행할 수 있는 지혜로운 행위로 바뀌어졌지요. 또한 아들을 내주실 정도로 인간을 사랑하시고 중요하게 여기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서 인간 존엄, 자유와 평등이라는 신 테마를 인류 역사에 등장시켰습니다. 지축을 뒤흔들 듯한 역사 속의 요란한 대변혁, 그 울림의 진앙지는 다름 아닌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변화에 대한 열망을 드라마 속에서 대리 만족하려는 세상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고 싶습니다. 예수님 품으로의 복귀! 그 안에선 내 삶을 옭아매던 분노의 매듭들이 풀어집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나의 참 모습을 되찾아 주변에 화해와 상생의 돌풍을 일으킵니다. 성경은 말하지요.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만이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게 하여 우리를 죽은 행실에서 떠나게 하고’(히 9:14).
여름철 피서지엔 열정을 태우려는 ‘파리의 연인’들로 넘쳐납니다. 하지만 세상을 진정 변화시키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또 하나의 장소가 있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려는 ‘예수의 연인’들로 넘치는 전국의 영성 훈련장! ‘파리의 연인’이 아닌 ‘예수의 연인’으로 확실한 변신을 꾀하려는 자들, 그들이 몰고 올 변화를 예감할 수 있기에 저는 이 여름을 사랑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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