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교단과 이단 사상] 침례교 정통교단은 ‘기독교한국침례회’뿐이다

등록날짜 [ 2014-05-20 10:56:10 ]

일명 구원파 분파들 ‘침례회’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
이들은 기도도, 찬송도 없고 오직 깨달음만 강조해


<사진설명>  구원파는 정통 교단과는 완전히 다른 교리를 전파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으로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가 ‘침례교회’라며, 잘못된 표기가 언론에 노출되면서 우리 교회가 속한 기독교한국침례회(이하 기침)가 본의 아니게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교단명이 유사한데 따른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침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교단은 우리 교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현재까지는) 이단임을 밝히는 바다.

현재 국내 활동 중인 구원파의 계파는 3개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유병언 씨가 세운 ‘기독교복음침례회’, 이요한 씨가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 나와 만든 ‘대한예수교침례회(생명의말씀선교회)’, 박옥수 씨가 세운 ‘대한예수교침례회(기쁜소식선교회)’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 교단을 살펴보며, 정통 교단과 무엇이 다른지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한다.

■ 유병언, 권신찬 계열(기독교복음침례회)
오대양 사건과 ㈜세모, 녹색회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유병언과 권신찬의 기독교복음침례회는 모든 구원파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다. 권신찬(1923~1986)은 예장 통합측 장로교 목사로 활동하다가 케이스 글라스 자칭 네델란드 선교사(한국명 길기수)의 영향으로 1961년 11월 총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 받아 목사면직을 받은 인물이다.

유병언은 권신찬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장인사위의 관계를 맺었다. 유병언은 박옥수와 함께 1960년대 초 외국인 독립선교사들이 운영하던 대구성경학교에서 6개월간 성경을 공부한 적이 있으나 1963년부터 선교사들과 관계를 끊고 독자노선을 구축, 1969년부터 1981년까지는 ‘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1981년 11월부터는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권신찬은 사위 유병언을 ‘하나님의 입’이라며 신격화하였고, 교인들은 유병언을 ‘모세’에, 권신찬을 ‘아론’에 비유하기도 했다.

유병언은 교제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며 1974년 ‘삼우트레이딩’이라는 회사를 교인들의 헌금으로 인수.운영하면서 ‘사장’으로 추앙받았다. 1980년대에는 ㈜세모라는 이름으로 스쿠알렌, 컴퓨터, 조선, 유람선 등의 사업에 전념하다가 오대양 사건과 연관되어 4년을 복역하고 나온 후에는 유 회장으로 통하고 있다.

위장술에 뛰어난 유병언은 1982년 자연보호운동을 기치로 내세우며 한국녹색회(회장 정윤재)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2002년부터는 경북 청송군 현서면 일대의 임야를 매입하여 집단촌을 형성하여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공동생활을 하는 이른바 ‘청녹마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요한(이복칠) 계열(대한예수교침례회)
이요한은 중학교 졸업 후 6.25 동란 중 대구임시신학교에서 권신찬에게서 교육받은 것이 교육배경의 전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원파 초창기인 1960년대 중반부터 목포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71년에 권신찬에게 목사안수를 받았다. 전남 목포에서 ‘평신도복음전도회’라는 간판을 걸고 활동하며 정통교회를 비판하고 시한부종말론을 설교하였다.

1974년말 유병언이 부도위기에 놓인 삼우트레이딩을 매입하여, 교인들의 헌금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는데, 1983년 이요한은 이를 문제 삼아 “교회와 사업은 분리되어야한다”는 성명을 내고,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대한예수교침례회’를 설립하였다. 1995년에는 경기도 안양의 인덕원에 대지 1000여 평을 마련하고 예배당을 건축하여 서울중앙교회라는 간판아래 활동하고 있다.

정통교회와 달리 일정한 예배형식이 없고 집회식으로 1시간 30분에서 2시간씩 성경을 강해하고 있으나 십일조와 기타 헌금, 기도, 예배를 율법과 종교로 간주하던 그의 스승 권신찬의 근본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국에 100여개 지 교회를 두고 있으며  추종자 4만 명이 있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정기간행물로 월간지 <생명의 빛>을 발행하며, 진리의말씀출판사와 영생의말씀사를 운영하고 있다.

■ 박옥수 계열(대한예수교침례회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는 경북 선산군에서 1944년 6월 출생하여 중학교 3학년을 중퇴한 후 길기수의 금오산 집회에서 감화를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1962년 10월 7일, 내 모든 죄가 눈처럼 희게 씻어진 것이 믿어진 그날, 내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눈처럼 희어졌다고 믿어진 그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날! 저에게는 그날이 1962년 10월 7일 새벽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그 후 외국에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합천 산골에서 훈련을 받다가 군에 입대하였다. 1968년 전역 후 김천에서 전도하기 시작, 대구 계명대 앞에서 중앙교회라는 간판 아래 활동하다가 1980년대 말에 활동무대를 대전으로 옮겨 한밭중앙교회를 담임하다가 2005년 서울 서초동 양재동에 있는 기쁜소식강남교회를 중심으로 IYF와 기쁜소식선교회를 이끌고 있다.

현재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 대도시의 체육관을 빌려 세력 과시를 하며 성경강연회를 인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옥수는 최근 국제청소년연합(IYF)이라는 묘한 단체를 만들어 각 대학과 중고등학교에 침투하고 있다. 전 세계 35개국에 지부와 회원을 두고 있다. 대학교에서는 영어말하기대회, 창조과학세미나, 영어교육, 컴퓨터교육, 연극교육, 자원봉사자모집, 사진전시회 등으로 교묘히 위장하여 학생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 기도와 경배찬송 없어
유병언의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은 아예 기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사상이 이들의 주된 교리다. 따라서 구원받았으니 죄와 싸울 영적 투쟁도 없고, 죄를 회개할 기도도 필요 없다는 논리다.

권신찬은 말한 적이 있다: “기독교 역사상 신령한 생활을 한 분 중에 새벽기도를 해서 그렇게 된 분들의 예가 다른 나라에는 없다. 기도를 해라, 해라, 해서는 안 된다. 새벽기도는 필요 없고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것도 필요 없다.” 유병언은 “기도란 마음에 있는 것을 원하는 것”이라면서, “진정한 기도는 성도의 교제로부터 시작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가 주도하는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 기도이며 예배라고 가르치고 있다.

박옥수, 이요한 측에서는 대표기도를 한다든가, 그들이 말하는 구원을 받게 하려고 전도대상을 위해 기도하는 경우가 있으나 새벽기도, 철야기도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가르친다. 구원파에서 주기도문이나 축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라는 회개 기도가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교리에 저촉되기 때문에 이를 금하고 있다.

이들이 기도와 예배를 부인하거나 중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인격적인 사랑과 경배의 대상으로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음성가나 찬송가 앞부분에 나오는 경배찬송을 거의 부르지 않고 있다.

이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은 죄 사함과 구원, 그리고 교회를 주제로 한 찬송일 뿐 경배와 삼위일체를 주제로 한 찬송은 거의 부르지 않는 것도 공통된 특징이라 할 것이다.

구원파는 표면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지만 우화적이고 풍자적인 해석으로 하나님 말씀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예수를 강조하지만 사실상 교주가 강조되고, 정통교회의 바른 교훈보다 교주의 깨달음에 근거한 다른 복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38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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