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따라가는 성지순례 ⑫
예루살렘에서의 핍박과 고난

등록날짜 [ 2007-02-18 16:23:58 ]

예루살렘! 이곳은 다윗과 솔로몬,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바울의 족적이 선명히 담긴 역사적 장소다. 그래서 현재 예루살렘은 성지의 보고라고 불리고 있다. 2000여년전, 이방선교를 떠났던 바울은 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온다. 복음전파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곳에는 죽음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만류했지만 바울은 예루살렘 행을 결행했다. 바울이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도착했던 예루살렘! 그곳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예루살렘을 향한 바울의 결단
바울은 주님처럼 끝나지 않는 사명과 복음전파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바울도 예수님처럼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여러 가지 고문을 받고 왕들 앞에 복음 전파 기회를 얻게 되었다. 결국 ‘복음 전파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수난조차도 주님처럼 감수하면서 일을 이루고자 하는 결단’ 이것이 바울의 예루살렘 행에 담긴 의미였다.

인간적인 방법에 의한 전도 실패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다 보니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공격을 받게 되고 심지어는 죽이자는 얘기까지 듣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핍박을 피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 성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른 교우들과 같이 정결예식을 하고 그들의 정결예식을 도와주면서 유대인들의 적개심을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은 무의미하게 되어버렸다.

예루살렘에서의 소동 사건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유대인들이 분노하고 소동하면서 바울을 죽이기로 결의한다.
그 이유는 이미 오래전부터 쌓여온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 때문이었다. 1, 2, 3차 이방 선교여행 시 회당에서 말씀을 전했을 때, 유대교의 전통을 무시하는 바울의 설교에 유대인들은 반감을 가졌다. 그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보니 그 바울이 그곳에 있는 것이었다. 이전부터 쌓였던 바울에 대한 반감은 ‘잘됐다 죽이자’로 터졌다. 그 결과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행21장21절) 하면서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멸시하고 더럽혔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생명처럼 여기는 것을 파괴한 자가 바울이다. 그러니 마땅히 죽여야 한다” 하며 소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때 천부장은 바울을 가이샤라로 피신시켰다.

예루살렘의 법정 소송
오순절을 통해 깨어진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고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법정 호소를 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정결법을 어겼기 때문에 바울을 법정에 세우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체포되면서 법정 소송을 당하게 되고 여러 왕들과 임금 앞에 다섯 차례 정도 서게 되었던 것처럼, 바울 또한 법정에 서서 심문을 받고 얼굴을 맞았고 유대인들은 거짓 증인을 세워서 허위 진술을 받는다. 유대인들의 은밀한 선동에 의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쳤던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바울 당시의 그들도 “바울을 없애자!”고 외쳤던 것이다. 바울의 복음 전파의 길에 예루살렘에서 당한 법정 심문은 주님이 구원을 위해 당한 심문과 너무나 유사하였다. “종이 주인보다 낫지 않다” 고 하던 누가의 말이 바울의 현실 속에서 실현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생애를 재현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모든 인류가 구원받길 원하는 소원이요 뜻이었다. 우리도 어디를 가든지 한 영혼이라도 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0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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