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발발 61주년 기획] “입에 밥이 들어가고 옷 입는 것만도 감사”
탈북자가 직접 말하는 북한 실상

등록날짜 [ 2011-06-29 10:00:01 ]

북한 TV는 그나마 전시용
비참한 것은 말로 다 못해

6.25 발발 61주년을 맞았다. 지금 남한과 북한의 삶의 실상은 너무나 현격하다. 수많은 북한주민이 굶주림을 면하고 인간답게 살고자 목숨 걸고 탈북을 감행해 현재 한국에 2만여 명이 살고 있다. 우리 교회에도 탈북민 50여 명이 정착해 주체사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평소 언론으로 북한 실상을 보고 들어 알고 있지만, 탈북인 출신 우리 성도의 증언으로 실감 나게 북한 실상을 알고자 한다.

#인터뷰 참가자
오진희(가명, 여, 33) 탈북 9년 차
안옥순(가명, 여, 27) 탈북 3년 차

◆일반 북한 주민은 평상시 무슨 일을 하며 지내나?

안옥순(이하 안)=농장, 탄광, 공장, 회사 등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한다. 일을 선택할 권리는 없고, 국가에서 정해주는 대로 일한다. 대부분 아버지가 탄광에서 일했으면 자동으로 탄광에서 일하고, 아버지가 농장에서 일했으면 자기도 농장에서 일한다. 일반 사무직에는 주로 간부 자녀들이 들어간다. 나는  농장에서 일했다.

오진희(이하 오)=나도 농장에서 일했다. 주로 옥수수와 벼농사를 지었다.

◆배급은 어떻게 받나?

=배급은 없어진 지 꽤 오래됐다. 탄광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달이 조금씩 배급을 타지만, 그나마 3~6개월씩 밀리기도 한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일 년치 식량을 분배받는다. 그 외에는 배급이 없다. 일 년에 설날, 김일성, 김정일 생일 이렇게 세 번 옥수수 등을 5~10킬로씩 명절 쇨 것만 조금씩 배급해 준다. 그래서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시장에 나가서 장사해서 먹고산다. 한 끼 벌이, 하루벌이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다.

=장사 밑천을 마련하려면 집에 있는 물건을 내다팔든지, 남에게 빌리든지 한다. 밑천이 영 없으면 산에 가서 약초라도 캐서 내다 판다. 배급을 못 받아도 자기 직장일은 매일 꼬박꼬박 해야 한다. 배급을 안 준다고 일하지 않으면 단련대에 끌려간다. 감옥 비슷한 곳이다. 누구든지 장사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다. 

◆남한 사람이 북한 실상에 대해 가장 모르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남한 사람들은 북한이 얼마나 못 산다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어떤 분은 “TV에 나오는 것처럼 진짜 그렇게 못 사냐”고 묻는다. TV에 나오는 것은 전시용이기 때문에 그래도 괜찮은 것이다. 진짜는 그보다 더 못하다. 1997~99년도에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해서 갑자기 생사의 위기가 닥쳐왔다. 그전까지만 해도 죽이라도 먹고 살았는데, 죽도 없고 끓여먹을 것도 없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자립갱생해서 끼니를 연명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숱하게 굶어 죽었다. 2008년도 5월 탈북하기 전에 친정어머니께 전화했다. 5월이면 농장에서 시금치가 난다며 먹을 게 없어서 늘 시금치만 먹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살겠다고 중국으로 떠나는데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먹고 사는 현실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른다. 그나마 굶어 죽지는 않으실 것이니 조금 위안이 된다.

=마을에 임산부가 있었다. 애를 낳으면 기력이 딸리는데,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었다. 3일이 지나서 아기와 같이 죽었다. 옆집 사람들도 무엇을 가져다주고 싶었지만, 자기도 못 먹으니까 갖다 줄 것이 없었다. 1999년도 이야기다. 지금도 그때처럼 못 살기는 마찬가지다. 

◆ 북한에서 자아비판 직접 해봤나?

=그렇다. 어느 조직이든 자아비판이 없는 조직은 없다. 매주 토요일 ‘생활총화’라는 것을 단체로 한다. 생활총화라는 것은 한 주간에 자기 잘못을 비판해서 전체가 화합하자는 것인데, 잘못이 없어도 무조건 토론해야 한다. 먼저 자기비판을 하고 다른 사람을 비판한다. 노동시간에는 못 하고 과외로 토요일 점심시간에 한다. 전원이 다 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서로 비판한다고 해서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자신을 비판했다고 삐치고 감정 상하는 부분이 더 많다. 싸움도 자주 한다. 상대편이 삐질 것 같으면 미리 짠다. 내가 언니의 이런 점 비판할게, 언니는 이것 비판하라는 식이다. 소년단에 입단해서부터 생활총화를 시작하니까, 인민학교 2학년인 10~12세 때부터 계속한다.

◆현재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어떤 영적 체험을 하는가?

=우리 교회 온 지는 4개월째다. 생활하다가 많이 아프고 애들이 많이 아플 때마다 기도한다. 애들은 기도하면 약을 안 먹어도 낫는 체험을 했다.

=연세중앙교회에 1년 넘게 다녔다. 처음에는 도움을 받을까 해서 왔지만, 지금은 하나님을 체험하고 믿음을 가졌다. 북한에서 엄청난 고생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부부를 한국으로 오게 불러주시고, 입에 밥이 들어가고, 옷 입게 해주시고, 부모는 그립지만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친정엄마를 전화상으로라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 땅에서 번 돈은 얼마 안 되지만 몇 푼이라도 북한에 보내서 우리 엄마 먹고살게 해 달라고 7, 8개월 동안 기도했는데 응답이 안 왔다. 교회만 오면 울면서 기도했다. 브로커도 몇 번 보냈다. 갔다가 돌아오고, 돌아오고.... 그러더니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엄마 목소리였다. 브로커가 기어히 엄마를 찾은 거다. 전화 받고 울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 기도했더니 그렇게 응답하신 것이다. 전화로 들어보니까, 엄마는 한 쪽 눈을 잃었다고 했다. 일하다가 콩대에 찔려서 왼쪽 눈이 곪아 염증이 났는데 주사를 못 맞아서 생눈을 뽑았다는 거다. 속이 터져서 전화받다가 구르며 울었다. 엄마에게 돈을 보냈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만도 기도의 응답이다. 정말 기도 응답이 아니고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잘 살 수 있게 해 주시는 것만도 너무 감사한데,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천국을 얻게 되었으니 무엇으로 이 감사를 다 하겠는가.     

위 글은 교회신문 <24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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