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남전도회 (김영헌 회장)
[상반기 결산 주님이 쓰신 부서들] 천하보다 귀한 영혼 돌아온 큰 기쁨

등록날짜 [ 2026-06-02 15:48:20 ]
<사진설명>에브라임이라 추정하는 ‘타이베(Taybeh)’ 마을 전경. 신약 시대에 예수님이 에브라임에 잠시 머무셨고, 오늘날 타이베에는 모스크가 없이 교회와 예수 믿는 기독교인이 많다. 에브라임은 구약 시대에 에브론과 같은 곳을 이르며, 남유다의 아비야왕은 르호보암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에브론 성읍을 빼앗았다.
르호보암에 이어 왕위 오른 ‘아비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응답으로
북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성경에는 “부친의 모든 죄를 행했고
다윗의 마음 같지 않은 왕”으로 평가
솔로몬의 손자이자 르호보암의 아들인 아비야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왕과 전쟁해 여러 성읍을 빼앗았다. 아비야가 당시 빼앗은 성읍 중 하나가 에브론(Ephron)이다(대하13:19). 에브론은 벧엘(Bethel)에서 북동쪽으로 6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성읍이다. 아비야가 정복한 또 다른 성읍이 여사나(Jeshanah)이다. 여사나는 벧엘과 에브론 사이에 있었던 성읍이며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경계에 있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러 성읍을 차지하고 여로보암과 벌인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아비야. 하지만 아비야는 하나님께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다”(왕상15:3)라고 평가받으며 악한 왕으로 기록된다.
▶윤석전 목사: 아비야가 북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회복하고자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왕과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국력 차이로 아비야의 군대가 북이스라엘 군대에게 포위를 당합니다. 패배를 앞둔 상황에서 아비야는 하나님께 크게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무언가 불가능한 문제를 마주했을 때 조용조용 기도할 수 없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절박한 사정을 알리며 다급하게 기도합니다. 엄청난 숫자에 둘러싸였을 때 “하나님, 이 전쟁을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는 남유다의 아비야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으로 아비야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여로보암에게서 성읍도 빼앗게 됩니다. 아비야가 정복한 성읍 중에 에브론이 있는데, 에브론이 어떤 성읍인지 궁금합니다.
▶홍순화 교수: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지명 중에 잘 알려진 지명도 있고 그렇지 못한 지명도 있습니다. 에브론도 잘 알려지지 않은 지명 중 하나입니다. 원래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남유다과 북이스라엘이 갈라질 때 국경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에브론’이라는 지명을 낯설게 느끼지만, 에브론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이 머무신 곳입니다.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여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유하시니라”(요11:54)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머무르신 그 에브라임(Ephraim)이 바로 아비야왕의 놀라운 승리 현장이 된 에브론입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곳을 뜻합니다.
에브론은 벧엘(Bethel)에서 북동쪽으로 약 6km 떨어진 곳입니다. 족장들의 도로(Patriachs’ Road)가 지나가는 곳에 있는 동네입니다.
무엇보다 에브론에 갔을 때 저는 에브론에 교회가 있는 모습을 보며 너무나 감사하고 반가웠습니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이 머무신 곳에 기독교인들이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사렛(Nazareth)에도, 베들레헴(Bethlehem)에도 예수 믿는 이가 많지만, 에브론에 교회가 있는 모습을 보며 무척 반가웠습니다.
<사진설명>분열 왕국 시대. 솔로몬이 죽은 후 가혹한 세금과 노역에 반발한 북쪽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의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을 세우고,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르호보암이 남유다를 유지하며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르호보암에 이어 왕위에 오른 아비야가 북이스라엘과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윤석전 목사: 성경은 왕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실 때 선한 왕인지 악한 왕인지를 여과 없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비야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과 전쟁을 벌일 때는 하나님께서 아비야와 남유다의 손을 들어 주셨습니다. 이때만 해도 하나님께서 도우신 아비야가 선한 왕인 줄 았았는데, 성경은 아비야를 악한 왕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민석 교수: 아비야의 아버지인 르호보암도 처음에는 평가가 좋았다가 후에 좋지 못합니다. 그의 아들인 아비야도 처음에는 평가가 좋지만 나중에는 악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아비야는 멋진 연설을 합니다(대하13:4~12). 전쟁을 앞두고 여로보암의 타락이라든지 정치적으로 나라를 분열시킨 잘못을 비판합니다. 이후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5장에 보면 “아비얌(아비야)이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나”(왕상15:3)라고 기록합니다. 아비야의 아버지인 르호보암은 굉장히 흉악한 일을 벌였습니다. 혐오스러운 혼합주의를 일삼았고, 신전에 남창을 들이기도 해서 하나님의 예배를 굉장히 망령되게 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아마도 아버지 르호보암처럼 아비야도 정치적인 교만 탓에 악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비야에게도 아버지 르호보암 같은 정치적인 교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아버지 르호보암이 하나님 앞에서 죄짓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비야는 ‘나는 저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아마 처음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하나님을 잘 섬겨야겠다고 결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과 벌인 전쟁에서 이겨 북이스라엘의 성읍들을 빼앗자 어느 순간 교만해졌을 듯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무언가 잘될 때 겸손해야 할 것이요, 제일 두려운 것이 교만이라는 점을 두 왕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방금 에브라임에 아랍계 기독교인들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합니다.
<사진설명>타이베 마을에 있는 교회 유적. 타이베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남아 있는 유일한 기독교 마을이며, 주민 1300여 명 중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 예수님 시대부터 줄곧 기독교 마을로서 신앙을 지켰다고 알려져 있다.
▶홍순화 교수: 2013년 통계를 보면, 이스라엘의 인구수를 806만 명 정도로 봅니다. 그중에 아랍계 이스라엘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의 비율이 21%이며 159만 명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중 기독교인이 몇 명인지를 살펴보면 2% 정도이며, 16만 명에 조금 미치지 못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기독교인 16만 명은 정교회, 가톨릭 등 각 종파를 다 합친 인구이며, 그중에서도 순수하게 예수 믿는 이는 몇 명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에브라임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교회가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나사렛과 베들레헴에는 기독교인이 도시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기독교인 수가 점점 줄어서 안타깝습니다. 어쨌건 약 16만 명 중에 아랍계 기독교인이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제가 경험한 바로는 베들레헴 쪽에 교회가 있었는데 정통 기독교 교회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던지 교회 벽에 총탄 자국이 나 있고 철로 만든 문에도 총탄이 박혀 있던 흔적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도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모슬렘에게 총을 맞아 총알이 어깨를 관통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목사님이 죽은 줄 알고 모슬렘이 물러갔는데, 다시 살아나서 성도 200명과 목회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 존경스러웠습니다. ‘어떻게 죽음을 방불할 만한 곳에서 목숨을 걸고 목회할 수 있을까. 한두 번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현장에서 담대하게 목회할 수 있을까’ 감탄했습니다.
초대 교회 제자들도 성령이 충만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복음을 증거해서 영혼 살리려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지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도 좌절하는데, 목숨의 위협에도 좌절하지 않고 목회하는 베들레헴 교회의 모습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의 의지가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아비야의 생애를 살펴보며 인류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탐색해 보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95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