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76)]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었다고 책망을 들은 사데 교회
터키 편 ⒁

등록날짜 [ 2020-01-30 12:38:08 ]

소아시아 가장 번영한 도시 온갖 유혹 가득

외향 면에서는 그럴듯한 교회생활 했지만

황금만능주의, 우상숭배, 음란 풍조 만연해

죄에 파묻힌 삶 살아…오늘날에도 큰 교훈



윤석전 목사: 사데는 로마 시대에 소아시아에서 가장 번영한 도시여서 세상 문화와 물질의 유혹이 대단했습니다. 이 도시에 사데 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결국은 세상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데 교회에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다’(계3:1)라고 무섭게 책망했고, ‘깨어 있지 않으면 심판이 도적같이 이르러 피할 수 없다’(계3:3)고 말하셨습니다. 책망과 경고를 받은 안타까운 도시, ‘사데(Sardis)’로 가 보겠습니다.


빌라델비아에서 동남쪽으로 50km를 달려 헤르모스강 계곡에 다다르면 과거 소아시아에서 가장 번영한 도시 사데 터를 만날 수 있다. 사데 유적 입구에는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 the Great)이 B.C. 330년에 세운 다산과 풍요의 여신 아데미(Artemis) 신전의 두 기둥이 서 있다. 이와 함께 서 있는 돌기둥 78개는 과거 이곳에 웅장한 신전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사진설명> 아데미 신전. 다산(多産)과 풍요의 여신 아데미를 위한 신전. B.C. 330년대에 알렉산더 대왕의 명령으로 건축이 시작됐다. 전면의 폭이 50m, 길이가 100m, 78개 석주가 늘어선 웅장한 규모다. 이오니아식 석주 2개는 18m나 되는 높이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채 남쪽 끝 부분에 남아 있다



<사진설명> 사데 위치 지도. 소아시아 루디아 왕국의 수도이자 상업과 군사 도시였다. 서머나에서 동쪽으로 약 80지점에 있다.


윤석전 목사: 사데 교회가 있는 장소를 지리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사데는 터키 3대 도시인 이즈미르(Izmir, 과거명 서머나)에서 동쪽으로 8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현지에서는 샤르디스(Sardis)라고 부르는 이곳은 이란의 명소(名所) 수산궁까지 이어지는 3,000km 국제도로 ‘왕의 길’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사데는 교통 요지일 뿐만 아니라 산업도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B.C. 7세기에 이곳을 지배한 루디아 왕국은 파트로스강에 사금을 흘려보내던 트몰로스산(Mount Tmolus) 덕분에 세계 최초로 금화와 은화를 제조할 만큼 풍요로웠습니다. 또 금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해 나중에는 법률·음악·모직 산업도 발달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데 교회는 소아시아 7개 교회 중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데 교회가 가진 문제점의 핵심은 무엇이었나요?


박영철 교수: 성경에는 사데 교회의 문제를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라고 표현했습니다. 외향은 살아 있는 듯하지만 실제 영적 생명력은 상실한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사데 교회를 소개하는 요한계시록 3장에는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3:2~3)라고 경고하면서 각성을 촉구합니다. 나아가 부유함과 음란함의 죄악이 그들의 흰옷을 더럽혔다고 말합니다. 사데 교회의 교인들이 외향 면에서는 그럴듯하게 교회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세속화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과 뚜렷이 구분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믿는 사람인지 안 믿는 사람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죄에 파묻힌 삶을 살았기에 강하게 책망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경건의 능력을 상실하고 문명 속에서 무너졌던 사데 교회는 주님께 무서운 책망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데 교회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큰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B.C. 133년 로마의 속주(屬州)가 된 사데는 소아시아에서 최고로 번영해 수십만 인구를 자랑하는 도시였다. 이곳의 믿는 자 대부분이 아데미 여신과 물질의 유혹 앞에 굴복했고, 순결한 믿음을 지킨 소수의 사람이 남아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거대한 아데미 신전 기둥 숲에서 비잔틴 시대의 교회 터가 발굴됐다. 교회 앞뜰을 지나 입구로 들어서면 넓은 홀이 자리 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창이 나 있어 교회 안 공간 사이를 열어 주고 안쪽 회중석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를 올릴 수 있다. 거대한 신전 옆 작은 교회 속에는 사데 땅에 남아 있던 소수 믿는 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설명> 사데 교회 터 앞에서 윤석전 목사와 침신대 교수들.  



<사진설명> 사데 교회. A.D. 4세기경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아데미 신전을 빼앗아 예배드렸다. 초기에는 신도 수가 매우 많았으나 영적으로는 미약했다. 때문에 성경에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계3:1)”라는 책망을 받았다. 현재의 사데 교회 유적은 아데미 신전 뒤편에 있는 비잔틴 시대에 벽돌로 지은 교회다.


윤석전 목사: 요한계시록 3장 4절에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소수의 남은 자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남은 자에 관한 성경 개념을 말씀해 주세요.


박영철 교수: 모든 사람이 죄악으로 치달아 하나님께서 그들을 필연적으로 멸망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구원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 중에 더럽혀지지 않은 자들을 남겨 두셨습니다. 신학자들은 이 말씀을 ‘남은 자 사상’이라고 말합니다. 그 근원을 따져 보면 노아의 홍수와 이세벨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멸망시킬 홍수에서 노아의 식구를 남겨 인류의 역사를 이어 가게 하셨고,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잡아 죽일 때 엘리야가 “모든 주의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했고 이제 나만 남았는데 나도 저들이 찾습니다”라고 호소하자 아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을 남겨 두었다고 말씀하기도 합니다(왕상19:18).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과 메시아 왕국 계획을 위해 옷을 더럽히지 않은 소수를 남겨 두어 그들이 다시 큰 나라를 이룬다고 믿는 것이 ‘남은 자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흰옷을 입은 소수의 사람이 있다’는 말씀에서 사데 교회가 그토록 세속화했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자들을 남겨 두셨고, 여전히 소망을 품고 계시다는 귀중한 메시지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아데미 신전 뒤편에 아직도 작은 예배 터가 남아 있습니다. 비잔틴 시대에 예배를 드린 흔적이라고 여겨지는데요, 신전과 예배당이 같이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홍순화 교수: 사데 교회 터가 있는 아데미 신전은 소아시아 지역의 풍요 신 아벨레의 신전을 알렉산더 대왕이 파괴하고 지은 것입니다. 아데미 신전은 길이 99m, 폭 46m 땅에 높이 18m 기둥을 세워 만들었기에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사데 교회는 아데미 신전의 웅장한 규모와 달리, 기도실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많은 분이 ‘왜 여기에 교회를 조그맣게 지었을까?’ 궁금해합니다. 왜 이곳에 세웠을까 생각해 보면, 당시 신전들은 그 지역에서 명당이라 여기는 장소에 세워졌기에 초대교회들은 이방종교의 신전 터를 보수하여 사용하거나 그 부근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사데 교회도 아데미 신전 근처에 터를 잡았는데, 이는 악한 영의 기운을 막았다거나 이방 신전을 접수해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었다는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제 나름의 해석으로는 그 지역에서 제일 좋은 곳에 교회를 세워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가 봐도 기도실 같기는 하지만 그 시대 교회로서는 상당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데미 신전이 워낙 크니까 그렇게 보이지만 그 담대함과 믿음의 절대적 양보 없는 도전적 신앙 같은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에 나 같으면  아데미 신전 옆에 교회를 세워서 거대한 신전의 사람들과 더불어 목숨 걸고 다투고 싸울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신앙을 새롭게 다짐하면서 돌아온 기억이 납니다.


사데 교회가 주는 메시지는 성도 각자의 상태에 따라서 다양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라면 공통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메시지가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박영철 교수: 사데 교회에 현실적으로 나타난 문제를 말한다면,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었다는 것입니다. 사금이 생산되는 곳이었고, 우상숭배 하는 장소였다는 점에서 사데의 그리스도인들도 원래는 죄 가운데 있다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다시 옛것으로 돌아가 흰옷을 더럽힌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요한계시록 3장 3절에는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근본이 어떠한 존재였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십자가의 보혈에 힘입었는지를 항상 되돌아보며,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옛 방식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제를 상실한 채, 산 것 같지만 실제로는 죽은 상태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아데미 신전은 어머어마한 규모입니다. 저도 현장에 가 보니까 입이 벌어질 정도로 거대한 신전이었어요. 그 신전에서 행해진 각종 제사 규모도 대한했지만, 여신 숭배는 공창(公娼) 제도로 이어져서 음란의 물결이 굉장했습니다. 오늘날 인터넷이 안방에 들어와서 이제 자라나는 새싹 같은 아이들에게도 무분별하게 음란 죄가 밀려 드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점에서 사데 교회를 향해서 “너희가 처음에 어떠했으며 어떤 은혜를 받았고 지금 어떤 상태였는지 다시 돌이키고 회개하라”고 하는 이 말씀은 우리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에는 계속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회개하지 못하면 사데 교회와 같이 우리도 멸망당하는 운명에 처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 마음속이 사데 교회와 같은 상태가 됐다면 즉시 돌아서서 회개해 자기 삶의 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돌아보면서 내 안에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로 구원받은 은총이 있는지, 내가 믿음 안에 살면서 영혼의 때를 위해서 값지게 살겠다는 진실한 믿음이 있는지, 내가 가진 모든 환경을 신앙생활을 위해 사용하면서 영적 생활에 전진하고 있는지 살펴보길 바랍니다. 만약 나의 믿음이 사데 교회와 같은 믿음이라면 즉시 정리하고 내 안에 주님을 모시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6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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