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예화] 요강에 가득 담은 쌀밥

등록날짜 [ 2012-03-20 15:50:31 ]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운 교회는 1885년에 개척한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소래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교인이 몇 사람 있었으나 교세는 참으로 미약했습니다. 1891년 미국 선교사 소알론 박사 부부가 이곳에 와서 마을 유지들을 초청하여 잘 대접하며 전도를 해보려고 했습니다.

선교사 부인이 동네 집을 다녀보았더니 가정마다 안방에 놋으로 만든 요강이 있었습니다. 부인에게는 그 요강이 매우 귀한 그릇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놋으로 만든 요강 다섯 개를 빌려 깨끗이 닦아 흰 쌀밥을 가득 담고 안성은이라는 전직 대감부인에게 부탁하여 닭고기 요리를 곁들여 잘 차려놓았습니다.

초청을 받은 마을 유지 다섯 분은 뜻밖의 광경에 흠칫 놀랐지만, 체면을 지키느라 밥을 먹는 시늉만 했습니다. 당황한 것은 선교사 부인이었습니다. 정성껏 대접한다고 했지만, 마을 유지들이 얼굴을 찌푸린 것을 보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나?’ 싶어 비지땀만 흘릴 뿐이었지요.

이것을 본 안성은 씨는 마음에 감동되었습니다. 미국 사람이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나라에 와서 저렇게 수고하는 것인지…. 그래서 그때부터 예배당에 나가 앉아 있기라도 해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예배당에 나갔습니다. 이 때문에 안성은 씨는 전직 대감인 남편에게 수난을 당했으나, 예수를 믿는 데 열성을 다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황해도 서해안 일대에 전도 부인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안성은 씨와 그 자녀들이 큰 복을 받았습니다.

큰아들이 우리나라 최초로 장로가 됐고, 큰딸은 3.1 운동 후 애국 부인회를 조직하여 크게 활동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1908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나와 한국 최초로 외과 의사가 되어 중국 상하이에 가서 독립운동을 했고, 둘째 딸은 의사와 결혼했습니다. 셋째 딸은 정신 여학교를 졸업하고 1886년 서병호 장로와 결혼했고, 넷째 딸은 정신 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김규식 박사와 결혼했습니다. 다섯째 딸은 의사인 최영국 박사와 결혼하고 모교인 정신 여학교 교장을 지낸 후 연동교회 초대 권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 전하는 자를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8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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