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그 인

등록날짜 [ 2004-09-25 20:08:19 ]

오래 전에 본 영화 중에 ‘인디아나 존스’가 있지요. 그 중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 사용하셨다는 술잔 즉 성배를 소재로 하는 ‘최후의 성전’ 편에 나온 내용입니다. 독을 마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천길 낭떠러지 건너 동굴 속에 있는 성배를 가져와야 하는 주인공. 끝없는 천길 낭떠러지, 건너갈 방법은 전혀 없고! 이때 ‘예수께서 낭떠러지를 걸어서 건넜다’는 전설(물론 픽션이지요)에 힌트를 얻어 주인공은 허공에 발을 내딛습니다. 순간, 공중엔 보이지 않았던 다리가 쭉 뻗었고 목적은 성취됩니다. 그 장면이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한 이유는 ‘두려움을 극복한 용기’ 때문입니다. 높은 곳엔 올라가지도 못하는 고소 공포증의 소유자인 필자이기에 더욱 그런지 모르지요.
이런 드라마틱한 내용은 성경에 수없이 나오지요. 그 중에서 제겐 여호수아서의 한 장면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범람하는 강물, 건너갈 방법은 전혀 없고! 이때,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하나님의 법궤를 맨 제사장들은 검푸른 물살 위로 발을 내딛습니다. 그 순간 흐르던 강은 멈추어 둑처럼 쌓였고 그들은 강바닥을 밟으며 요단강을 건넜습니다(수3). 이 모두가 제게 안겨준 화두는 ‘두려움의 극복’이지요.
사실, 두려움은 보통 사람들에겐 상대하기 버거운 적수입니다. 생활 곳곳에서 여러 모양으로 우리를 괴롭히니까요. 초등학교 때 왕따 경험이 있던 제 조카는 2년이 지난 지금도 따돌림에 대한 두려움 탓에 학교 가는 것이 불안하다고 호소합니다. 중풍으로 고생하는 친구의 아버지는 ‘밤 사이에 가족들도 못 보고 죽으면 어쩌나’하는 공포 때문에 뜬 눈으로 새벽을 보내십니다.
“엄마, 우리도 이렇게 되면 어떡해?”
지난 7일 1000여명의 민간인 사상자들을 낸 러시아 오세티야 공화국 학교 인질 사태 기사를 본 아홉살 아들 아이가 염려하며 묻던 말입니다. 깊은 불황, 사회적 분열, 그리고 이젠 21세기형 무차별 테러의 위협까지 이 땅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포위 당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죠. “두려워 말라” 그리고 꼭 덧붙이셨지요.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 안에 있기 위해선, 그분께 나가야 합니다. 그때야 비로소 두려움은 극복 됩니다.
얼마 전에 끝난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 눈부신 기도 세레머니를 펼쳤던 한국의 기독 선수들. 한국이 기독교가 왕성한 국가임을 온 세상에 생중계 했던 그들의 공통된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기도는 저의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기도를 통해 두려움을 이겨내고 평안을 얻었지요.” 세계인들 앞에서 메달을 당당히 거머쥐게 했던 그 강력한 에너지의 근원은 ‘두려움을 극복하게 한 기도’였습니다.
그날, 러시아 테러 사진 기사를 본 후 제 품에 안겨 불안해하던 아들아이에게 두려움을 해체 시켜버릴 강력한 방편을 알려 주었지요.
“우리 기도하자. 기도는 하나님 품속에 안기는 거란다. 기도의 플러그를 꽂으면 우리를 무섭게 만들던 것들이 다 도망가 버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큰 능력이 우리 안에 충전 되거든. 하나님은 아들을 대신 죽이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단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나 약해서 더욱 사랑 받는 그분의 소중한 자녀란다.”

위 글은 교회신문 <6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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