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87)] 바울이 전한 주의 말씀이 힘 있게 퍼져나간 이방 땅 ‘에베소’
사도 바울의 길을 따라서(4)

등록날짜 [ 2020-04-11 11:16:07 ]

소아시아 선교의 핵심거점이자 교통의 요지

하나님 자녀됐음 보증하는 성령 침례 주고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 안에 믿음으로 훈련

핍박과 고난 이기고 세계 복음 전도에 앞장



누가의 무덤. 에베소에 남아 있는 예수님의 제자 누가의 무덤. 의사이자 바울의 동역자로 나서 도움을 주었다. 



누가의 묘임을 나타내는 황소 부조. 


원형극장 유적에서 윤석전 목사와 제2차 성지순례 중인 침례신학대학교 교수진. 



바울의 1~4차 선교여행 지도.   



원형극장 유적. 2만 5천 명가량 들어가던 극장.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사도 바울 일행이 당한 핍박의 현장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켈수스 도서관 유적. 로마 총독 율리우스 아퀼라가 자신의 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 무덤과 도서관이 함께 있었지만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윤석전 목사: 사도 바울의 복음전도 결실이 컸던 에베소는 생각만 해도 금방 다가가고 싶을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바울이 전한 주의 말씀이 힘 있게 퍼져나간 현장 에베소로 가 보겠습니다.


당시 터키 이오니아주(州)의 수도이자 로마의 제2도시 에베소(Ephesus)는 바울이 수많은 전도 열매를 맺은 주요 사역지다. 도시 유적지 남쪽 출입구엔 반가운 무덤 터가 있다. 십자가와 황소 그림 부조가 이 무덤이 바로 누가(Luke)의 것임을 말해 준다. 1세기에 만든 아고라(Agora, 광장)는 세계 각국 상인이 온갖 상품을 거래한 동양 최대 시장이었다.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Titus Flavius Domitianus, A.D. 81~96)의 거대한 신상과 신전을 비롯해, 지금도 형체가 선명한 각종 우상의 잔해들은 당시 에베소가 심한 기독교 핍박지였음을 알려 준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켈수스 도서관(Celsus Library)이 있던 이 지성의 도시에서 2년간 제자를 양육해 수많은 전도 열매를 맺었다. 그 결과 이곳은 소아시아 복음 전파의 중심 선교지로 자리 잡았다. 아고라 맞은편 산에서 바울이 핍박을 피해 숨어든 피난처를 보며 바울의 선교 성과에 끊임없는 고통의 시간이 함께했음을 알 수 있다.


윤석전 목사: 과거 에베소는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공략해 복음 증거의 교두보로 삼았습니다. 에베소의 특징을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터키 서쪽에 있는 초대 일곱 교회의 중심이 된 도시가 에베소입니다. 에베소는 항구도시여서 육·해상 교통이 발달했습니다. 신앙 면에서 에베소의 중요한 의미를 살펴보면, 먼저 ‘바울의 도시’입니다. 사도 바울이 3년간 머물렀는데 이후 다시 갈 수 없었기에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Miletus)로 불러 눈물의 이별을 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요한의 도시’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년에 이곳에서 사역하다가 밧모섬으로 유배를 갔고 다시 돌아와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또 ‘충성의 도시’입니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셨고, 이곳에서 요한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최근에는 『누가복음』을 쓴 누가의 무덤 추정지를 발굴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외국 땅에서 가장 많은 성경의 역사가 일어난 에베소를 ‘신약성경의 도시’라 부르고 싶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한 시기와 바울의 에베소 사역을 소개해 주세요.


김호경 교수: 바울 연대(年代) 재구성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이 회심한 연도를 대략 33년으로 잡으면 그때부터 사역자로서 30년을 보냅니다. 에베소에서는 3년간 머물렀는데 그중 3개월은 유대인 회당에서, 2년은 두란노 서원(hall of Tyrannus)에서 활동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거기서 얼마간 더 머물렀다는 표현이 나오기에 대략 3년으로 잡고, 52년에 에베소에 도착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55년 겨울에 에베소를 떠났다고 짐작합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은 아볼로(Apollos)가 세운 교회를 든든하게 성장시킵니다. 그것이 바울의 에베소 활동 중 중요한 부분입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에 보면 에베소의 믿는 자들에게 바울이 성령을 부어 주는 역사가 일어납니다(행19:6). 그들이 예수는 믿으나 성령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은 믿음과 예수만 믿는 믿음의 차이를 말씀해 주세요.


김호경 교수: 에베소 교회는 아볼로가 먼저 사역한 지역인데 성경을 보면 아볼로가 성령에 관해 알지 못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에베소 교회 교인들도 성령에 관해 알지 못했기에 바울이 성령 침례를 줍니다(행19:1~6). 요한의 물 침례는 ‘회개해서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지만 인간적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바울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싶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롬7:22~25)고 고백하면서 몹시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로마서 8장은 성경과 신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章)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도우심이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을 보증하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이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윤석전 목사: 성령받지 못한 육체는 잘한다고 하는 일도 육체의 소욕과 생각으로 인해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수가 됩니다. 바울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사용하고 역사하시면 성령의 뜻을 따라 값지게 살 것이기에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전하며 영의 사람을 만들고자 강력히 요구합니다. 다시 한번 에베소로 가 보겠습니다.


에베소에는 소아시아와 연결됐던 로마 도로가 남아 있다. 2천 년 전,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러 그 길로 왔다. 바울은 놀라운 이적을 행하였고, 손으로 만든 것은 신(神)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아데미 신상(神像)을 만든 은세공업자가 선동을 일으켰고 바울은 큰 곤경에 처한다. 당시 에베소 주민들은 소동을 일으켜 바울의 동료 가이오(Gaius)와 아리스다고(Aristarchus)를 연극장 안으로 끌고 갔다. 연극장에 모인 무리가 외쳤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행19:28). 흥분한 무리는 자신들이 그곳에 모인 이유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이 위험한 소동을 2시간이나 지속했다(행19:34). 결국 유대인 알렉산더(Alexander)가 중재에 나서 소동이 멎었고, 사람들은 흩어졌다(행19:41). 바울의 전도 길은 이처럼 늘 험난했지만, 바울은 서슴지 않고 세계 복음화의 새 장을 열었다.


윤석전 목사: 에베소에 있는 켈수스 도서관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에베소 유적 중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곳은 켈수스 도서관입니다. 이 도서관은 아시아 총독으로 부임한 율리우스 아퀼라(Tiberius Julius Aquila Polemaeanus)가 아시아의 수도인 에베소에 있으면서 부친 켈수스 폴레마이아누스(Tiberius Julius Celsus Polemaeanus)를 기념해 110년경 지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켈수스 도서관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Library of Alexandria), 그다음은 버가모 지역 도서관입니다. 켈수스 도서관은 세 번째로 꼽을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당시엔 2층으로 지어져 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도서를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은 현장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보여 주고 성령운동을 하면서 많은 핍박을 받지만 끝까지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이 핍박받게 된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김호경 교수: 바울이 이방세계에서 만난 대적자의 대표 그룹은 이방신전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과 마술사일 것입니다. 에베소에서는 마술사가 바울의 복음을 듣고 회심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바울을 적대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방신전에 관계된 사람도 바울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특히 에베소에서는 유명한 여신 아데미(Artemis) 신전에서 은색 도금을 하던 사람들이 바울로 말미암아 자기네들이 큰 불이익을 당했다고 핍박하고 고소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윤석전 목사: 이방신이 거짓이라고 드러나는 순간 유익이 끊어져 살길이 없으니 어떻게든 바울을 내쫓아야 했던 그들이 바울을 얼마나 핍박했을지 짐작됩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을 지냈다면, 그 세월이 적지는 않은데 에베소에도 바울 유적지가 있나요?


홍순화 교수: 에베소에는 요한의 무덤 뒤편에 요한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마리아의 집과 마리아 기념교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연관된 장소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유명한 아데미 신전 터는 남았습니다. 기둥 하나뿐이지만 아데미 신전을 보면서 사도 바울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또 2만 5000명가량 들어가는 원형극장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사도 바울 일행이 당한 핍박의 현장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에베소에 나타난 바울의 사역 결과와 그 가치를 말씀해 주세요.


김호경 교수: 에베소는 당시 매우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바울 사역에서는 사람들에게 성령 침례를 주고 성령받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훈련한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 바울은 아데미 신전의 위용이 대단했던 이방 땅 에베소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고, 하나님 능력의 우월함과 절대성을 확실히 알려 줬습니다. 결국 바울은 그의 전체적인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울 사역이 성공적이었다”라고 말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보통 ‘성공’은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만 생각하는데, 바울이 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견뎠는지를 에베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전도의 성공적 결과와 더불어 성공을 이루기 위한 바울의 고난과 믿음, 그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아울러 보아야 합니다.


윤석전 목사: 한 사람의 삶이 세계 속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가 죽을 뻔하는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자녀를 출산하듯이, 세계 복음 전도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감당했던 바울을 보면서, 오늘의 쓴잔을 내 가슴에 새기고 내일의 성공을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7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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