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의 자세와 역할(34)] 하나님의 믿음이 되는 신실한 종으로

등록날짜 [ 2012-08-21 22:01:48 ]

금세 마음이 변하는 사람은 쓰기 힘들어
정직하고 성실하며 감사함으로 충성해야

디아코노스, 직분자라는 말은 ‘신실한 종’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직분을 남용하거나 직분 이행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악(惡)하다’고 할 때는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성질이 사나울 때 “저 사람은 악하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직분에 게으름 피우는 자를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주인이 준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온 자에게 그 주인이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고 꾸짖습니다.

우리가 직분을 받았다면 다섯 달란트 받은 자, 두 달란트 받은 자같이 부지런히 충성하여 유익을 남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달란트 받아 묻어 둔 악한 종처럼,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영원히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직분자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보시기에 가증하면 금세 아십니다. 강단에 있는 목사는 속일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속일 수 없습니다. 또 강단에 있는 목사를 속이면 곧 하나님을 속인 것으로 인정하니, 직분자가 신실하지 않으면 그 직분은 오히려 자신에게 저주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직분을 축복으로 만드는 자는 면류관을 얻고, 직분을 저주로 받는 자는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뿌드득 가는 무서운 현실을 당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최후의 그날에 주님께 칭찬받기 위해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믿어 주시는 직분자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저를 써 주세요” 하며 떼를 쓸지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 믿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안 쓰십니다. 자기만 일방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믿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이 나를 믿어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믿고 주의 일을 맡기셨는데 그 일을 부도내고 파괴한다면, 얼마나 분하시겠습니까?

또 하나님이 보실 때 믿음도 전혀 없는 자가 자기에게 일을 안 맡긴다고, 집사, 권사, 장로 안 시킨다고 불평불만 한다면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직분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이 되어야 줍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쓰십니다.

지구 70억 인구 중에서 과연 하나님이 믿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일제 강점기 때 목사들도, 장로들도 거의 강압에 못 이겨 신사참배를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평안할 때는 모릅니다. 목숨에 위협이 올 때, 물질에 위협이 올 때, 하나님이 나를 믿어 줄 수 있는지 없는지 판가름 납니다.

하나님이 믿어 주시는 믿음, 이것은 대단히 위대한 기업입니다. 이 지구 상에서 제일 축복받은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 믿어 주는 사람입니다. “주여! 변치 않겠사오니 믿어 주세요!”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변덕 떨지 않는 직분자
어떤 성도는 “목사님! 저를 믿으세요”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언제 변덕 부릴지 모릅니다. 지금 당장은 잘할지 모르지만, 시험 들어 보십시오. 대번에 목사를 내쫓는 앞잡이가 됩니다. 그러니 성도는 절대로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믿음의 대상입니다.

목사가 교회에 부임하면, “아이고, 이번에 훌륭한 목사님 오셨어. 설교도 은혜롭고 무척 좋으셔” 하고 좋아합니다. 그러다가 2년만 지나면 “아이고, 그때 그 목사하고 똑같아. 별 수 없어!” 하고 금방 변합니다. 목사에게도 이처럼 안 믿어지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믿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이 몇 년 있다가 변할 것을 뻔히 아시는데 어떻게 믿겠습니까? 내일 변하고, 모레 변할 것 뻔히 아시는데 어떻게 믿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의 믿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 모릅니다.

성도가 진실하지 못하기에 낭패를 당하고, 창피를 당하고, 때로는 목회를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닐지라도 주의 종은 하나님 앞에 신실해야 하기에 죽어도 직분을 감당하려고 강단에 섭니다. 진실하고 신실한 사람은 죽어도 자기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자기가 맡은 일을 해냅니다. 이렇게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가 집사, 권사, 장로라면 그 사람은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진실한 사람이 행할 충성
성가대원들이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연습을 열심히 하는데, 왜 교회에서 그렇게 무관심합니까? 왜 아무것도 안 해 줍니까?”

교회에서 자기를 성가대원으로 써 준 것도 감사한데, 교회에다 무엇을 요구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 한 번 찬양할 때마다 황소 한 마리가 상급으로 올라가는 영광이 있으니, 오히려 자기들이 교회에다 무엇을 내놓고 찬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찬양하는 직분을 받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누구를 위해 찬양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입니다.

찬양은 목소리 좋다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옥 가서 멸망할 내 영혼을 바라보시고,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기까지 살리신 은혜가 감사해서, 내 입술에 곡조를 붙어서 눈물과 감사로 부르는 것이 찬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모두 주셨습니다. 내가 바라는 천국을 주셨고, 영생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교회에서 자기가 한 것이 뭐 있다고 바라는 것입니까? 직분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서 써 주심에 감사하여 내가 드려가며 하는 것이 직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직분자세미나’ 중 일부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30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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