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단기선교 보고(下)]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등록날짜 [ 2026-08-13 15:14:35 ]
다윗은 압살롬에게 쫓기는 와중에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고 기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를 숙이고
내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 주심으로
영생, 천국, 구원의 복을 허락하셔
쫓기는 왕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시3:7). 그는 여호와께서 붙드심으로 평안하게 잠만 자지 않았다. 깨어 기도했다. “일어나소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라는 외침이었다. 지체 말고 구원해 달라는 부르짖음이었다.
왕의 곁에는 아직 그를 따르는 군사들이 있었다. 칼을 쥐어 주면 싸울 자들이었다. 그는 복수의 칼을 자기 손에 쥐지 않았다. 제 손으로 아들을 베러 가지 않았다. 오히려 군사들에게 일렀다. “그 아이를 너그러이 대하라”(삼하18:5). 자기를 죽이러 온 아들이었다. 그는 일어나 달라고, 하나님을 불렀다.
그다음은 간구가 아니었다. 기억이었다.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시3:7). 이미 치신 분이었다. 이미 꺾으신 분이었다. 뺨은 모욕의 자리이다. 이가 부러진 입은 더 저주하지 못한다. 저주를 퍼붓던 그 입이 다물린다.
같은 날, 두 행렬이 엇갈렸다. 한쪽은 머리를 빳빳이 쳐들고 성으로 들어갔다. 반역은 성공한 듯 보였다. 다른 한쪽은 맨발이었다. 왕도 백성도 머리를 가리고 울며 산을 올랐다(삼하15:30). 그날은 쳐든 머리가 이긴 듯 보였다.
그러나 압살롬은 자랑하던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렸다. 노새는 빠져나갔다.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렸다(삼하18:9). 쳐든 머리가 그를 매달았다.
다윗의 머리는 숙여 있었다. 수치였다. 회개였다. 시므이가 저주를 퍼부을 때, 곁의 신하가 그 목을 베겠다고 했다. 다윗은 막았다. 여호와께서 저주하게 하신 것이라면 받겠다고 했다(삼하16:10~12). 쳐든 머리는 꺾인다. 숙인 머리는 들린다. 거기서 갈렸다.
내 머리는 어느 쪽인가. 사과 한마디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틀린 줄 알면서 우긴다. 무릎 꿇느니 관계를 끊는다. 그것이 고개를 세우는 일이다. 내 고개도 세다.
다윗이 일어나 달라고 부르짖던 그 하나님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한 언덕에서 머리를 숙이셨다. 사람들이 그 얼굴에 침을 뱉었다. 손바닥으로 뺨을 쳤다(마26:67). 뺨을 치시는 분이 뺨을 맞으셨다. 그 아래서 사람들이 비웃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더니, 하나님이 원하면 건지실 거라고(마27:43). 다윗에게 쏟아지던 저주가 그 머리 위에서 다시 울렸다. 너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그 말. 머리에는 가시관이 박혔다. 피가 그 얼굴을 타고 흘렀다.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19:30).
꺾여야 할 쳐든 머리는 내 머리였다. 내 죄가 그 머리를 빳빳이 세우고 있었다. 그 가시는 내 머리에 박혔어야 했다. 뺨을 칠 손도 내게로 와야 했다. 그 가시도, 그 손바닥도, 예수 그리스도께 갔다. 그가 내 대신 머리를 숙이셨다. 그가 숙였기에, 내 머리가 들렸다.
다윗은 이 모든 것을 한 줄로 거둔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시3:8).
구원은 내 손에 없다. 처음부터 여호와의 것이었다. 원수의 이가 꺾이는 데서 끝났다면, 이 노래는 복수로 남았을 것이다. 노래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끝은 복이다. 그 복이 그의 백성에게 내린다. 그 복이 내게도 내렸다.
내 머리가 들렸다. 내가 든 것이 아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96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