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전도자학교(106)] 우리가 소유한 복음의 위대함
율법과 복음 ②

등록날짜 [ 2014-06-24 11:30:02 ]

율법은, ‘죗값은 사망’이라고 전하여 인류가 죄로 영육 간에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복음은, 인류가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절망적인 죄인이지만 예수의 십자가의 피 공로로 회개하여 죄 사함받고 구원 받아 의인이 되었다는 것, 곧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 형벌에서 자유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구약과 신약 성경에 나타난 율법과 복음을 비교·검토하면서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는 복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정확히 알아보자.

1. 율법은 천사가 전해 주었고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전해 주셨다.
율법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인 천사가 전했다고 갈라디아서 3장 19절과 사도행전 7장 53절에 기록하고 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3:19).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행7:53).

소중한 것은 심부름꾼을 시키지 않고 본인이 직접 전한다. 율법은 천사라고 하는 종을 통해 전했으나 율법보다 귀중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전해 주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1:17).

종인 천사가 전해준 것과 주인인 예수가 전해준 것이 어찌 감히 비교가 되겠는가. 천사는 백 번을 만나도 구원받을 수 없지만, 예수는 한 번만 만나도 그가 인류의 죄를 사해주시는 구세주인 것을 믿고 회개하면, 그 자리에서 지옥의 영원한 고통에서 당장 구원을 받는다.

2.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고 복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다.
요한복음 1장 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했다.

모세로 말미암은 율법은 “너는 죄인이다. 너는 죗값으로 죽어야 한다”고 정죄한다. 그러나 예수로 말미암은 복음은 “너는 죄인이니 죗값으로 죽어야 마땅하지만 내가 대신 죽어 그 사망인 죗값을 대신 갚았으니 너는 그 사실을 믿고 죄를 회개하여 의로워져라”고 말한다.

3. 율법은 순종을 요구하고, 복음은 믿음을 요구한다.
구약에서 말하는 순종과 신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지킨다는 의미에서는 결국 같다. 하지만 순종은 명령하는 자가 두려워서 죽지 않으려고, 불순종한 죄를 지어 저주받지 않으려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그 반면에 믿음은 순종한 뒤에 내게 다가올 엄청난 영생의 축복을 미리 바라보고 자원하여 자유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어서 믿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에 “우상숭배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순종은 우상숭배하면 죽을까 봐, 저주받을까 봐 하지 않지만, 믿음은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해 주지도 않는 그까짓 하찮은 것을 왜 섬기나? 우상숭배라고 하는 죗값으로 삼사 대가 저주받는 것을 원수 같이 내버리고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신 주님만 섬겨야지”할 정도로 수준이 크게 다르다. 율법에 순종하면 자기 육신과 영혼 하나 잠시 지키는 것이지만, 믿음은 자기 영혼이 영원히 사는 것이다.

4, 율법은 “메시야가 오실 것이다”라고 말하고, 복음은 “메시야가 진짜 왔다”고 말한다.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소식을 가진 자는 메시야가 가져올 구원과 능력을 그저 바라만 보았지만, 메시야를 만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능력으로 병을 고치고, 십자가의 피 공로로 죄사함 받아 구원도 받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령 충만도 경험한다. 그러므로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소식을 가진 자가 복받은 자인가, 메시야를 만난 우리가 복받은 자인가?

5. 율법은 “피 흘릴 사람이 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복음은 “피 흘릴 사람이 와서 피를 흘렸다”라고 말한다.
율법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께 제사할 때, 양을 잡으면서 “이 양처럼 피 흘릴 자가 올 것이다”라고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므로, 죄인은 장차 피 흘려 자기를 죄에서 구원하실 구세주 메시야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복음은 피 흘릴 사람 곧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피 흘리셨으니 우리는 죄에서 해방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율법시대 사람들은 기다리는 사람이었으나 복음시대 믿음의 사람들은 이미 죄에서 자유하여 구원받은 사람이다. 율법시대 사람과 복음시대 사람은 이만큼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전해준 모세가 부럽지 않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1장 11절에 무엇이라고 했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그런데 그 침례 요한도 이 땅에 오신 예수는 보았으나,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흘리신 피공로는 힘입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힘입어 믿고 회개하여 죄사함 받았다. 침례 요한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사실이 없다. 그러나 예수의 피의 공로 앞에 회개하고 죄사함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의 사람들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 그러므로 누가 큰 자인가.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마23:9)고 했다. 율법시대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불렀으나 복음시대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6. 구약은 율법의 의 앞에 죄를 범하면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는 제사를 지냈으나,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와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피를 흘리는 순간에 율법 앞에 정죄받은 자들이 드리는 제사는 영원히 사라졌다.
선지자의 예언과 율법의 의식이 예수가 피 흘려 죽으심으로 완성된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2절에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라고 했다. 구약은 죄를 범할 때마다 짐승을 잡아야 한다. 자신이 죄로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고백하여 자신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하여 짐승 피를 하나님께 보이며 죄를 용서받는다. 그런데 예수가 와서 율법의 정죄로 범죄한 죄를 짊어지고 피 흘리는 순간에, 우리가 범죄할 때마다 그 피의 공로 앞에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구세주 예수로 사는 우리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9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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