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따라가는 성지순례 ⑨
학문의 도시 아덴에서의 설교

등록날짜 [ 2006-12-28 14:17:40 ]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열심히 전했으나 핍박과 고통으로 그곳을 피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바울은 다음 선교지를 베뢰아로 또 그곳에서의 핍박을 피해 아덴으로 가게 된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듣기를 좋아 했던 베뢰아 사람들
흔히 ‘베뢰아 성경 연구’ 이런 문구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베뢰아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기 좋아하는 모습을 따서 하는 얘기이다. 한마디로 편견이나 편법 없이 주의 깊게 성경을 연구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베뢰아 사람들이 가진 바울의 설교에 대한 열심과 태도, 성경연구에 있어서 그들의 부지런함과 편견 없는 개방적인 모습들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바울은 베뢰아에서 핍박을 피해 아덴으로 도피하게 된다.

우상숭배와 철학 사상이 넘쳐난 아덴
현재 이곳에는 고층 빌딩이 없다. 물론 지진을 대비한 것도 있겠지만 시내 어디에서나 파르테논 신전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대부분 신전들이 주춧돌만 남았지만 사도바울 당시에는 신전과 신상들 투성이었다. 이렇게 종교의 중심지이기도 했지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등 다양한 철학과 학자들이 넘쳐난 곳이며 그러한 철학적 사상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은 곳이기도 하다.

아덴의 유적
아테네를 가게 되면 보통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을 보기 위해 아크로폴리스를 올라가게 되는데 그 직전에 남서쪽에 돌로 된 언덕이 있다. 그 언덕이 바로 아레오바고 언덕이다. 당시 야외 법정으로 사람을 세워놓고 재판을 할 때 사용했고, 학술 토론장으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사도바울이 그곳을 전도의 장으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의미가 깊다. 아레오바고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동판 하나가 있는데, 사도바울의 설교 전문을 볼 수 있다.

사도바울의 변론과 논쟁
아덴에서의 바울의 논쟁 중 하나는 회당에서 유대인과의 논쟁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저자에서 -당시 아고라- 헬라인들과의 논쟁이었다.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과도 논쟁을 했다. 내용은 성경본문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이 논쟁들 때문에 바울이 말쟁이라고 폄하 되기도 했다. 몸의 부활이라는 교리적이고 종교적인 내용들을 설명하는 것으로 인해 스토아학파와 많은 논쟁을 했고, 그 탓에 바울은 스토아의 바실리코스에 열린 의회에 붙들려왔다. 그곳에서 그들은 새 종교에 대한 강론을 듣고자 했다. 의회는 강론을 듣고 평가해주는 역할을 했는데, 아레오바고에서의 바울의 강론은 타 문화선교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모델을 제시했다. 그것은 기본적인 종교성으로부터 출발해서 그들이 알고 있는 접촉점과 공통점을 찾아 복음의 진수, 핵심, 회개와 믿음, 심판, 내세라는 쪽으로 복음을 증거했다.

바울의 아덴에서 선교활동 방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특별히 아레오바고에서 한 바울의 선교 방법은 오고가는 세대에 이방선교, 타 문화선교에 굉장히 중요한 모델이 되었고, 지성인 선교에 하나의 이정표를 지었다. 바울이 타 종교와 대화를 했다는 생각도 있겠지만, 그는 타종교의 구원관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타 종교 속에 있는 하나의 공통점, 접촉점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는 그 접촉점에서 출발하여 최상의 신을 소개해주겠다고 얘기하며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력하고 바르게 전한 것이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0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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