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63)] 하나님 명령에 순종한 노아와 방주가 머문 터키의 ‘아라랏산’
터키 편 ⑴

등록날짜 [ 2019-10-31 12:24:19 ]

창세기에 정욕대로 산 인간을 홍수로 심판

아라랏산 방주 터는 성경의 산 역사를 증거

노아 시대 못지않게 타락한 이 시대 우리 

매일 의롭고 온전하게 살아가려는 노력 필요


윤석전 목사: 믿음 없는 사람이 노아의 방주와 홍수가 실제 사건인지 의심합니다. 하지만 아라랏산에 남아 있는 방주의 흔적은 성경 속 이야기가 사실임을 알려 줍니다.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산으로 가 보겠습니다.


터키 남동부에 있는 반(Van) 호수에서 약 90km를 달리면 무라디예 폭포를 만난다. 이스턴 안탈리아 화산과 용암에서 발원한 이 폭포의 힘찬 물살은 여행에 지친 순례자들의 피로를 씻어 준다. 아라랏산 부근에 있는 도우베야짓(Doğubayazıt) 마을은 여느 관광도시처럼 서구화 변화가 엿보인다. 마을에서 해발 3,000m 넘는 험준한 산길을 지나면 수천 년 동안 이곳에 누워 있던 ‘방주’ 자리를 마주할 수 있다. 대홍수 후 방주는 아라랏산 봉우리와 충돌하고 이곳에 안착했다고 한다. 현재 이 땅은 유목민이 양과 염소의 먹이 채집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유목민이 사는 곳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167m 정도 길이의 흙더미가 있는데 바로 이곳이 방주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이 땅은 인류 역사에서 심판과 구원을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있다.


윤석전 목사: 노아 방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아라랏산은 어디에 있나요?


홍순화 교수: 아라랏산(Mount Ararat)은 터키의 동쪽 국경선 근방에 있습니다. 이 산은 사화산(死火山)이며 전체가 화산암입니다. 폭발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1840년에 산이 흔들릴 정도로 큰 지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아라랏산에는 두 봉우리가 있는데 대아라랏산은 해발 5,185m, 소아라랏산은 3,896m입니다. 산 정상의 30%는 만년설로 덮여 있습니다. 산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창세기 8장 4절에 따라 노아 방주가 있던 산이기에 아라랏산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 지역에 있던 ‘아라’ 왕 이름에서 유래해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서는 이 산을 우라르투산이라 부르는데 이는 기원전에 우라르투라는 국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사 사람들은 이 산을 ‘노아의 산’이라는 뜻의 ‘구이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전승들은 정확하게 언제부터 있었는지 추정하기 어렵지만, 모세의 산을 시내산이라고 하는 것처럼 노아의 산이라 부르는 이곳을 ‘아라랏산’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왜 노아의 시대가 하나님의 심판 시대였는지 당시 시대 상황을 설명해 주세요.


이형원 교수: 노아 시대를 설명하는 창세기 6장을 보면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했다고 합니다. 인간 타락의 이유는 이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의 계획과 달리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하나님께 불순종했고,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죽이는 살인죄를 범하고, 가인의 후예 라멕은 자신에게 상처 입힌 소년을 죽여 살인을 범합니다. 죄의 역사가 이어져 창세기 6장 노아 시대에는 다른 여러 죄악에 더해 성적(性的) 무질서와 죄악이 팽배했다고 말합니다. 6장 1~2절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라고 표현합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버리고 외적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은 다 자기 배우자로 취하는 무질서를 보입니다. 아담 때부터 노아 시대까지 인간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인간들이 계속 죄와 무질서에 빠지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을 지은 것을 한탄하십니다.


윤석전 목사: 노아의 방주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알아보았습니다. 다시 노아 방주 터가 있는 도우베야짓으로 가 보겠습니다.


터키 아라랏산 계곡 도우베야짓 방주 터. 이곳은 노아 방주가 안착한 땅으로 추측된다. 창세 시대 노아의 방주는 온 세상을 덮은 물 위를 홀로 떠돌았다. 길이 135m, 폭 23m, 높이 14m라고 추측하는 방주는 물에 잘 뜨는 상자 모양의 짐배로 추정한다. 내부에는 노아 가족과 모든 동물이 암수 한 쌍씩 들어차 지구의 새로운 역사를 준비했고 그 시간은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방주 터 근처 박물관에는 방주를 입증하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방주 터에서 발견한 돌들에는 잣나무 결이 남아 있는데, 방주의 재료로 사용되었던 잣나무 화석들로 추정된다. 박물관 사진 중 구멍 뚫린 돌은 방주의 닻으로 사용된 돌 4개 중 하나로 추정된다. 도우베야짓 아라랏산 방주 터는 성경 사건이 신화가 아니라 실제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각인시켜 준다.


윤석전 목사: 방주 터를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아라랏산 정상 동쪽 ‘마살르’라는 조그만 마을 산 중턱에 노아의 방주 화석이 남아 있습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는 길이 300규빗, 폭 50규빗인데(1규빗=손끝에서부터 팔꿈치까지 길이) 이를 계산해 보면 길이는 약 135m여서 화석 길이와 비슷하지만, 폭은 노아 방주보다 화석이 더 넓어 학자들은 방주가 파손되는 과정에서 더 넓어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윤석전 목사: 홍수 당시 인간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정욕대로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노아라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또 오늘날에도 노아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사람이 있을까요?


이형원 교수: 현대 대형 유조선 크기만 한 방주를 홀로 지은 노아의 원동력과 하나님께 순종한 이유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노아를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노아는 매일 하나님과 동행해서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며 사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삶을 체화하고 습관화한 자였기에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주셔도 순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노아와 같이 하나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곳곳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교회를 섬기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수많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점은 우리 개개인이 노아처럼 매일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인이고 완전한 자로 인정받을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어떤 명령을 주셔도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 속 방주 사건이 남아 있는 도우베야짓 방주 터를 돌아보니 하나님의 사건은 언제든지 참이고 진실이고 우리의 믿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방주 터가 이 시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을까요?


이형원 교수: 세계 곳곳에 노아의 방주가 정착한 곳으로 추정하는 장소가 있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곳은 터키 아라랏산입니다. 아라랏산 방주 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구한 결과 그곳은 단순한 땅이 아니라 나무가 변해서 화석이 됐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노아 방주가 있었던 지역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노아 방주 터가 남아 있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여러 역사적인 사건이 신화나 허구가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사실임을 입증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성경이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자 하나님 역사의 산 증거임을 믿고 성경의 수많은 사건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윤석전 목사: 노아 때가 타락한 시대라고 성경에 말하고 있는데요. 오늘날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형원 교수: 노아 시대 못지않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죄악이 관영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노아 시대에 드러난 죄악의 모습을 단적으로 성적 무질서라고 했는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 등 성적 타락이 일어나고 있는 양상을 보면 노아 시대보다 죄악이 더 악해지는 것 같아 두려움도 느낍니다. 세상이 더 악할수록 그리스도인으로서 노아처럼 하나님 앞에서 매일매일 의롭고 온전하게 살아가려는 노력이 더욱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살피시고 감찰하시며 심판하십니다. 지금이 바로 죄악이 관영하고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고 성적으로 타락한 때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는 죄악의 도성 속에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멸망할 자가 아니라 노아와 같이 하나님께 은혜 입은 자가 돼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은혜 입은 자가 돼 이 땅에서도 영혼의 때에도 위대한 축복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4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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