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05)] ‘모자이크 도시’로 불리는 마다바에서 모세가 최후 설교한 모압 평지까지
요르단 편

등록날짜 [ 2018-05-23 16:49:32 ]

요르단 사해 동쪽에 위치한 마다바
구약 ‘왕의 대로’ 지나던 풍요로운 도시
옛 교회 터에서 A.D. 6세기 예루살렘 모습
고스란히 간직한 모자이크 바닥 지도 발견
조지교회 세계적으로 유명한 순례지 돼

출애굽 40년 광야생활 마지막 도착지 모압
‘신명기’ 듣고 가나안 땅 들어갈 준비한 곳
발락왕과 발람 선지자 사건 교훈도 남겨


윤석전 목사: 모압은 이스라엘 민족을 경계하면서 이스라엘에 자기 영토와 왕위를 빼앗길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모압으로 가기 전에 마다바를 살펴보겠습니다.

모자이크 지도에 옛 예루살렘을 간직한 마다바로 가기 전 사해(死海) 동쪽 암만(Amman)시(市)에 있는 그리스정교회를 방문했다. 요르단 인구의 6%밖에 안 되는 기독교인은 대부분 그리스정교도(Greece正敎徒)다. 그리스정교회는 개신교와 달리 이콘(Icon)이라 부르는 성상화(聖像畵)를 중요시한다. 이콘을 진열한 중앙제단은 비잔틴 예술의 특징을 보여 준다. 또 교회 안 성화들은 루마니아정교회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해 동부의 ‘모자이크 도시’로 부르는 마다바로 향했다. A.D. 635년 이슬람 군이 이곳을 함락했으나 비잔틴 시대에 마다바에 있던 기독교인이 무너진 교회 터에 새 교회를 지었다. 1897년 모자이크 지도를 발견하자 이 지도를 보관해온 조지교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순례지가 됐다. 이 지도는 A.D. 6세기의 이스라엘 모습을 담고 있어 그 가치가 크다. 모자이크 지도 안에 비잔틴 시대의 예루살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메섹 문과 성묘교회도 볼 수 있다.



<사진설명> ▲[모자이크 지도] 사해 동쪽 국제무역도시 마다바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모자이크 지도다. A.D. 6세기 비잔틴 시대에 만들어져 당시 이스라엘 모습을 담고 있다. 작은 돌 230만여 개를 사용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약 30평 규모 지도였지만 나머지는 훼손되고 현재 10평 정도만 남아 있다.   ◀[모자이크 지도 속 예루살렘] ①스테판 문(사자 문) ②안나교회 ③마리아 막달레나교회(현재는 존재하지 않음) ④다메섹 문 ⑤통곡의 벽 ⑥네아교회(새 교회) ⑦예수님 무덤인 성묘교회 ⑧헤롯 성전 터 ⑨황금 문 ⑩안토니아 요새 ⑪시온 문 ⑫카르도(④다메섹 문과 ⑪시온 문을 잇는 로마식 도로)


<사진설명> ▲[현재 예루살렘 모습]  A.D. 6세기에 만들어진 모자이크 지도 속 예루살렘과 현재 예루살렘의 모습은 비슷하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자이크 지도에 담겨 있는 A.D. 6세기 예루살렘은 A.D. 2세기에 하드리안 황제가 지은 로마식 예루살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현재 예루살렘 모습과도 연결되는 모자이크 지도는 기독교 역사의 커다란 유산이다.

<사진설명>‘성서의 땅을 가다’ 촬영차 마다바 조지교회를 찾아 모자이크 지도를 보고 있는 윤석전 목사.


윤석전 목사: 마다바는 무엇이 유명한가요?

오택현 교수: 구약성경에는 ‘메드바(Medeba)’라는 지명으로 다섯 번 정도 등장합니다(민21:30; 수13:9,16; 대상19:7; 사15:2). 모압에 있는 도시를 지칭할 때 ‘느보(Nebo)’와 함께 나옵니다. 마다바는 구약성경에 ‘왕의 대로(King’s Highway)’가 지나는 교육 중심지로, 많은 대상(隊商)이 마다바를 통해 활발하게 왕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마다바를 주목한 이유는 A.D. 6세기에 만든 모자이크 바닥 지도 때문입니다. 모자이크 바닥 지도는 기독교 역사의 커다란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마다바가 ‘왕의 대로’에 있다는데 그렇다면 마다바는 무역도시였나요?

정중호 교수: 마다바는 수천 년 동안 풍요로운 도시로 알려졌습니다. 국제무역도로인 ‘왕의 대로’가 지나가는 도시라 무역하기에 좋습니다. 또 마다바를 히브리어로 메드바(Medeba)라 하는데 ‘물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마다바는 평야가 넓게 펼쳐진 비옥한 토지고 물도 많은 지역이라 농산물이 풍부합니다.

윤석전 목사: 마다바의 모자이크 지도를 어떻게 발굴했나요?

오택현 교수: 모자이크 지도를 발견하기까지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1880년 마다바에서 남쪽으로 85km 떨어진 케락(Kerak)에서 종교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곳에 사는 기독교인과 이슬람 교도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열세에 몰린 기독교인이 이슬람 교도를 이길 수 없자 그 지역을 다스리던 오스만 터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오스만 터키 사람들은 기독교인을 마다바에 정착하게 합니다. 그 덕분에 기독교인이 마다바에서 살게 됐는데 이전에 교회가 있던 흔적 위에 교회 터를 닦다가 모자이크 지도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모자이크인지, 어떤 용도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옛 교회의 흔적이기에 파괴하지 않고 방치해 뒀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예루살렘에 있던 그리스정교회의 도서관장이 마다바 지역을 우연히 들렀다가 A.D. 6세기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지역을 세심하게 그려 놓은 지도를 발견합니다. 결국 그리스정교회의 도움을 받아 모자이크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고 체계적으로 연구하게 됩니다.

윤석전 목사: 모자이크 지도가 왜 유명한가요?

오택현 교수: 마다바 지도는 A.D. 6세기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지역의 모습과 당시 건물까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합니다. 상당 부분이 파괴됐지만 다행히도 예루살렘 부분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모자이크 지도를 보면 예루살렘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A.D. 6세기 예루살렘은 A.D. 2세기에 하드리안 황제(A.D. 117~138)가 지은 로마식 예루살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마다바 모자이크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오택현 교수: 암만에서 느보산으로 가는 길에 마다바가 있습니다. 마다바를 보고 느보산을 올라가는 순례 코스입니다. 조지교회에 가면 마다바 모자이크 지도가 보존돼 있습니다. 원래 모자이크는 가로 6m, 세로 16m 규모 지도였는데 아쉽게도 3분 2는 훼손되고 3분 1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마다바 지도를 완성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오택현 교수: 학자들이 마다바 지도에 있는 모자이크를 재현해 보니 대략 작은 돌 230만 개가 들었습니다. 모자이크는 작업 자체가 숙련공이 해야 하기에 한 번에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숙련공이 돌 230만 개로 쉬지 않고 작업해도 480일 정도 걸릴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작업의 결과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마다바를 지나 모압 평지로 가 보겠습니다.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여리고와 마주한 모압 평지는 사해 동편에 위치한 요르단 땅이다. 모압 쪽 사해는 관광객용 유명 호텔이 들어설 정도로 이름난 관광지가 됐다. 모압 땅에는 페트라, 소돔과 고모라 추정지 등 구약의 중요한 유적지가 있어 사람들은 모압의 사해에서 성경 시대의 바다를 체험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 상품은 사해 흙을 온몸에 바르는 사해 전신 머드팩이다. 사해 흙은 무기물 함량이 높아 피부 해독 작용을 돕고 그 결과 생기 있는 피부로 가꾸어 준다. 모압을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도 이 사해에서 광야의 뜨거운 태양열을 식혔으리라. 모압은 발락이 발람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한 곳이고, 탕자 예화에 나오는 쥐엄나무가 있는 곳이다. 이 쥐엄 열매의 쓴맛과 같은 고통의 시간이 모압 땅에 진쳤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발생했다.


<사진설명> ① [모압 평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기 전에 거처한 곳으로, 사해 동편 요르단 땅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 모세를 통해 ‘신명기’를 주셨고, 새 시대를 이끌어 갈 지도자 여호수아를 세우셨다. 멀리 느보산이 보인다.  ②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여리고와 마주한 모압] 모압은 발락이 발람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한 곳이고, 탕자 예화에 나오는 쥐엄나무가 있는 곳이다.  


윤석전 목사: 구약 시대에 모압 평지에서 많은 사건이 일어났는데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인가요?

정중호 교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압 평지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 것입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잊을 수 없는 사건을 만납니다. 40년 광야생활이 끝난 후에 모세가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반드시 이 귀한 말씀을 듣고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 하나님의 명령이자 규례였던 신명기 말씀을 이곳에서 들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모압 평지에 있던 발람 선지자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정중호 교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여정을 마치고 마지막에 거처한 곳이 모압 평지였습니다. 모압 발락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아모리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크게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스라엘 백성의 엄청난 수를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락은 선지자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압에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은근히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으셨고 결국 발람에게 가도 좋다고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을 모압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나귀를 통해 경고하시고 하나님 말씀만 듣고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발람은 그 말씀에 순종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는 일을 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발람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정중호 교수: 첫째, 하나님께서 축복한 이스라엘 백성은 누구도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저주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둘째, 발람은 유혹에 넘어가 모압 왕에게 갔지만 하나님 말씀만 듣고 전했습니다. 그 결과 발람 선지자는 선지자로서 능력을 회복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는 귀한 일을 감당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그 이후 발람의 최후가 아름답지 못했는데 왜 그런가요?

오택현 교수: 발람에 관해 성도들이 오해하는 점이 있습니다. 발람을 이스라엘 선지자로 알고 있는데 실은 메소포타미아의 선지자였습니다. 이방인 선지자였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축복하라고 명하시니까 어쩔 수 없이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발람의 꾀’라고 비난하는 부분이 나옵니다(민31:16; 벧후2:15; 유1:11; 계2:14). 싯딤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음행한 사건을 말한 것입니다. 결국 발람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 수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잘못을 저질렀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의 모압을 점령한 후 발람을 처단했습니다(민25장, 31장).

윤석전 목사: 모압 평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정중호 교수: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해 온 광야생활을 마치고 모압 평지로 와서 요단강 너머에 있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희망에 부푼 가슴으로 살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말씀인 ‘신명기’를 주셨고 새 시대를 이끌어 갈 지도자 여호수아를 세우셨습니다. 또 인구를 조사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점검하고 전열을 가다듬어 약속의 땅으로 갈 준비를 한 곳입니다.

윤석전 목사: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 발람을 시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발람 선지자에게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도 저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최후에 모압 수많은 젊은이를 풀어 이스라엘 진군에 들어가게 했고 수많은 남녀가 간음하게 해 그곳에서 2만 3000명이나 죽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납니다(고전10:8). 또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게 했습니다(계2:14). 이스라엘 백성은 최후에 죄에 물들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광야 같은 세상을 이겨 하늘나라에 가기까지 늘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7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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