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의 자세와 역할(33)] 결박에 매이지 않는 복음의 일꾼

등록날짜 [ 2012-08-14 09:54:16 ]

교회의 감독자는 성령께서 세운 ‘목사’
직분자는 자기 유익대로 행치 말아야

복음의 일꾼에게는 능력이 나타나는 동시에 어려움도 수없이 닥쳐옵니다. 매 맞고, 고통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활로 보여 주려고 고린도후서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自薦)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4~10).

한번은 바울이 실라와 함께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어떤 점쟁이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었는데 오히려 그 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비록 감옥에 갇혔으나 주님의 복음을 전한 대가로 갇혔으니 그들의 가슴속에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찬양하니 옥터가 흔들렸습니다(행16:25~26). 복음의 일꾼은 복음을 전하다가 죽을 위험이 닥쳐올지라도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적이 따릅니다.

복음의 일꾼은 그 육체를 쇠사슬로 결박해도 생각은 결박할 수 없고, 그 마음에서 생생히 살아 있는 복음의 역사를 결박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수많은 사람이 우리 육체를 결박하고 죽일 수 있으나, 우리 심령과 영혼은 절대 결박할 수 없습니다. 그 무엇도 결박할 수 없는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심정과 영혼은 그 무엇에도 결박당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복음의 일꾼은 육체가 결박당하고, 환경이 결박당해도 우리 안에 있는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마음은 자유롭습니다. 이런 사람이 복음의 일꾼입니다.

복음의 일꾼은 죽음이 두렵지 않아
이런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려고 하나님께서 직분자로 세웠습니다. 그러니 복음을 가졌다면 그는 세상 어떤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지구보다 더 큰 것을 가졌기 때문이요, 목숨보다 더 큰 것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목숨은 복음 앞에 초라합니다. 목숨은 복음을 시중드는 일꾼에 불과합니다. 복음은 왕이요, 내 육체는 복음의 시녀입니다. 복음은 나를 영원히 사랑하는 생명이요, 육신은 복음을 시중듭니다. 시녀는 죽어도 왕은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가졌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직분자는 목사가 주의 일을 할 때 일일이 간섭하려 들지 말고, 주의 종에게 도움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또 직분자가 되었다는 명예를 자랑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복음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소인배 근성을 버려라
어떤 직분자는 교회에서 주의 종이 조금만 뭐라고 하면 “목사님! 나 교회를 잠깐 쉬겠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직분자는 이런 소인배 근성을 버리고 정직하고 곧아야 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쓸 때 심지가 곧아야 쓴다고 했습니다. 정직한 영을 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직분자 중에는 소인배 근성인 사람이 많이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돌집에서 초청하지 않았다고 화내서 삐치기도 합니다. 사람은 통머리가 커야 합니다. 복음을 가지면,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만큼 통머리가 커집니다. 그런데 소인배 근성으로 절어 있다면, 그 속에 복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복음을 가지면 소인배 근성이 없어집니다. 복음을 가지면 죽음 앞에서도 담대합니다. 복음이 없으니까 쩨쩨하고 비겁합니다. 복음이 없으니까 직분 임명하면 그 이름을 자기 정욕과 자기 명예를 위해 씁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목사를 힘들게 합니다.

성령께서 감독자를 세우셨다고 말했습니다(행20:28). 양을 치는 자는 목사입니다. 교회 감독자는 목사입니다. 감독자는 사람이 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사람이 정해놓고 아무리 많은 사람이 서명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한 번 정하시면 가감할 수 없습니다. 직분자가 그런 영적 권위를 모르면 망합니다. 직분이 높을수록 그 직분 가지고 쩨쩨하게 소인배가 돼서는 결코 안 됩니다.

순수한 복음의 일꾼 되라
주의 종이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專務)하게 하려고 직분자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직분자가 오히려 목회에 방해꾼이 되고 있으니 어떻게 목회를 하겠습니까? 복음의 일꾼으로서 죽기까지 목숨을 걸고 주의 일에 시중들라고 직분자로 세웠는데, 오늘까지 죽을 짓만 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스데반 집사나 빌립 집사는 복음의 일꾼으로서 복음을 전하다가 죽었는데, 당신은 직분을 맡아서 교회에서 명예나 내세우고, 자랑이나 하려 들고, 높아지려 들고, 직분을 이용해서 교회를 자기 맘대로 하려 들고, 목사 멱살이나 잡아서 내두르고, 자기 고집대로 안 되면 교회에서 분란을 일으키니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런데 한국 교회들이 이것을 직분자가 할 일로 알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합니까?

직분자라면 주의 종이 주의 일을 할 때 이유를 달지 마십시오. 깨끗하게 복음의 일꾼 되십시오. 주님이 쓰시는 순수한 복음의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직분자세미나’ 중 일부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30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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