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금으로 싸듯 예수의 특성만 나타나게 하라
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20)

등록날짜 [ 2011-01-05 13:52:35 ]

조각목은 금으로 싸야만 쓰임받을 수 있어
주께 쓰임받을 자는 예수의 특성 나타내야

조각목을 성전 짓는 목재로 사용하려고 금으로 싼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나는 간 곳 없고 주님만 나타내는 믿음으로, 예수의 특성으로 나를 싸야 합니다. 그렇게 싸지 않으면 나의 못난 근성과 기질이 나타나기 때문에 완전히 주님으로만 백 퍼센트 싸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노라 하는 사람 중에도 자기가 가진 못난 근성과 기질을 끝내 버리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금으로 싼 법궤

예수쟁이, 그리스도인
그 사람에게서 예수의 특성을 찾아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단 한 가지도 찾을 수 없는데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크리스천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안디옥교회에서 제일 먼저 생긴 말인데, 안디옥 교인들은 그 당시 예수의 특성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성령이 충만해서 가는 곳마다 예수의 특성을 나타냈습니다. 예수에게 미친 사람, 예수의 모습을 그대로 가진 사람이라는 뜻의 ‘예수쟁이’라는 말로 불린 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원래 의미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고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과연 예수의 특성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자신을 스스로 진단해 보면 금세 답이 나올 것입니다. ‘과연 내게 주님의 특성이 있는가? 내가 죽음에 처하더라도 멸망하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병자를 고칠 예수의 능력의 특성이 있는가? 진실로 자기 목숨을 내놓고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싶은 진실한 생명의 특성이 있는가?’
만약 이러한 예수의 특성이 내게 없다면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없습니다. 예수의 특성도 없으면서 마치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이것은 자기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교회에 다닌다고 크리스천이 아니라 예수의 특성이 있어야 크리스천입니다.

예수의 특성만을 가르치라
윤리와 도덕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그 특성에 맞게 자란 사람의 사고와 행동에서는 윤리 도덕관이 뚜렷하고 품행이 단정한 행동 양상이 나타납니다. 과학적인 사고와 행동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자란 사람은 과학적인 것을 중시하는 사고와 행동 양상이 나타납니다. 이렇듯 우리는 어떤 특성에 영향을 받고 자랐느냐가 중요합니다.

목회자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목회자들이 철학의 특성, 윤리적 특성, 문화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설교를 하다 보면 그 설교를 듣는 성도들에게서도 예수의 특성이 아닌, 세속화한 세상의 특성이 계속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그것이 예수의 특성인 줄로 착각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윤리나 도덕적인 특성으로 가르쳐서는 안 되며, 박애주의 특성으로 가르쳐서도 안 됩니다. 또 세상의 물질, 문명, 문화, 철학, 문학과 같은 특성으로 가르치지 말고 오직 예수의 특성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특성으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생애에는 예수의 특성만 나타났습니다. 초대교인들도 예수의 특성으로 가르침을 받아서 예수의 특성만 나타났습니다. 예수의 특성은 영혼에 영향을 미칩니다. 도덕과 윤리나 박애주의 사상은 사람들의 이성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영혼에는 절대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내 영혼에 영향을 미치고 그의 특성을 나타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특성이 있는 자
하나님이 성경에서 먹지 말라고 하는 것들을 살펴보면, 그 동물이나 식물의 특성이 사람에게 나타나면 안 될 것들만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의학적으로 볼 때 몸에 해로운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바로 그 먹을 것의 특성을 닮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정한 동.식물을 먹으면 부정한 특성이 그 사람에게서 나타나니까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신체 구조를 지으시고 생리 구조를 아시며 인간의 모든 것을 다 지으신 분이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만큼 우리를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상 그 누구의 특성도 닮지 말고 오직 예수의 특성만 닮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나는 당신의 특성에서 나왔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믿음을 갖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아버지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신 그 사랑의 특성이 내게서도 나오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특성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 그 사랑의 특성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구원받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그 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과 사랑의 특성을 모두 가진 자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2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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