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20)] 우가리트·에블라 토판문서는 구약성경 확증 증거
시리아 편

등록날짜 [ 2018-09-20 10:51:24 ]

우가리트 토판문서에 상세 기록된 ‘바알’ 신앙
고대 근동 지역의 지배적 종교였음을 보여 줘

에블라 문서, 구약 난해 구절 해석에 큰 도움
구약 족장 시대의 도시문화 발전상도 알려 줘


윤석전 목사: 1928년 시리아 우가리트에서 발굴된 유물은 구약성경을 확증하는 증거로 20C 성서 고고학 최대 업적으로 평가됩니다. 우가리트로 가 보겠습니다.

우가리트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였다. 이 땅엔 B.C. 60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고 B.C. 2000년경 도시국가 우가리트가 등장했다. 우가리트 왕국은 주변국과 교역해 막대한 부(富)를 누리며 성장했다. 이 나라 지배자들은 방이 90개나 있는 왕궁과 연회장에서 화려한 삶을 누렸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우가리트 문화가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말해 준다. 우가리트는 많은 신을 섬겼는데 가장 중요시한 것이 바알이다. 사람들은 바알이 물을 주관하는 신이자 하늘의 주인으로 여겼다. 이런 내용은 우가리트에서 발굴된 토판문서(土版文書)에 기록되었는데 B.C. 1300년경 기록은 가나안 땅의 문화를 바탕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게 안내한다.

<사진설명> [우가리트 왕국 유적지 전경] 1928년 시리아의 농부가 쟁기질하다 발견한 고대 도기(陶器)에서 시작된 이 유적지는 고대 근동 도시 가운데 극히 중요하다. 우가리트 유적 곳곳에서 수많은 점토판 문서가 발견됐는데 이 문서에 사용된 30가지 설형 문자 기호는 이제껏 발견된 알파벳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히며 문서를 통해 당시 가나안 지역 사회와 종교를 알 수 있다.

윤석전 목사: 시리아의 우가리트는 어떤 곳인가요?

오택현 교수: 우가리트는 시리아 항구 도시 라타키아에서 북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있는 현재 ‘라스 샴라’입니다. B.C. 2000년대를 중심으로 비약적 발전을 한 도시국가인데 지중해 구브로섬과 구리 무역을 해서 크게 발전했습니다. B.C. 13C경에는 상당한 문명과 세력을 형성해 주변 지역 문헌에도 등장합니다.


<사진설명> [우가리트 지도] 우가리트는 시리아 항구 도시 라타키아에서 북쪽 10km 떨어진 곳에 있는 현재 ‘라스 샴라’다. B.C. 2000년대 지중해 앞에 있는 구브로섬과 구리 무역을 해서 발전했다.

윤석전 목사: 이 유적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택현 교수: 우가리트의 왕실 문서보관 창고에서 고대 토판문서 수천 점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이 토판문서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우가리트어’로 기록됐는데 히브리어와 동종(同種)인 셈족어로서 히브리어의 발전 과정과 히브리어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 문서 판독 결과, 구약성서와 고대 근동 역사에 영향력 있는 기록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문서를 통해 B.C. 1000년경 당시 가나안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사회·종교를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던 바알 종교 기록을 통해 성서 내용만으로는 자세히 알 수 없던 바알 종교가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져 있던, 힘 있고 무서운 종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예언자들은 이런 바알 신앙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습니다.


<사진설명> [우가리트 토판문서] 우가리트 왕실 문서보관 창고에서 발견된 토판문서를 통해 B.C. 1000년경 당시 가나안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사회·종교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윤석전 목사: 우가리트 문서가 말하는 바알 종교를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우택주 교수: 우가리트 토판문서 중에는 ‘바알’과 ‘아낫’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바알 신은 ‘폭풍의 신’으로 알려졌는데 폭풍을 불러와 땅에 비를 내리게 하는 신, 즉 ‘풍요의 신’으로 숭배받았습니다. 바알 신의 아내는 아낫 여신인데 사랑과 전쟁의 신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엘 신과 그의 배우자 아세라트 여신이 있습니다. 이 두 쌍의 신(神) 이야기가 ‘바알과 아낫’ 이야기입니다. 바알 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이들이 원수인 바다 신 얌(Yam)과 싸워 이기자 자기의 궁전을 지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후 바알 신은 죽음의 신 모트(Mot)에게 패해 죽지만, 다시 살아나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이렇게 바알과 다른 신들의 이야기는 당시 자연환경이 건기(乾氣)와 우기(雨期)로 나누어졌는데 비가 오면 바알 신이 살아 역사하는 것으로,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들면 바알 신이 죽은 것으로 이해하는 고대인들의 신앙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자연신을 숭상하면서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알 종교입니다.

<사진설명> 우가리트 바알 신상

윤석전 목사: 바알 종교 터전인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말씀해 주세요.

우택주 교수: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후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며 역사 가운데 구원을 체험한 이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삶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삶을 살아야 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해 살면서 땅에서 잘 먹고 잘살게 하는 바알 신앙과 부딪혔습니다. 신앙의 책임감을 갖고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 신앙과 기복적인 바알 신앙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기복 신앙을 극복하고 우리가 신앙의 주체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일궈 가면서 사는 여호와 신앙입니다. 우리도 잘 먹고 잘 사는 삶의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아 여호와 신앙과 바알 신앙 간의 투쟁과 갈등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신앙으로 철저히 무장해 바알 신앙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문서 발굴지 에블라로 가 보겠습니다.


시리아 서쪽 오론테스강을 향해 달리면 에블라 유적이 있다. ‘하얀 바위’라는 뜻처럼 에블라는 석회암 지반 위에 건설된 도시국가였다. 에블라 왕궁터 입구는 사라진 왕궁의 위세를 담아낸다. 에블라는 모직, 목재, 수공예품을 메소포타미아까지 광범위하게 수출한 교역 중심지였다. 이렇게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왕은 용병(傭兵)을 고용해 도시를 방어했다. 이곳에 하란을 떠나 다메섹으로 가던 아브라함이 머물렀다고 추측한다. 에블라 왕실 문서보관소에서 발굴된 토판문서 1만 5000여 점을 통해 성경 시대 가나안 땅은 고도의 문명이 발달한 도시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진설명> [에블라 왕궁터]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곳곳에서 드러난 문명의 흔적은 고도의 문명이 발달한 당시 에블라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사진설명> [왕실 문서보관실] 구약성경의 난해 구절을 해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에블라 문서가 발견된 곳.

 

<사진설명> [에블라 왕국 지도] 에블라는 시리아 제2 도시 알레포에서 남서쪽으로 약 55km 떨어진 곳에 있는 오늘날 텔마르딕이다. 에블라는 B.C. 2400~2250년에 이르러 최고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에블라가 강성한 시기는 성경의 ‘창세기 족장시대’와 비슷하다.

윤석전 목사: 에블라에서 발굴된 토판문서는 구약성서의 난해 구절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었는데 어떤 구절인가요?

오택현 교수: 에블라가 발전한 시기는 B.C. 2000년경이어서 창세기 족장 시대와 비슷합니다. 그 시기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이름이 토판문서에 종종 등장하여 동시대에 많이 쓰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한 5대 도시국가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베라라는 도시 이름들이 나온 문서가 있습니다. 당시 이런 도시가 있었다는 근거를 내세움으로써 성서의 역사성을 확증해 주는 자료입니다. 또 하박국 3장 5절에 기록된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밑에서 나오도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걸어가시는 모습을 의인화한 이 구절에서 ‘전염병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불덩이가 발밑에서 나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수천 년 동안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서에 ‘역신’ ‘불덩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가 당시 가나안 지역에 있었던 ‘전염병의 신’ ‘열병의 신’이었다고 에블라 토판에 나옵니다. 해석하면 그 신들이 하나님이 걸어가는데 하나는 마치 내시(內侍)와 같이 앞에서 그 길을 예비하고, 불덩이의 신, 즉 열병을 일으키는 신은 하나님 발밑에 밟힌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들이 두려워하는 신들을 주관하고 있다는 하박국의 메시지였습니다. 에블라 문서로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고자 한 바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 [에블라 토판문서] 에블라 왕실 문서보관소에서 발굴된 토판 문서를 통해 그 시기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이름들이 종종 등장하여 동시대에 많이 쓰였던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가 실재했다는 성경의 역사성과 구약성경의 난해한 히브리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 발굴된 토판문서 1만 5000여 점을 살펴보면 성경시대 가나안 땅은 고도로 발달한 도시 문명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도시 문화가 갖춰진 시대에 이스라엘 족장들이 하나님을 의지해 신앙을 키워 나간 것이다.

윤석전 목사: 에블라 문서는 구약성경 족장사(族長史)와는 어떤 관련이 있나요?

우택주 교수: 그동안은 성경을 보면 족장 시대에 등장하는 지역이나 만난 사람들에 관한 정보가 많지 않았기에 족장들이 사람이 살지 않는 황량한 벌판에서 방황하며 살 곳을 찾아 헤맸다고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에블라 문서를 보면, 가나안 지역은 당시 발전한 도시문화 중심 사회였습니다. 왕궁 부속도서관에서 점토판 문서를 1만 5000여 점이나 발굴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문화 업적이 많았다는 의미이고, 주변 도시국과 언어 교류, 외교, 무역 등이 이스라엘 정착하기 전에 이미 가나안 사회에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유목민인 족장 시대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비교했을 때 후진 사회였다고 추측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미 도시문화가 갖춰졌던 시대에 이스라엘 족장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앙을 키워 나간 것입니다.

<사진설명> [아브라함의 이동경로]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말씀을 좇아 가나안 땅으로 자신의 모든 소유와 사람들을 이끌고 떠난다. 에블라 문서를 통해 당시 가나안 지역은 도시 문화가 발전한 지역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아브라함은 이런 발전된 도시 문명 속에서도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신앙을 키워 나갔다.

윤석전 목사: 우가리트와 에블라의 문서 연구가 성서 계시(啓示) 신앙에 장애가 되지 않나요?

우택주 교수: 성서의 신앙은 뜬금없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문화·언어·사고방식을 토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아들을 만한 내용으로 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알고 계셔서 그 위에 하나님을 믿는 계시 내용을 말씀하셨기에 가나안의 배경사를 잘 연구하는 것이 신앙을 아는 데 도움이 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92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