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
말이 곧 인격이자 능력이다 ③성경 속 말의 능력

등록날짜 [ 2010-05-18 10:02:08 ]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뤄진 세상
결국 ‘말’ 통해 인생이 변화 된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말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며, 말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또한 성경은 ‘혀의 권세’라는 표현을 통해 말의 힘을 강조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 여기 나오는 ‘혀의 권세’를 다른 말로 하면 혀의 힘, 곧 말의 능력, 말의 힘이다. 말에 능력이 있다는 성경의 선언이다.

철학에서도 언어철학자들은 그들의 연구를 통해 언어가 어떠한 힘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들은 언어의 창조적인 기능, 곧 일정한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 말이 삶을 창조하는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이것을 현실을 형성하는 ‘말의 힘’이라고 했다. 이것을 깨달은 언어철학자들은 언어는 창조적이라고 선언한다.

사람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을 통해서 새로운 상황을 이룩하고 현실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이러한 말의 힘을 20세기 철학이 발견한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여긴다.

최근 출판계에서 긍정적인 생각과 언어의 능력이 여러 권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긍정의 힘』(조엘 오스틴 著, 두란노)은 기독교 서적이면서도 일반인에게도 많이 읽혔으며, 『시크릿』(폴 해링턴 著, 살림) 같은 도서는 기독교 서적은 아니지만 언어 속에 창조적 능력이 있는 것이 마치 우주의 가장 신비로운 일인 것처럼 밝히고 있다.

이미 성경 속에는 말의 힘과 능력에 관해 많은 예화가 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한다.

<사례1> 노아의 저주 사건
창세기 9장 18절 이하에 노아는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장막에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이를 본 둘째아들 함은 아비의 수치를 보고서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오히려 밖으로 나가 첫째아들 셈과 셋째아들 야벳에게 이를 알렸다. 셈과 야벳은 아비의 수치를 보지 않고 뒷걸음쳐 아비의 하체를 가렸다. 이후에 노아가 이 모든 사실을 안 후 셈과 야벳에게는 그 자손에 대해 큰 축복을 한 반면, 함의 자손에게는 저주를 내린다. 그리고 성경 역사 전체에서 이 저주는 그대로 이행되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은 둘째아들 함의 잘못도 있겠지만, 노아가 먼저 술에 취하여 원인을 제공한 면도 있어 노아의 잘못도 있다는 점과, 그렇게까지 저주를 내릴 만한 사건이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노아가 저주한 말이, 그 말 그대로 지금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아가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노기에 차서 막말로 한 내용의 말이 그대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사실 두렵고 떨리는 내용이다. 혹 우리가 말하는 저주가 그대로 이뤄진다면…. 끔찍한 일이 아닌가.

<사례2> 12명의 정탐꾼과 백성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향하던 광야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세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했다. 열두 명의 정탐꾼은 40일 동안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고했다.
 
민수기 13장과 14장을 통해 정탐꾼들의 말을 살펴보자.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고, 그 외 열 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민14:2)이라며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했다.

결과는 그들의 말대로 40년 동안 광야를 유리하다 모두 죽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3:16).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을 하나님이 들으신다. 우리가 피차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이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해 놓으신다. 앞서 살펴본 민수기에서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향하여 말했다. 사람에게 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은 “내가 들었다”고 하셨다. 사람을 향해 한 말인데 그것을 하나님이 들으셨다. 그리고 그 말에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당신이 사람을 향해 하는 말을 하나님도 들으신다.

말에 힘이 있는 것은 말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말을 들으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시고 그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우리에게 행하신다(민14:28). 이것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인가, 아니면 슬픈 소식인가?

말은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오는 것이다. 입이 수도꼭지라면 마음은 수원지다. 수도꼭지를 바꾼다고 해서 물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생각→말→행동→습관→인격으로 바뀌어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격의 첫 출발도 마음의 생각이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을 바꾸기 원하면 마음의 생각을 바꾸라. 그러면 말이 바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하는 선한 말을 통해 자신이 누릴 천국을 그려 보자.

위 글은 교회신문 <19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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