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83)] 사도요한과 밧모섬 침례 터 그리고 에베소 사도요한기념교회
터키편(21)

등록날짜 [ 2020-03-17 15:50:29 ]

황량했던 유배지에서 사랑과 생명 전하고
에베소로 돌아와 교회 섬기고 제자들 양육
핍박·고난 속에서도 순교자처럼 살아간 삶
죽을 때까지 주님이 맡기신 사역을 감당




<사진설명>  밧모섬과 스칼라 항구. 터키 에베소 남서쪽 에게해에 있는 그리스령 화산섬. 맑은 물과 어종이 풍부해 매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유명 관광명소이자 사도 요한의 유배지로, ‘거룩한 땅’이라고 부른다. 



<사진설명>  사도 요한 묘지 앞에 선 윤석전 목사와 침신대 교수들. 



<사진설명> 밧모섬 부근 지도.  



<사진설명>  누가의 묘. 에베소 유적지 입구에 있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이 누가의 유해를 이 땅에 묻었다고 한다.



윤석전 목사: 유대인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 자칭 ‘메시아’라는 청년으로 인한 사태가 종식될 줄 알았지만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했습니다. 이것이 생명(生命)입니다. 이 생명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알고, 갖게 된 사도 요한. 그는 사랑의 사도요, 생명의 사도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밧모섬에 유배되지만 그곳에서도 전도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이 복음을 전해 많은 사람을 전도했다는 증거인 밧모섬 침례 터로 가 보겠습니다.


터키 에베소 남서쪽 약 70km 지점 에게해에 그리스령 화산섬인 밧모섬이 있다. 터키 쿠사다시 항에서 밧모섬 스칼라 항까지 4시간 가까이 걸린다. 스칼라 항은 수심이 깊어 큰 외항선까지 정박할 수 있는 국제 항구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지만, 2000년 전 이곳은 로마 중죄인의 유배지였고 그 중엔 사도 요한도 있었다. 현재 주민 3000여 명이 살고 있으나 당시엔 황량했던 이 땅에서 사도 요한은 끊임없이 전도했는데, 그 흔적인 침례 터가 있다. 죄수들을 예수 안에서 거듭나도록 인도한 사도 요한. 요한이 이끈 영원한 생명의 역사가 있기에 유명 관광도시로 탈바꿈한 밧모섬을 사람들은 여전히 거룩한 땅이라 부른다.


윤석전 목사: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 이 명령을 받은 사도 요한이 예수 믿어 구원 받은 사람에게 침례를 준 터를 직접 가서 보면 감동이 밀려옵니다. 자세히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현지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가는 도중, 배에서 바다에 빠진 사람을 기적적으로 살려냈다고 합니다. 그 놀라운 이적(異蹟)이 일어난 뒤, 밧모섬 책임자 라오텐스는 섬에 도착한 사도 요한을 밀원이라는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집 아들의 병을 고쳐 주었고, 이 일로 그 집안 식구들이 신앙을 갖게 돼 밧모섬의 첫 교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자 사도 요한은 침례를 베풀었고, 지금까지 그 터가 남아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요한에게 이적과 능력으로 나타난 일이 전승이 아니라 사실일 수도 있겠지요. 요한이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사역도 했을 텐데 자세히 알려 주세요.


홍순화 교수: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머물자, 원래 그곳에 있던 아폴론(Apollon) 제사장들이 두려워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적을 베푸니 자기들도 영적 대결을 하려고 키놉스라는 마술사를 맞붙였습니다. 키놉스는 밧모섬 앞 바다 깊이 들어가서 견디는 기적을 사도 요한에게 보이려 했는데, 물에 들어간 뒤 떠오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곳이 키놉스가 빠져 죽은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또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이 많은 이적을 일으켜 그곳 사람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당시 지구상에서 한 지역 대부분이 복음화한 최초의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침례를 준 의미와 동기는 무엇일까요?


박영철 교수: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 1장부터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 ‘생명’과 ‘진리’입니다. ‘생명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당시 핍박이나 개인적인 나태함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생명력이 쇠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힘들었을 유배지에서 반대로 진정한 생명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요한이 간직한 예수 생명이 유배지에서도 감출 수 없는 생명의 씨앗으로 발산돼 크게 감동됩니다. 밧모섬에서 행한 사도 요한의 사역이 현대의 일반 성도들, 특히 목회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박영철 교수: 한 리더가 어떤 생명력을 실제적으로 보여 주느냐에 따라 그 주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유배지에서 행한 사도 요한의 침례와 전도 사역의 의미는 우리에게 큰 경종을 울립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요한이 유배가 풀려 밧모섬에서 나온 후,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 궁금합니다.


홍순화 교수: 밧모섬에서 풀려난 사도 요한은 에베소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그곳에서 사역했다고 합니다. 초기교회 교부 이레나이우스(Irenaeus, A.D.140~203)에 따르면 ‘아시아의 모든 사람이 사도 요한을 예수님의 제자라며 떠받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언제까지 모시고 살았는지도 궁금합니다. 분명한 점은 하나님의 은혜로 할 일이 남아 있는 사명자였기에 유배지에서 데려가지 않으시고, 다시 사역지로 돌려보내 남은 일을 계속 하게 하셨습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밧모섬과 에베소를 생각하니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윤석전 목사: 유배지에서 에베소로 돌아간 사도 요한의 흔적을 보기 위해 에베소로 가 보겠습니다.


밧모섬에서 풀려 난 사도 요한이 귀향한 에베소. 그곳 유적지 입구에서 『누가복음』의 저자이자 당대 사도 바울의 동역자인 누가(Luke)의 무덤을 만났다. 입구엔 누가의 묘를 상징하는 황소 부조(浮彫)를 세워 놓았고, 표지판에는 누가의 역사를 상세하게 기록해 두어 순례자의 발길을 붙잡는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이 누가의 유해를 이 땅에 안장했다고 한다. 참목자였던 사도 요한의 삶은 2000년 전 침례 터 속에서 영원한 생명들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예수의 남은 고난을 삶 속에서 실현한 그의 기념교회는 이 땅에 거룩한 영적 향기를 계속 퍼트리고 있다.


윤석전 목사: 에베소는 사도 요한이 유배지에서 풀려난 후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고 사역하며 산 곳입니다. 에베소로 돌아온 사도 요한은 어떤 생애를 보냈나요?


홍순화 교수: A.D.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Titus Flavius Clemens)가 ‘에베소로 돌아온 사도 요한은 그 주변의 교회를 교구로 만들고 감독이 돼 그 주위 교회들을 돌봤다’고 기록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에베소 교회만 아니라 그 부근에 있는 교회까지 관할하면서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를 양육한다는 것이 바로 목회 아니겠습니까. 충성스럽게 주님께서 맡긴 사역을 감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요한기념교회의 유래와 역사를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에베소 지역 아야술룩 언덕(Ayasoluk Hill)에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곳에 A.D. 4세기 대제 콘스탄티누스 1세(Portrait of Constantine, 306∼337)의 명령에 따라 교회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A.D.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Justinianus I, 527∼565)가 다시 명령을 내려 사도요한기념교회를 짓게 했습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현재 이스탄불에 있는 교회를 제외하면 사도요한기념교회가 제일 큰 교회였다고 합니다. 특히 사도요한교회로 가는 길에 있는 ‘박해의 문(門)’에 얽힌 이야기가 큰 감동을 줍니다. A.D.313년 기독교 공인 후에 성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얻었지만, 핍박 시대에 순교당한 수많은 교우가 생각나 돌을 쌓아 놓고 ‘박해의 문’이라 불렀습니다. 이 내용을 알면 무심코 지나가던 그곳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돌들이 소리 지르는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윤석전 목사: 핍박과 박해를 가할수록 복음의 소리는 더욱 커집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력 있는 믿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밧모섬 유배에서 풀려난 사도 요한이 120세까지 살았고, 자연사로 임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을 순교자로 보는 이가 많은데 그 점을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영철 교수: 사도 요한이 자연사했다 할지라도 그는 평생 순교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도 요한을 죽이려고 독사(毒蛇)를 가져다 들이댔을 때도 하나님께서 그를 무사히 건지셨고, 끓는 물에 집어넣어도 살아 나왔다는 전승이 있는 것을 보면 사도 요한은 순교 직전까지 갈 정도로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사도 요한이 순교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할 때는 성경의 서술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요한은 순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순교 현장을 넘나들며 살았던 분이기에 그의 삶은 순교였고, 임종은 자연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속에도 날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요동치기를 원합니다. 나를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가진 생명을 주고, 그들도 다른 사람에게 그 생명을 주어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생명의 사람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67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